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이니님'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

 
 
 
기사입력2020.03.02. 오전 3:17
https://ssl.pstatic.net/static.news/image/news/m/2020/01/29/sp_n.png"); background-size: 300px 287px; width: 33px; height: 31px; font-size: 10.72788px; line-height: 1; word-wrap: break-word; word-break: break-all; white-space: normal; text-align: center; letter-spacing: -1px; position: relative; display: block; border: 1px solid rgb(235, 235, 235); background-position: -68px -173px; background-repeat: no-repeat no-repeat;" target="_blank">글자 크기 변경하기
 
https://ssl.pstatic.net/static.news/image/news/m/2020/01/29/sp_n.png"); background-size: 300px 287px; width: 33px; height: 31px; display: block; border: 1px solid rgb(235, 235, 235); vertical-align: top; background-position: -138px -173px; background-repeat: no-repeat no-repeat;">SNS 보내기
한번 굳힌 생각 안 바꾸는 대통령… 불리한 사안은 그저 침묵할 뿐
지지 일색인 '문빠' 공간만 관심… 편협 코드·'팬덤' 마취서 깨어나야


배성규 정치부장

문재인 대통령의 대화법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일단 상대의 말을 조용히 듣는다. 하지만 비판엔 명확한 답을 하지 않고 비켜간다. 불리한 사안에는 아무 언급을 하지 않을 때가 많다. 조국 전 법무장관 비리 의혹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 때 문 대통령은 한 달 넘게 침묵했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입장을 밝힐 일인데도 말이다. 북한 문제에선 미국의 반대에도 '교류협력 추진' 의사를 수차례나 밝혔던 것과 대조적이다.

문 대통령이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문 대통령은 지난 28일 여야 대표 회동에서 '코로나 방역 실패' 지적과 사과 요구에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신천지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한 야당 대표는 "책임론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눈치였다"고 했다. 대통령의 침묵은 곧 '내가 틀리지 않는다'는 항변이다.

문 대통령은 자기 생각과 확신이 강한 사람이다. 친문 인사들은 "사림(士林) 같은 분"이라고 표현한다. "누가 뭐래도 소신대로 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번 굳힌 생각은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숱한 논란에도 '대북 구애(求愛)'와 반(反)시장적 소득 주도 성장을 거두지 않았다. 의료계의 거듭된 요구에도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은 것 또한 '친중(親中) 코드'가 뿌리일 가능성이 크다. 탈원전 정책에서는 오기마저 느껴진다.

문 대통령은 주변과 대면(對面) 접촉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 인사는 물론이고 청와대 비서진도 마찬가지다. 해외 순방 때 공식 행사가 없으면 혼자 숙소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실장·수석들도 방에 들어가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을 따로 만났다는 여당 인사도 드물다. 청와대나 부처에선 주로 서면 보고를 많이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고서가 너무 많아 '분량을 5장 이내로 줄이라'는 지침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대통령이 보고서에 파묻힌 사이, 현장의 국민 목소리, 여야 정치권의 기류를 생생하게 전달할 통로는 막히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 방향이 잘못됐다고 진언해 줄 사람도 사라지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그곳은 친문(親文) 지지층, 이른바 '문빠'들의 활동 공간이다. 거기서 문 대통령은 절대적 존재다.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도, 오류를 범할 수도 없다. '이니님(문 대통령의 애칭)'이 하는 일은 무조건 지지하고 떠받드는 팬덤(fandom)의 세상이다. 문 대통령의 '북한·친중·반일(反日)·반시장' 코드는 이들에게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돼 버렸다. 총리도, 장관도, 여당 지도부도 이견을 말할 수 없는 구조다. 혹여 딴소리를 하면 그게 누구더라도 친문의 '마녀 사냥'이 시작된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 이를 방치하고 있다. 홍위병의 '양념' 맛에 이미 길들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나라는 추락하고 국민은 아우성치는데 문 정권은 집단적인 '무오류(無誤謬) 최면'에 걸려 있다. 상식과 정의, 법원칙을 어겨도 잘못된 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문(文) 코드'가 최고의 가치다. 여기에 용기 있게 '노(No)'라고 말할 장관이나 의원 한 명 보이질 않는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말했다. "실수하는 게 인간이다. 그러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면 바보다." 잘못된 건 인정하고 편협한 코드와 팬덤의 마취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문 정부 후반기에는 악몽이 덮칠 것이다.

[배성규 정치부장 vega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