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과 황실만 고증해본다.
원나라와 명나라 그리고 고려와 조선은
적서의 차별이 심하지 않고 장자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능력이었다.
반면 청나라는 적서의 차별이 엄격하다.
비록 1황자라도 어미가 낮은 후궁이면
후계가 못되며 황후나 황비 정도야 된다.
강희제는 4명의 황후와 50명의 후궁이 있었다.
적서의 차별은 이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
중기 이후부터 심각해 졌다.
첩이 몇명인가가 가문의 위세였다.
여기 저기 싸지르고 그리고는 나몰라다.
아비를 나리라 부르고 이복 형제를
도련님이라 부르며 그들의 정신세계는 무너진다.
그걸 개선하려한 군주가 정조이고
그를 끝으로 조선은 암흑기로 접어든다.
2025년 새삼 적서를 논하는건
사람 위에 사람없다라는 만고의 진리를 되새김하자는 거다.
분명 윤씨 부부는 사람 위에 군림하고자 했다.
사람을 속이고 종교를 속이고 나라를 속이고
조상과 겨례를 속이고 달콤한 꿀과 술만 빨려 했으니
유사 이래 이러한 역적 년놈은 천차만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