저희오빠가 떠난지 벌써 일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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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망사고의 피해자인 저희 오빠의 억울한 죽음을 다들 많이 알아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2018년 코레일에 입사했을 당시 저희 오빠는 사무영업으로 채용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저도 오빠의 코레일 입사를 매우 자랑스러워했고 너무너무 좋아하셨죠.. 그런데 처음 입사했을 당시에도 이상했던게 사무영업직으로 입사를 했는데 수송쪽으로 발령이 된게 너무 이상했었습니다.
남자라는 이유로 채용된 직렬과 상관없이 현장직으로 투입이 된 부당한 상황이였지만 힘들게 들어간 회사이기에 어느누가 신입사원이 그런걸 따질수가 있을까요?

그래도 첫 회사이며 첫 사회생활이니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근무를 하던 와중 입사한 지 얼마되지 않아 오빠와 같이 입사했던 동기 한명이 다리가 절단되는 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저와 저희 부모님은 그런 위험한 환경에서 일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매우 놀랐고 당장 나오라고 여러 번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때 당시 같이 입사했던 동기들 중 대다수가 그 충격으로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직을 하거나 다른역으로 급히 떠났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저희 오빠도 많은 고민을 했지만 본가가 서울이 아닌 부산이기 때문에 어딜 가도 타지인건 마찬가지였고 위에 많은 선배분들이 여기서 조금만 더 있으면 원하는 역으로 갈수 있다는 많은 회유와 얘기들 때문에 조금 더 남아있겠다고 결정했다고 그당시에 얘기했었죠. 저희오빠는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항상 안전에 유의하고 안전사고 관련해 많이 개선이 되었기 때문에 괜찮다고만 했습니다. 그얘기를 그냥 믿은 저희가 미친거죠..

항상 부산 본가를 오면 다리가 아파죽겠다고 했습니다. 발목 염증은 사라질날이 없었고 여기저기 크고작은 상처와 멍들...자갈밭을 매일 1만보에서 2만보를 걸어다닌답니다. 저는 오빠야가 살을 안빼서 몸이 무거워서 아픈거라고 철없이 장난만 쳤죠........저희오빠 어제 생일이였습니다. 오빠낳느라 고생한 우리 엄마 선물사서 부산온다고 신나게 전화했던 저희 오빠가...
전화 끊은지 3시간도 안되서 싸늘한 주검이 되었답니다. 부모님이랑 우리오빠야 좋아하는 귤이랑 겉절이 해줄 배추사서 신나게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받은 전화한통은 지옥이였습니다.
저희 오빠가 조금다쳤대요 그래서 와봐야될것같답니다. 그 사실 하나로도 얼굴이 사색이되서 쓰러지는 저희 부모님이셨는데 다시 전화와서 저희오빠가 죽었답니다..
열차에 깔려서..미친듯이 차를 몰고 오봉역까지가는 4시간은 죽을거 같았습니다. 평생종교를 믿지도않던 제가 손을 간절히 모으고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고 그렇게 빌었는데....

오봉역이 아닌 병원2층 장례식장으로 오라는 얘기에 결국 저희 부모님은 엘레베이터 앞에서 쓰러지셨고... 사진한장없고 아무도 없는 빈소앞에서 또다시 저희는 무너졌습니다..너무 어이가없고 실감이 나지않아 눈물도 나지않았습니다.
미친듯이 달려서 온 빈소에서 새벽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와중에 코레일 관련직원들이라며 온 분들은 슬퍼하지도 미안한 기색 하나없이 그저 일을 하고 계시더군요.
사람들에게 저희오빠의 죽음은 빨리 해결해야될 일이였습니다. 영혼없는 말들.. 사고에 관련해서 물어도 아는것이 없답니다 아무것도

제가 외쳤죠. 어떻하실거냐고 본부장이라는 아저씨가 말했죠
원하는걸 말씀만해주시면 뭐든지 들어주겠답니다저랑 어머니는 소리질럿죠 다 필요없고 우리 오빠데리고 오라고

휴게실이니 복도니 우글우글와있던 코레일 본사직원들은 아무도 저희오빠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였고 그저 저희가족의 동태와 반응살피기에 급급했죠
수근수근대는 저사람들한테 물어봤죠 저희오빠랑 일했던 분이 계시냐고

아니랍니다 본부직원들인데 저희가족의 불편함을 해결해주기위해 온분들이랍니다.
저희 가족의 불편함을 해결해준다고 앉아서 휴대폰보고 노트끄적거리던 다수의 직원들과 조금 높은 직급이랍시고 와서 담배나 주구장창피고 저희동태만 살피던 아저씨들
너무너무너무 억울하고 화가나 죽겠는데 저희오빠가 어떤일을하는지 알지도못하는 것들이 앉아서 그러고있는 꼴도 보기싫고
저희오빠 직장동료들을 보고싶다그래도 새벽시간이라 다들피곤하기때문에 지금은 힘들다는 앵무새처럼 얘기하던 역장
우리오빠는 지금 죽었는데 새벽이라 피곤하다는 말도안되는 핑계로 아무도 만나지도 못하게 하고

혼자 잠시나가서 전화를 하거나 숨이 막혀 바람이라도 쐬면 감시하는거 마냥 졸졸 따라다니는 거지같은 새끼들
우리오빠가 죽었는데 우리가 죄인인마냥 텅빈방에 던져져 있었습니다.


밤새 고민했습니다. 내가 할수 있는게 도대체 뭘까..우리오빠라면 뭘하고 있을까..
내가 할수 있는건 네이트판에 글을 올리는 것과 우리오빠 뉴스기사에 댓글을 다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주길 많은 기자분들이 우리오빠의 죽음을 억울하지않게 기사를 써주시길..아무도 찾아오지않고 미안해하지 않더니 내가쓴 뉴스댓글을 국토부차관이신 분이 보셨는지 철도경찰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유족분들 흥분하지마시고 글을 쓰는건 자제해달랍니다.
조사가 더 길어질수도 있기에 자제해달랍니다.

내가 지금 못할짓이 있을까?
사고현장을 그다음날이 되어서야 가게되었는데.. 저는 한국에 이런곳이 있다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우리오빠가 일하던 현장을 본 부모님과 삼촌들은 말을 잇지못했고 철조망에 매달려 오열했습니다..

저 먼거리를 매일 걸어다니고 그냥길도 많이 걸으면 다리아픈데 자갈밭에 철길에..매일 저 크고 높은 열차들을 일일히 손으로 연결하고 떼고 위치바꾸고.. 열차에서 매일 뛰어내리고 오른다고 발목염증은 나을수가 없었고 열차가 지나가면서 튀는 자갈들로 인해 생긴 여기저기 시퍼런 멍들....

부족한 인력과 열악한 시설속에서 일하느라 힘들어서 간수치는 나빠진지 오래였던 우리 오빠가 그런곳에서 일을 하고있었다니 글을쓰는 지금도 숨이 막힙니다...
철길옆은 울창한 담쟁이덩쿨로 뒤덮힌 철조망으로 인해 사고가 나도 도망칠 공간도 없었고 cctv는 당연히 보이지도 않고 설치되있지도 않았으며 밤에는 불빛조차 환하지않아 어렴풋이 보이는 시야속에서 일을 했고 유일한 소통수단인 무전기 또한 상태가 좋지도 않은 그런 환경속...

대한민국 많은 청년들 이런환경속에서 일시킬려고 전공시험에 NCS시험에 자격증까지....
저희 오빠뿐만이 아니라 저희 오빠보다도 어린동생들도 다들 이런거지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쌩노가다를 한다는걸 부모님들이 다들 아실까요?

저희오빠가 서있는곳을 향해 철로노선이 이상하다는걸 감지했을텐대도 왜 중간에 멈추지도 않고 저희오빠를 밟고 밟고..
그 무거운 열차 수십대가 저희오빠를 밟고 지나 끝까지 들어갔답니다..
저많은 열차를 단 2명이서 그것도 숙련된 2명도 아닌 입사한지 얼마안된 인원들포함 2명이서 그일을 한다고 들었어요
숙련자들은 하나같이 일이 힘들다고 빠져나가기 급급하고 어린 신입사원들만 집어넣기 바쁜이곳에서 우리오빠는 너까지 나가면 너무힘들다는 윗분들의 말에 마음이 약해져 올해까지만 버티고 나가야겟다고 했는데..

그때 나가라고 할껄그랫나봐요
제 입을 찢어버리고 싶어요 정말.. 우리 오빠힘드니까 다른역으로 빨리 나가라고 할껄..오빠야 일하는곳 궁금하다그래도 절대 오지말라고 바쁘다고 괜찮다고 해도 우겨서라도 일하는곳을 한번이라도 가볼껄..
그랫으면 멱살이라도 잡고 회사나오라고 했을텐대..피아노치고 노래부르는걸 좋아해서 여자들보다도 손이 곱고 예뻣던 우리오빠손이 저렇게 험하게 될때까지 우리오빠 다리가 아파터지고 염증이 남아나질않았는대도 우리 걱정할까봐 곰탱이처럼 얘기도 안하던 우리오빠.. 내가 한번이라도 더 집에 찾아가볼껄..그랬으면 영양제라면 비타민도 먹지않던 우리오빠집에 있던 수많은 간약들과 영양제를 입에 털어넣던 우리오빠모습을 봤을텐대..


그 날 저녁 제가 쓴댓글 때문인지 모르지만 조금씩 기자님들이 연락을 주셨고 저랑 접선을 하기위해 연락을 수없이 하시던분들이 생기자 코레일 사장님께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모르겠어요 아직도 내가 뭘해야할지...

저희 부모님앞에 무릎꿇고 앉아 죄송하다고 하시는 사장님옆에서 같이 무릎꿇고 있던 어제 원하는걸 들어주겠다던 그 아저씨까지..장난치는것도 아니고 실실거리며 웃는 표정으로 얘기하던 그 면상판을 발로 짓이겨 버리고 싶은걸 억누르고 참았습니다. 본부장이라는 새끼가 진심으로 미안해하기는 커녕 실실거리는 꼬라지를 보고있으니 내손에 칼이라도 있었으면 당장에 찔러죽이고 싶던 그 심정...

저희부모님과 저는 그 날 처음으로 사람한테 미안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가식이였는지 사건이 커지는걸 막기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장님이 제 눈을 바라보고 정말 미안하다고 하는 그 말에 이틀내내 참아왔던 눈물이 터지고 죽어라 소리질렀습니다. 우리 오빠 생일이라서 맛있는거 먹기로 했는데 우리 엄마 선물사서 온다고 자랑했는데 어떡할거냐고 사건조사는 도대체 무슨조사를 그렇게 하냐고우리오빠 아직밥도 한끼 못먹고 저렇게 차가운데 혼자 누워있는데 배고플거아니냐고....
저희 아빠는 휘발유통매고 찾아가서 다 죽일거랍니다. 우리 오빠 억울한거 안풀어주고 회사 이미지 망가질까봐 오빠한테 다 덮어씌우면 다 죽일거래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일이든 다 할거예요 같이일하던 사람이 1명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이상하다는걸 빨리 인지해서 빨리멈췄었더라면..
피할공간이 넓어서 빨리 도망이라도 쳤었더라면..

오늘 아침 또다른 기사를 봤습니다. 우리오빠가 참변을 당하기전부터 선로변경장치에 이상이 여러번있었다는걸... 저희한테 설명하고 브리핑했을때는 전혀 알지못했던 사실인대 저 기자분은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것인지...
사전예방을 했더라면 저희오빠가 저런 참변을 당하지도 않았을텐대..

아직까지도 조사만 하고 있고 저희가족은 덩그러니 빈방에서 빈소아닌 빈소만 지키고 있습니다.. 아직저희오빠 얼굴도 못봤습니다..
시신상태가 너무 안좋아..지금 당장 볼수도 없대요..



우리 오빠야 얼마나 아팟을거야.. 그 큰열차들이.. 우리 오빠 생일인대.. 생일이라서 내가 맛있는것도 사주고 선물도 사줄랬는대.. 어제밤에 오빠야 닮은 동그란 보름달이 떠있더라? 얼굴이 동글동글해서 항상 곰돌이같고 오빠야지만 동생같이 귀여웠는데..
부산여자라 표현이 나긋나긋하지 않은 동생에 비해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착했던 우리 오빠얀대...나쁜짓을 한 적도 없고 항상 똑똑하고 특별한 사람이라 어디에서도 나는 내이름보다는 XX이동생으로 불렸고 나한테는 부모님보다도 더 큰산처럼 의지하는 오빠야였는대..주변사람들사이에서도 다정한 오빠덕에 항상 사이좋은 남매로 불렸고 부모님한테도 항상 다정하게 잘하는 착한 아들이였는대..

나 이제 어떻해야될까? 오빠야였으면 어떻게 헤쳐나갔을거야? 잠도 안오고..밥도안넘어가.. 물도 안들어가.. 잠을 좀 자야 오빠야가 꿈에라도 잠시 나올텐대..그치? 너무너무 보고싶어 내가 오빠야 절대절대 안억울하게 끝까지 싸울거야
난 우리 오빠 동생이니까 다 할수있어 

제발 우리 오빠 안 억울할수 있게 많은 분들이 이 사건에 대해 인지해주시고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발제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