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지금 현재 오늘은 시간이 많이 남아 도네요. 이런 날도 흔치 않은데, 오래만에 맘먹고 그 동안 내가 쌓은 모든 지식을 총 집합시켜 한반도의 사학적인 부분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생각나는데로 글을 써 올리려 합니다. 왜곡되고 진실,거짓을 가려서 올바른 역사를 그리면서 글을 올려 보지요. 우리 국민은 대단히 오해하고 다각적이지 못한 고차원적인 역사관을 어둠에 가려 인식을 못합니다. 특히 일반국민분 들은요.. 언젠가 시간이 될때 한번 마음을 먹고 한번 이런쪽으로 나의 의견을 올리려 했는데 바로 오늘이 되네요.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이란..?


 

한국 국민이 280만명 죽어야 했다.


 

◆ 수많은 선열들이 목숨을 바쳐 무궁한 긴 역사를 지켜온 나라


◆ 세계 200 여 나라 중 경제 규모 10위 권에 드는 경제대국에 진입

중인 나라


◆ <노랭이.양놈><?오랑케. 땟놈>.<로스케><왜놈>들에 의해 식민지와 분단의

역사로 일백년(100 년)이상 고통속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


◆ 6.25와 같이 외세가 남북으로 분단시켜 불지르게 하고 도와

준다고 세계 20 여 국가의 각축전의 전쟁 무대가 된 나라.


◆ 세계 강국들이 새로 개발된 신무기(사드)의 시험 무대로 되어가고

있는 나라


◆ 세계 평화를 구가하며 전쟁을 가장 많이하는 국가를 상전으로

받들고 섬기는 나라

?

◆ 동북아대륙에서 침략자들에 의해 흉노족 선비족 말갈족 글안족

여진족 등 수많은 민족이 사라졌지만 조상들이 목숨을 바쳐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 현존하고 있는 배달민족 후예들의 나라


◆ 상감마마님은 진수성찬 과식으로 몸이 무거워 다리를 절며

다니지만 굶어죽는 백성이 250만 명이나 되는 이웃을 가진 나라


 

1932년 김구선생의 지시를 받은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폭탄 투척사건으로 중국군 백만명이 할 수 없는 일을 조선 청년 한사람이 해냈다며 장개석과 김구선생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됐습니다.

 

 

1945년 7월 26일 독일의 포즈담 회담(참석자; 장개석 트로만. 처칠 등 3명이 참석, 스탈린은 불참했으나 회담 내용을 확인하고 서명했음)에 앞서 김구선생의 부탁을 받은 장개석은 일본으로 부터 조선은 독립해야한다고 역설함으로 회담 참석 대표들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독립시킬 것을 약속했습니다.


 

1980년대 말 전국이 노사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 우리나라 한 TV에서 의미있는 화면이 방영됐습니다. 1945년 미국에서 한국의 분단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미국인은 처음 미국은 2차 대전이 끝나면 극동에서 미군이 주둔할 곳을 찾던 중 미국은 미군 주둔의 적당한 곳으로 일본이 세운 만주국(1932년에서 1945년까지 존재)을 인정하고 이 만주국에 미군을 주둔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포즈담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에 적당한 시기 라는 단서가 있었지만 사실상 조선의 독립이 확정되자 미국은 만주를 버리고 극동에서 미군의 주둔지를 조선으로 결정했습니다.


 

러스크는 후일 자신이 한국의 3.8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분단하기로 한데 대해서 미군은 1천KM나 먼 오끼나와에 머물러 있었고 소련(러시아)군이 남하 한국의 중심지 서울이 공산화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남북 분단을 제안 소련에서 3.8선까지 점령하게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한국의 분단을 제안했다고 비겁하고 더러운 변명을 하고 있지만 한국분단시 그 자리에 있었다는 분은 1945년 8월 9일 소련이 만주와 조선을 향한 대일 전에 참전하기 이전 7월 26일에서 8월 6일 사이에 미국은 소련이 만주와 우리나라 3.8선까지 점령하도록 미국의 제안으로 소련과 협의가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을 남북으로 분단할 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미국인은 러스크(1945년 당시 육군 대령으로 미 국무부에 근무. 케네디 대통령에서 존슨 대통령 때인 1961년에서 1969년까지 미 국무장관으로 있었으며 미 월남간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1964년.1966년. 1991년 등 여러번 한국을 방한한 적이 있음)는 한국은 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식민지를 거친 외세에 의해서 고통을 많이 받은 나라로 한국 국내에 외국군대가 주둔한다면 민족주의자들의 반대운동으로 그대로 미군을 주둔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 소련과 협의 한국을 남북으로 분단하고 서로 싸우게 만들고 도와준다는 명분을 만들어 미군을 한국에 주둔해야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당시 러스크의 한국에 대한 남북분단의 제안이 처음 나왔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미국인 모두가 러스크의 이 제안이 성공하기 힘들다고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미국은 러스크의 이 제안에 관심을 갖게되고 이 제안을 받아드려 소련과 합의 한국을 남북으로 분단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미국은 분단된 한국을 이념 분쟁을 일으켜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어야 하며 한국인들은 생각이 깊지 않아 자손에게 물려줄 유산은 없어도 원수를 갚어달라는 유언을 만들기에 적당한 국민으로 이 방법을 이용하면 미군의 한국주둔를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 이 방법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세계지도상에 표시되지도 안했는데 미국은 한국인의 민족성까지 연구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TV에서 1945년 미국의 지도자들이 한국을 남북으로 분단하기로 결정할 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분의 이 말을 듣고 미국과 나치 독일의 히틀러나 이 같은 잔인한 생각과 방법을 가질 수 있지 스탈린도 하나의 국가를 무력으로 점령하면 그것으로 끝나지 대를 물려가며 자손들에게 까지 서로 철천지원수로 만들어 원수를 갚어달라는 유언을 만들게 하는 방법으로 상대 국가를 지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대한 관계는 실로 스탈린보다 더 잔인한 방법을 택했다고 보여 집니다.

 

동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공산화에 전념하고 극동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 소련에 대해서 미국은 약속대로 대일전에 참전하도록 10여일 사이에 2번이나 독촉하고 이에 소련은 1945년 8월 9일에 미국의 요청에 따라 미국과의 약속 그대로 만주와 한반도를 점령 우리나라 3.8선에 머물고 한 달이 거의 다 된 이 9월초순에 미군은 우리나라에 상륙했습니다.당시 일본은 땅 한평이 남을때까지 미국과 싸우겠다고 외쳤지만 육해공군이 재기불능상태로 소련에 대해서 미국에 항복할 것을 중개해달라고 부탁한 상태였습니다.


 

만주에 입성한 소련군은 스탈린의 지시로 6천명의 일본군 포로 중 하루빈에 있는 마루타라고 알려진 731부대 내에서 벌어진 인간 생체실험의 관련자들을 색출하도록 지시했지만 미국은 먼저 이 인간생체실험의 관련문건을 미국 자신들에게 넘겨줄것을 약속받고 인간생체실험 고위 관련자들을 모두 안전하게 대피시킨 후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50년이 되는 1995년 미국은 이에 대한 인정을 공식 발표했는데 생체실험 최고 책임자 <이시이>에게 인간생체실험에 수고가 많았다는 대가로 먼저 1500만엔을 주고 얼마뒤 2500만엔 합하여 4000만엔을 줬는데 그당시 엄청난 거액이었다고 합니다.


 

1995년 미국의 이 발표를 우리나라 KBS TV에서 뉴스로 이를 보도하는 아나운서도 731부대 이 원흉 이시이는 미국의 도움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고 갔다며 개탄스러워 했습니다.1951년 미국은 한국 6.25전쟁 중 이시이 이 인간을 한국전에 모시고 다니면서 많은 조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자 일본에 대한 전쟁책임을 묻기위한 전쟁재판국으로 미국 중국 소련 호주 뉴질랜드의 5개국이 선정되었는데 중국과 소련은 731부대 대표 이시이(계급 준장)를 전범자로 재판에 세울 것을 주장했습니다.

 

 

생체실험 문건을 비밀리에 넘겨받은 미국은 이시이를 살리기 위해서 미국 대통령 트루만을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전쟁 범죄인이라며 국제 재판소에 제소한다고 외치게하고 미국은 이렇게 되면 미국이 대망신을 당하게 된다며 중국 소련을 설득 이시이에게 고소를 취하하게 만들고 전쟁범죄자에서 제외시키게하여 전범자에서 제외시켜 살아남었습니다. 이시이 이 흉악한 인간을 전범자에서 제외 살리기 위한 미국의 계획에 중국 소련이 완전히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이상...         0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