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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간이 없지 관심이 없냐!’ 현생에 치여 바쁜, 뉴스 볼 시간도 없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뉴스가 알려주지 않은 뉴스, 보면 볼수록 궁금한 뉴스를 5개 질문에 담았습니다. The 5가 묻고 기자가 답합니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오늘(17일) 밤 9시까지는 청구될 것으로 보입니다. 헌법재판소가 진행 중인 윤 대통령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은 오는 21일 열립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는 형사법적 책임을 묻는 수사와 정치적 책임을 묻는 탄핵심판에서 가려지겠지만, 기록으로 남겨야 할 다른 문제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상적인 ‘업무 해태’(무단결근·출근불량·지각과다)입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당일까지 윤 대통령이 지각을 감추려고 정시 출근하는 척 ‘위장출근 차량’을 운용했다는 증언과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 기상천외한 꼼수는 어떻게 세상에 알려진 걸까요? 한 달 동안의 ‘뻗치기’(취재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는 취재 수법) 끝에 ‘가짜출근’을 밝혀낸 김채운 정치부 기자에게 물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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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1] 처음에 어떻게 취재하게 됐나요?

김채운 기자: 지난해 여름쯤 한겨레 선배 기자가 경찰과 약속이 있었는데,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이 가짜출근 부대를 보낸다더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경찰 내부에서 전해 들었다면서요. 그 얘기를 듣고 제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현장 취재를 며칠 했는데, 정황을 잡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다 제 지인의 지인이 대통령 출·퇴근길 경호에 투입된 경찰이라는 걸 알게 됐고, 구체적인 가짜출근 정황을 전해 듣게 됐어요. 그 얘기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하게 된 거고요. 가장 중요한 건 대통령 관저 진입로 앞에서 뻗치기 하면서 대통령 출근 차량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였어요.

[The 2] 한 달간 무작정 출근 차량을 기다렸어요?

김채운 기자: 네. 관저 진입로 앞에서 뻗치기 하면서 대통령 출근 차량이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렸어요. 관저에서 차량이 나오면 그게 대통령실로 들어가는지도 확인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와 동료 기자가 관저랑 대통령실 쪽 카페 같은 곳에서 죽치고 앉아서 차가 나올 때까지 종일 대기했어요. 그런데 차가 순식간에 지나가니까, 잠깐 한눈을 팔거나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놓칠 수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출근하기 전 집에서 대통령 출근길 길목마다 있는 실시간 도로 상황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녹화해두고, 퇴근하고 가서 매일 확인하는 작업을 했어요. 경찰청 도시교통정보센터(UTIC) 누리집에 가면 누구나 실시간으로 주요 도로 상황을 볼 수 있거든요.

관저 인근엔 경찰이 많잖아요. 취재가 길어지다 보니, 제 얼굴을 못 알아보게 하기 위해 어느 날은 안경을 쓰고, 어느 날은 안 쓰기도 했어요. 카페에서 뻗치기 할 때 경찰이 들어오면 괜히 노트북으로 축구나 영화 켜 놓고 보는 척하기도 했고요.


[The 3] 결국 지난해 11월6일~12월6일 한 달 사이 세 번의 위장출근을 확인했다고요? 가짜출근했다는 건 어떻게 알았죠?

김채운 기자: 네. 제가 확인한 날짜는 11월25일과 11월29일, 그리고 비상계엄 당일인 12월3일이에요. 움직임이 비슷했어요. 오전 9시 전후로 한남동 관저를 빠져나간 대규모 출근 행렬 차량이 5분 뒤쯤 용산동 대통령실로 들어가요. 그런데 오전 9시40분, 오전 10시, 오후 1시쯤 대규모 출근 행렬이 또 이동하더라고요.

차가 나올 때마다 면밀히 관찰했는데요. (1차로) 가짜로 보이는 행렬이 지나갈 땐 관저 인근 경찰들의 긴장도가 눈에 띄게 낮았어요. 그 행렬이 지나가는데도 서로 잡담을 한다든가, 도로 말고 딴 곳을 본다든가 하는 거죠. 그런데 ‘진짜’가 지나갈 때면 경찰이 분주해졌어요. 교통 신호를 조작하는 표준 교통신호 제어기 뚜껑을 열고 도로 통제를 위해 대기했고요. 관저 방향으로 걷는 행인들을 검문하기 시작했고, 주차된 차 안에 누가 있는지 일일이 확인했어요. 대통령실 인근 경찰들은 진짜 출근 뒤엔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서로 인사하며 경계를 풀었고, 상당수가 철수했어요. ‘가짜’땐 안 그랬고요.

[The 4] 취재하다 경찰 조사도 받았다고요?

김채운 기자: 지난해 11월11일 생긴 일인데요. 제가 전체적인 걸 보려고 한남동 일대가 잘 보이는 빌딩을 찾았는데, 옥상이 열려 있더라고요. 휴대전화 화면을 망원경처럼 확대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그때가 딱 오전 9시 가짜출근 행렬이 나올 때였나 봐요. 밑에서 경찰들이 저를 보고 잡으러 온 거예요. 그 건물 1층에서 신분증과 가방, 휴대전화 사진첩의 휴지통까지 보여줬어요. 나중엔 용산경찰서 형사과장이 와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김 기자 거길 왜 올라갔어? 관저 쪽 찍으면 군사시설보호법 위반이야. 진짜 큰일 날 수도 있어. 뭐 기자놀이, 영웅놀이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는데…. 김 기자 이러면 나중에 결혼도 못 해.” ‘빨간 줄’(전과) 생기면 네 미래에 지장이 갈 거라는 식으로 얘기한 거죠. 사실 그 건물에선 관저가 전혀 보이지도 않았는데도요.

그 뒤 11월27일에 용산서 강력팀에 가서 5시간을 조사받았고, 다음 날인 11월28일 사건이 서울서부지검으로 송치됐어요. 실제 혐의는 (앞서 형사과장 등이 언급한) 군인이나 관저 촬영 이런 것도 아니었어요. ‘건조물침입’이었어요. 그 건물 건물주가 문제 삼는 걸 원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The 5] 위장출근이 보도된 뒤 반응이 어땠나요?

김채운 기자: 일단 시민들 반응이 컸는데요. 관저 앞 한남대로는 교통의 요충지잖아요. 서울 시내와 강남을 잇는 길이고요. 그런 길을 몇 번씩 신호 통제를 해가며 출근했고 심지어 가짜로도 했다니, 화가 난단 반응이 많았죠.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 전에, 국회 앞 시위에서 ‘최저시급 받는 나도 정시출근하는데 너는 맨날 지각 출근하냐’는 손팻말을 봤는데 좀 뿌듯하기도 했어요.

경찰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경찰들 글이 많이 올라왔는데,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었어요. “나도 3년 전(2022년) 저기서 일했는데 그동안 말 못해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같은 글도 있었고요. 경찰관 메일도 여럿 왔는데요. ‘대통령 출·퇴근 경호에 투입됐는데, 빈 차로 출근하는 대통령을 볼 때마다 심한 분노가 올라왔다. 출·퇴근 경호 때문에 새벽 일찍 모이고, 밤늦게까지 대기하면서 건강과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윤 대통령은 공권력 동원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계엄 때도 대부분의 군인이 아무것도 모른 채 국회에 투입됐잖아요. 그간 출·퇴근길에 수많은 경찰관이 동원됐는데, 그 중엔 ‘빈 차’를 위한 동원도 있었던 것이고요. 윤 대통령이 자신이 가진 권한을 함부로 휘두르고, 그것 때문에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본 한 단면을 가짜출근이 잘 보여줬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