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 원본도 없는 마이크로필름 상태의 만주신문 혈서기사는 너무도 허술합니다. 1939년(康德 6年) 2월 24일자 만주국 공보에 박정희는 아예 응시조차 하지 않은 신경군관학교 제1기 합격자가 발표됩니다. 만주신문은 1939년 3월 29일에 도착한 제1기 관련 혈서를 3월 31일자로 보도합니다. 아무리 늦어도 일주일이면 도착하는 혈서 편지가 합격자 발표 33일 뒤에 도착했다니 의아합니다. 날짜조차 맞지 않는 박정희 혈서기사는 군관학교 제1기 모집과는 전혀 관련 없으며 조작이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러자 혈서가 1940년 1월 4일 제2기 응시용이라는 해괴한 주장(https://youtu.be/QHgORkBhFOc)도 등장합니다. 제1기 시험에는 연령 초과를 이유로 거부되었지만, 박정희가 실제로 합격한 제2기에 효력을 발휘했다는 궤변입니다.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인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는 1939년 3월 31일 기사는 혈서가 7개월 뒤의 제2기 시험과 전혀 관련 없다는 확실하고 명백한 증거인데도 억지를 부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