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에 걸쳐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가 박정희 대통령이 다카키 마사오 이외에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으로 이중 창씨개명을 했다는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인 이유를 김형욱 회고록을 근거로 추적해 보았다. ‘김형욱 회고록같은 악의적 기록이 나타나면 문명자가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에 옮기고 정운현이 한겨레에 연재하고 최상천이 알몸 박정희에 과장하는 식으로 확대 재생산한다. 대한민국 독립을 방해한 김일성을 독립투사로 떠받드는 친북좌파들은 김일성과 대결하는 박정희에게 불리한 정보라면 거짓말도 인용하는 파렴치를 서슴지 않는다.

 

오카모토 히로시의 정보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나 국회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다. 岡本寬로 검색하면 1926년부터 광주고등보통학교 교유로 시작한 근무기록이 나타나며 심지어 1929113일 광주학생사건에도 개입했다. 1935년 조선총독부 직원록에 岡本實라는 뜬금없는 기록이 발견되는데 김형욱 회고록의 왜곡은 여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1940330일 동아일보에는 대구사범학교 교장에서 함경북도 시학관으로 발령되었다는 기사도 있다. 194441일부터 해방 직전까지 청주사범학교 교장으로 근무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친북좌파는 박정희를 악질 친일분자로 만들기 위해 이중 창씨개명 소동을 벌였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런 허위기록들을 증거로 삼아 친일인명사전에 올렸다. 박정희 이중 창씨개명 선동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유발시킨 최순실 태블릿과 너무도 닮아있다. 태블릿은 최순실 소유도 아니며 대통령 연설을 고치는 문서수정 기능도 없다. 허구의 혈서와 창씨개명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하듯 날조된 태블릿으로 시작해 묵시적 청탁3자 뇌물이란 죄명을 조작했다. 박정희 이중 창씨개명 선동과 태블릿 날조는 대한민국 역사가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수치다.


1937년 대구사범교유 오카모토히로시 1940년 함북시학관 발령기사.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