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7 10:12 입력

[언더그라운드.넷] “귀한 사진 한장 구경하세요.” 지난해 6월 한 지역 인터넷신문이 게시한 사진이다. 제목은 이렇다. ‘경부고속도로 개설을 반대하던 김영삼과 김대중의 시위 사진’, 글엔 이렇게 부연이 돼 있다.

“정치한다는 자들은 이처럼 귀한 사진을 교과서에 싣자는 소리 한마디 없는가. 유치원부터 노인대학 교재에까지 싣고 가가호호 벽에 붙여 길이길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사진은 인터넷에서 꽤 유명한 사진이다.

기자는 지난 2010년 경부고속도로를 둘러싼 논란을 다룬 연중기획 시리즈 글에서 이 사진의 진위를 검증했고, 다시 2015년 한 주간지의 연재기사가 같은 주장을 내놓자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비서 역할을 했던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증언 등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 시위를 한 적이 없음을 이 코너에서 밝혔다.

그런데 팩트체크가 완전할 수 없었던 것은 조작 사진의 원본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오마이뉴스는 기자의 기사를 인용하는 한편, 사진 속 등장하는 굴착기의 위험경고 표지나 유압배열을 보면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의 굴착기가 아니라 2000년 전후에 두산에서 출시된 140W 모델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사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추론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실체가 밝혀졌다. 국제뉴스통신사 AFP가 운영하는 팩트체크의 아시아태평양판에서 지난 4월 27일 이 사진의 실체를 다뤘다. AFP 팩트체크에 따르면 원본은 뉴시스가 2007년 10월 24일 보도한 사진이라는 것이다. 사실일까.

실제 AFP가 제시한 링크를 통해 원본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립 절대 안 돼!’라는 제목의 뉴시스 2007년 10월 24일자 보도다.

보도에 따르면 이 사진은 충북 진천·음성군의 폐기물종합처리장 추가시설 조성에 반대해 맹동면 통동리 등 인근 주민들이 굴착기를 동원해 매립장 설치 반대 시위 사흘째를 담은 것이다.

“저희가 통신 기사를 송고할 때 1메가 이하로 화소수를 낮춰 보냅니다. 원본파일이었다면 피켓 내용만 봐도 사실이 아닌 것을 알 텐데….”

11월 24일 기자와 통화한 당시 해당기사를 쓴 연종영 기자의 말이다. 그는 현재 뉴시스 충북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이 10년 넘도록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한 DJ·YS의 연좌시위’ 가짜뉴스에 동원됐다는 것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이튿날 음성군청 측에 확인한 연 본부장이 DJ·YS로 지목된 두 사람의 인적사항에 대한 추가정보를 알려왔다.

“상의 흰색을 입은 분은 김찬O씨이고, 손을 치켜든 분은 김선O씨라고 합니다. 두분 모두 지금은 작고하셨고요.”

기자와 통화한 음성군청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두분 다 통동리 분들인데, 그 동네가 경주김씨 집성촌이거든요. 동네 사람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물어봤어요. 뭣 때문인지는 이야기 안 했습니다. 사실 누워계시는 분 중 한분이 제 동창 아버지인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가짜뉴스라는 게 이렇게 나오는 거군요.”

사실 11년 전 첫 팩트체크를 했지만 조작된 사진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지금도 포털 검색엔진에 ‘김대중’, ‘경부고속도로’라는 검색어를 넣고 검색하면 흑백으로 변조하고 피켓 내용을 지워 ‘고속도로 반대’를 조잡하게 써놓은 위 조작 사진이 최근까지도 역사적 사실을 담은 사진처럼 유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