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일이 직접 지시하여 88 서울 올림픽 방해를 목적으로 특수 훈련된 공작원 김승일.김현희 (하치아 신이치와 아치아 마유미로 일본인 관광객으로 신분 위장)이가 이라크 바그다드에 환승 위해 내리기 전 대한항공 기체에 몰래 설치한 시한 폭탄이 터져 탑승객 전원이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사망한 사고 입니다. 


1. 사고발생


1987년 11월 29일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의 보잉 707 기종의 KE858편(HL7406)이 UAE의 아부다비 국제공항을 거쳐서울로 오기 전의 마지막 중간 기착지인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 도중, 인도양 상공에서 교신이 두절되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초기에는 단순 기체 고장 및 돌풍같은 갑작스런 기상 악화 가능성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이 중에 기체 고장의 가능성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사실 사고기인 HL7406은 1987년 9월 2일 랜딩 기어 앞바퀴가 나오지 않아 비상 동체착륙을 하는 등의 기체 결함으로 인한 사고 전력이 있었고, 수리한 후 첫 출항하여 김포국제공항으로 귀국하는 항공편이 바로 858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사고기의 고장 전력은 폭파 사건 음모론의 중요한 정황 증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보통 주변 공항 관제탑이나 공용 통신망으로 구조요청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여러모로 의아한 사건이었기에 이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은 테러에 의한 공중폭발. 물론 TWA 800편 추락 사고처럼 전기 합선 등의 원인으로 폭발하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폭탄처럼 갑자기 뻥! 하는건 힘들다.


2. 범인 검거


조사 과정에서, 중간 기항지였던 아부다비 국제공항에서 내린 일본인 남녀승객 2명이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고, 즉시 이들이 검거되었다. 검거된 남성의 신원은 하치야 신이치(본명:김승일), 여성은 하치야 마유미였다. 이들은 부녀지간으로 위장하고 있었는데 검거 후 청산가리 앰플을 깨물어 자살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남자는 사망했으나 여자는 앰플을 깨물기는 했지만 재빨리 빼앗기는 바람에 자살에 실패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위조된 일본 여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으로 송환되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대한민국 정부에서 청산가리 앰플을 깨물어 자살하는 것은 북한의 수법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여 하치야 마유미를 최대한 빨리 국내로 압송할 수 있었다. 사건 수사를 담당한 안기부1988 서울 올림픽 방해를 위한 북한의 테러로 결론짓고, 추가 조사를 벌여 하치야 마유미로부터 본명은 김현희이며 북한 조선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의 공작원으로서 지령을 받고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했다는 자백을 받아내었다. 또한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비롯하여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편에 잠입하기 위해 경유한 나라들에서 정보를 받은 결과 북한의 중앙통신의 베오그라드 지부에서 김현희를 목격한 정보도 확인했다.

여담으로 북한에 남아 있던 김현희의 가족들은 김현희가 자살에 실패하자 김정일의 지시로 모두 요덕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한다. 이는 1995년 성혜랑씨가 아들 이한영씨 와의 전화 통화에서 얘기했던 내용이라고 한다. 흠좀무당시 신문 기사 또한 김정일은 자살에 실패하고 남한 당국에 붙잡힌 김현희 소식을 듣고 "녀자는 요물이다"는 독설과 함께 김현희가 속해 있던 대외정보조사부(35호실)에서 여성 공작원들을 모두 방출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규정했고 김현희는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추후 음모론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자 일종의 살아 있는 증거로 남겨 두려는 목적,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조금이라도 김현희로부터 더 캐내야 하는 차원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재량으로 전격 사면을 받았으며, 이후 본인의 회고록을 저술하기도 하고 가끔씩 안보 강연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등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 가고 있다.


학계의 의견은 확고하다. 정설은 서울 올림픽를 방해하기 위한 테러라는 것이다. 당시에 확증은 없었지만 사건 발생 1년 전인 1986년에 발생한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도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소행으로 잠정 결론이 내려진 상황이었고, 서울 올림픽 유치 직후부터 북한은 올림픽 경기 일부를 내놓으라거나 평양 올림픽으로 대회명을 바꿔야 한다는 개드립을 치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거기에 아이러니하게도, 858기는 폭파 당시 올림픽 특수 도장을 하고 있었다.

특히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자유 진영이 참가하지 않았고, 1984 LA 올림픽에는 공산 진영이 보이콧해 반쪽 대회로 전락해 버렸다. 1988 서울 올림픽에 북한의 우방국이었던 중국과 소련이 참가하기로 결정하면서 다급했던 북한은 공산 진영의 참가를 막기 위해 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발췌:  https://namu.wiki/w/%EB%8C%80%ED%95%9C%ED%95%AD%EA%B3%B5%20858%ED%8E%B8%20%ED%8F%AD%ED%8C%8C%20%EC%82%AC%EA%B1%B4)


https://www.youtube.com/watch?v=i1s1UW3jF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