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이 ‘나의 한국현대사’ 개정증보판을 출간했다. 왜곡 투성 쓰레기를 읽느라 구토를 느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을 향한 증오는 도가 지나쳐 초판 95쪽은 그의 창씨개명을 “그때 박정희 생도는 다카키 마사오였던 이름을 오카모토 미노루로 바꾸었다. 당시 평범한 조선 사람에게 창씨개명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지만, 두 번이나 창씨개명하는 일은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박정희는 두 번 창씨개명하지 않았다.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창씨개명은 허구다. 이런 무식꾼이 역사가라며 반일을 선동하고 국민을 현혹한다.
개정증보판은 이런 거짓말을 삭제했을까? 혹시 해서 꼼꼼히 살펴봤지만, 역시 변하지 않았다. 개정증보판 91쪽에서도 “그때 박정희 생도는 이름을 다카키 마사오에서 오카모토 미노루로 바꿨는데 평범한 조선 사람에게 창씨개명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지만, 두 번 창씨개명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로 초판과 내용은 같지만, 중문을 복문으로 살짝 바꿔 그대로 실었다. 박정희 창씨개명에 대한 유시민의 인식 수준이 신념으로 똘똘 뭉친 단순무식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인용 착오라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사실 확인은 오로지 유시민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조선인에게 창씨개명은 아픈 상처다. 1940년 2월 11일 창씨개명령이 발령된 일주일인 2월 17일에 조선인 80% 이상이 창씨개명을 신고했다. 박정희의 창씨개명인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도 대다수 조선인들처럼 가족 모두 개명했기 때문이다. 高木은 고령(高靈) 박(朴)씨를 상징하며 고향과 선조의 흔적을 간직하려는 가난한 집안의 고육지책이었다. 오히려 일제는 창씨개명을 강요하지 않았음을 선전하려고 매국노 고종 이희(李熙)와 1급 친일파 을사오적들은 조선식 이름을 쓰도록 허용했다. (글이 길어졌으므로) 2회로 옮겨 유시민이 단순무식한 증거를 제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