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건국 전쟁으로 핫한데 미군정 시절의 혼란은 얘기를 안 하더군.

 

우익쪽이 이승만이었다면 좌익은 박헌영이었어. 남쪽은박헌영 북쪽은 김일성이라고 할 정도였지.

한반도를 공산화하려는 게 그의 목적이었고 남로당을  이용한 좌경화를 위해 온갖 나쁜짓을 저지르지.

 

돈이 필요해진 박헌영은 위조지폐를 만들었고 이게 큰 문제가 되어서 체포령이 떨어지지. 그리고 후엔 북한으로 넘어가. 좌익은 총파업과 데모로 사회를 혼란시키는데 9월 총파업과  10월 대구 사건이 4.3사건 여순 사건의 불씨가 돼.

 

아무튼 총파업후 대구 광장에서 시위를 하던 중 경찰이 포위되고 돌을 던지기 시작해.건물 2층에서는 경찰을  죽여라 하면서 고함쳤고,당황한 경찰은 쏭을 쏘게 돼. 그중에 한명이 총에 맞았고 이로 인해 대규모 경찰학살 사건의 도화선이 돼.

 

10월 2일 대규모 집회를 열었는데 대구 의대생들이 총에 맞은 시체라며 시신을 들고 시가 행진을 시작하지. 지나가던 사람들도 호응하면서 엄청난 기세로 대구 경찰서로 향했고  서장 면담을 요구하게 돼. 경찰 50명은 오도가도 못하고 경찰처장이 나서서 조용히 해산하면 요구조건을 검토한다고  했지만 성난 군중들은 말을 듣지 않았지.

 

미군정 경찰 책임자인 플레이어는 서장에게 무력진압을 명령하게 돼.하지만 서장은 겁을 먹었는지 군중들 주장대로 무기를 무기고에 넣고 해산하기를 기다렸지.

 

근데 해산하겠냐고? 오히려 총기를 꺼내고 유치장을 열어서 죄수들을 다 풀어줘. 그후  대학교를 돌면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우익 인사를 죽이는 등 난장판이 되고 말아. 순경 집에 찾아가서 순경을 죽이고 아내 딸마저 죽이는 등 난동이 끊이지를 않아. 잔혹한 정도도 심해서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였지. 이렇게 시작된 사건이 경북 전체로 퍼지게 돼. 

 

가장 잔혹했던게 영천이었는데 이것은 다음에.

좌익들의 잔인함과 공산당이 얼마나 잔혹했는지는 대구 사건과 4.3 , 여순 사건을 자세히 조사하면 알게 돼.그런데 이사건을 폭동이 아닌 항쟁으로 말하는 인간도 있으니 얼마나 역사가 왜곡되고 있는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