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편


마지막편



여기 사람들은 또한 자기가 쓰고자 하는 것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 검열은 없으나 작가들은 혁명정신에 입각하여 자기가 쓸 글의 주제와 문체를 강요받게 되며 글에 주석의 뜻을 반영할 것을 강요받게 된다. 거기에서는 공동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에 우선한다." (여행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받지만 수령이 결정한 공동의 이해가 우선이 된다면 이 또한 감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3세계의 어떤 나라도 북한처럼 그렇게 긍정적인 면들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는 없다. 즉, 실업이 없고, 무주택자가 없고, 마피아가 없고, 부패도 없고, 어떠한 빈곤도 없고, 약물중독도 없고, 윤리적 인간적 가치의 파괴도 없다." (린저와 같은 서구 지식인의 범죄, 약물, 슬럼이 없는 사회에 대한 동경이 엿보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250페이지의 시점별로 나열된 기행문 형식의 글을 제가 임의로 몇 개의 주제로 재요약을 하다  

하다보니 원문의 내용이 온전히 전달되었는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1980년대 후반 서독 국적의 한국인 남북한 연구자(남한 당국이 친북인사로 분류하였던)가 안기부의 감시를 받는 조건(?)으로 남한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연구자의 이름은 가물가물하지만 그 분이 이야기한 것 중 2가지가 아직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는 서독에서 받아보는 북한 노동신문의 값이 수십년동안 한번도 인상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지금과 같은 인터넷도 없이 북한에서 일일이 항공편으로 서독에 배달해야 하는데 구독료를 올리지 않는 것은 받아보는 처지에서는 좋았지만 정말 괜찮은 것인지걱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린저의 방문기에 언급된 53년 이후 인플레가 없다는 이야기가 결코 허튼 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제한적이지만 국제교류로 인한 가격인상은 모두 사회적 부담으로 버텼다는 것인데 과연 그 비용 부담에 대한 적절성은 누가 어떤식으로 관리를 했는지 구성원들은 알았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두번째로 그는 당시 남한과 북한을 각각 지옥과 감옥에 비유했는데, 그 비유는 한동안 설득력이 꽤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만 더 첨언을 하면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남한 정치경제는 북한 영향력을 배제하고 논하기는 매우 어렵지 않았을까 합니다. 전쟁이라는 극한 형식으로 통일 시도를 벌이기도 했지만 남북한 민중에게는 체제선택의 이슈가 늘 상존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