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다카키 마사오라는 창씨개명 이외에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으로 두 번이나 창씨개명했다는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 내용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밝혔다. 약속대로 이번 회에서는 유시민의 주장이 거짓말인 이유를 설명하겠다. 박정희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개명했다는 악의적 선동은 1979년 발간된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회고록에서 비롯되었다.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원작자 김경재(허풍으로 이름난)와 출판사가 군사정부의 위협 때문에 박사월(朴思月)이란 가명까지 써야했다며 대단한 역사적 기록처럼 자랑하는 책이다.
문제의 ‘김형욱 회고록’ 2권 34페이지에 “창씨개명으로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를, 통명(通名)으로 다카키 마사오(高本正男)를 사용했다”고 서술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호적이나 일본 육군사관학교 명부편찬회에서 발간한 ‘육군사관학교명부 50기以降’에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라는 이름은 있지만,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라는 이름은 없다. 박정희의 한자명이 高木正雄가 아닌 高本正男으로 표기된 이유는 김형욱의 부하였던 중앙정보부 제3국장 김영민의 잘못된 첩보를 중정부장을 그만둔 10년 후인 1979년의 기억을 김경재에게 구술하면서 이중으로 꼬였기 때문이다.
유시민의 비극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왜곡된 기억에서 비롯된 가짜 이름을 인용하면서 시작되었다.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는 박정희가 대구사범학교 5학년생이던 1937년 학생감 오카모토 히로시(岡本寬)의 기억 착오다. 오카모토 히로시는 광주고등보통학교 9급 교유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3급 시학관까지 승진한 인물이다. 그의 한자이름 岡本寬가 岡本實과 비슷해서 이중 창씨개명이란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조선총독부조차 이름을 헷갈려 1935년도 직원록에 岡本實로 기록하기도 했다. (글이 길어졌으므로) 3회로 옮겨 증거사진 첨부하여 깔끔하게 마무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