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문 닫는 게 나라를 돕는 길이다 [取중眞담] 언론의 금도를 넘어선 <조선>의 DJ 비판     ▲ '김 전 대통령은 쉬는 게 나라를 돕는 길이다'라는 제목의 <조선> 24일자 사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쉬는 게 나라를 돕는 길이다."

10월 24일자 <조선일보>의 사설 제목이다. 특정 신문이 국가원로인 전직 대통령을 이런 식으로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비판하는 것은 언론의 '금도'를 벗어난 것이다.

이 신문은 이날 "김 전 대통령이 지난 9일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후 하루 걸러 언론 인터뷰, 다시 하루 걸러 대중강연이란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캠페인'이라고 비아냥거리며 비판했다.

이 신문이 김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까닭은 그가 북핵 사태의 '미국 책임론'을 거론하며 '국제 공조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라는 자체 진단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실제로 이 신문은 "현재의 북핵사태에는 미국에도 책임이 있으며, 햇볕정책은 큰 성과를 거뒀고, 북한을 제재하면 무력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김 전 대통령의 캠페인을 계기로 "노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 직후 국제사회와 공동보조를 취해 대북 정책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던 입장에서 '한국적 해결'이란 국제 고립의 길로 다시 돌아서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의 '캠페인'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 기조가 다시 원점으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신문이 내린 결론이 '김 전 대통령은 쉬는 게 나라를 돕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하루가 멀게 국제 공조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고 그 목소리 쪽으로 일부 세력이 가담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말에 일리가 아주 없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가 원로인 전 대통령이 자신의 그 일리를 건지기 위해 대한민국을 국제적 고립의 길로 빗나가도록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국가 위기에 나라의 중심에 서야 할 국가 원로인 김 전 대통령은 지금 쉬는 게 나라를 돕는 길이다."

그렇다면 과연 <조선>의 지적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제 공조와 다른 목소리를 내어 대한민국을 국제적 고립의 길로 빗나가도록 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은 '아니올시다'이다.

우선 김 전 대통령은 9일부터 23일 사이에 4번의 강연과 4번의 언론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조선>의 지적대로, 그 네 번의 언론 인터뷰는 모두 외국 언론을 상대로 한 것이다. 14일의 미국 CBS 방송 인터뷰, 같은 날의 영국 로이터 통신에 실린 인터뷰, 16일 게재된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인터뷰, 21일 미국 AP 통신과의 인터뷰가 그것이다.

사실 어떤 언론이 어떤 인물을 인터뷰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다. 그러나 어떤 개인이 특정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해서 인터뷰가 다 성사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조선> 역시 아무하고나 인터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길지 않은 헌정사에서 우리는 22일 작고한 최규하 전 대통령을 포함해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전직 대통령을 다섯분이나 가졌다. 그러나 알다시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핵 사태와 관련 해외 유력언론이 그 해법을 듣고자 하는 사실상의 유일한 전직 대통령이다.

더구나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가 일어났을 때 미국 내셔널프레스클럽 연설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특사로 평양에 보내 대화로 풀라고 해법을 제시해 카터의 방북 및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성사시킨 바 있다.

1차 북핵위기 당시 카터의 방북 성사시킨 북핵 전문가

비록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북방외교'로 남북 대화의 물꼬를 텄지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은 많은 것 같은데 그에게서 북핵 해법을 청취하려는 해외 유력 언론은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조선> 주장처럼 '국제 공조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핵 사태의 '북·미 공동 책임론'을 주장하며 일관되게 북·미 직접 대화를 강조해왔다. 그는 심지어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북이 악을 행해서 (대화를) 안 한다고 하는데 대화는 친구를 사귀는 게 아니다"면서 "대화는 악마와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화를 강조한 어법일 뿐, 김정일 위원장을 '악마'로 지칭한 것은 아니지만 김정일에게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우선 그의 '북·미 공동책임론'은 미국의 '네오콘'과는 다른 목소리일망정 국제 공조와는 다른 목소리가 전혀 아니다. <조선>의 주장과 달리 미국 조야에서는 부시의 대북 강경책이 북핵 실험을 불러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예를 들어 <뉴스위크>는 김 전 대통령 인터뷰에 앞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세계가 북한의 핵위협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다섯명의 전문가 의견'을 실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대한민국 전 대통령(1998~2003)이자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그의 의견을 맨앞에 내세웠다.

그는 "그 어떤 조치든 전제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북한의 핵프로그램은 완전히 해체돼야 한다"면서 <뉴스위크>에 해법을 이렇게 제시했다.

"첫째 옵션은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현재 그럴 능력이 없으며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과 같은 주변국들도 이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두 번째는 경제제재이다. 그러나 경제제재가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북한의 경제는 붕괴될 수도 있다. 다른 우려는 북한이 핵기술을 이란이나 베네수엘라 같은 국가들에 팔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대화이다. 미국이 북한을 악하다며 대화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를 이해할 수 없다. 필요하다면 악마와도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 닉슨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해 모택동과 대화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 했지만 대화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국전쟁 중에도 북한과 대화했다. 그래서 휴전협정을 맺어 현재 한반도에는 50년이상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세계평화를 책임지는 국가로서, 미국이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뉴스위크>가 귀기울인 다른 네 명의 전문가는 ▲Tufts University Fletcher School의 학장이자 전 주한미대사(1997-2000)인 스테판 보즈워스(Stephen Bosworth) ▲IAEA 전사무총장이자 현재 대량살상무기위원회(WMDC) 위원장인 한스 블릭스(Hans Blix) ▲<북한의 핵대결(Nuclear Showdown: North Korea Takes on the World)>의 저자인 고든 창(Gordan G. Chang) ▲영국 워윅대 국제학과 교수이자 유엔 식량원조 프로그램 지원을 위해 2000년대초 북한에서 거주한 하젤 스미스(Hazel Smith)이다.

외교적 해결 강조하는 세계 전문가들

▲ 북핵 해법과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 인터뷰를 실은 <뉴스위크> 최근호.
북핵 문제 해법과 관련, 이들이 각자 제기한 요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즉, 6자회담을 통한 대화뿐 아니라 부시 전대통령, 그리고 클린턴 전대통령 때와 했던 것처럼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원하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목요일 언급했던 것처럼, 그런 대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직접대화로 어떤 손해를 보게 될 것인가? 그들의 악한 행동에 대한 보상을 주는 것? 이는 명백히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잘못을 행한 자들과도 항상 대화를 해왔다."(보스워스 전 주한미대사)

"미 행정부의 분노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북한 정부도 설득하고 달래야 한다. 이란, 파키스탄이든 중국이든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는 그들의 안보를 위협당한다고 느낄 때이다. 북한의 경우, 과거 러시아와 중국이 자기들을 지원한다고 느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이라크의 경우를 보고라도, 오랫동안 미국으로부터 위협을 느껴왔다. 햇볕정책이 실패였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오히려 계속 '채찍'을 휘두르는 것이 위험하다. …(중략)

1994년 위기가 일어났을 때 나는 IAEA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오늘날도 이와 같은 방편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한스 블릭스 전 IAEA 사무총장)


"현재 베이징에는, 미국과 협력하고 김정일 정권을 무장해제하는 것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는 관료들, 전문가들이 많다. 중국이 북한 석유의 90%, 소비재의 80%, 식량의 40~45%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가능한 것이다. 중국이 원한다면 다음주에라도 김정일 정권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다. …(중략)

미국은 베이징 내에 진보세력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은 굉장히 실용주의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레버리지를 이용하면 중국은 우리를 따를 것이다. 특히 미국이 한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면 중국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보다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중요시한다." (고든 창)


"미국은 말장난은 그만두고 외교를 해야 한다. 이는 다그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게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6자회담 모든 참가국들은 이제 미국이 북한과 직접대화를 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자협의의 틀 내에서 할 수 있다. 미국이 압박을 줄이면 북한은 양보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외교이다. …(중략)

북한이 원하는 것은 '인정'이다. 바로 관계 정상화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가로 북한은 비핵화 과정에 있어 검증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상당히 현실주의자들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경제개발을 위한 돈이다. 문제는 미국이 마비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국무부는 협상을 원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이문제를 도덕적 문제로 간주하며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하젤 스미스 교수)


전문가들은 김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북·미 직접 대화와 중국을 지렛대로 한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미국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의 주장은 '국제 공조와 같은 목소리'인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해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워졌다"며 "왜 부시 대통령만 북한과 대화를 못한단 말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가 미국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도 결국은 미국에 '북한과 대화하라'는 메시지이다.

대화(외교)를 배제하면 남은 것은 '제재'와 '전쟁'뿐이다. 결국 대화를 반대하는 <조선>의 주장은 미국더러 '북한과 전쟁하라'는 것이다. 이 신문이 정녕 '전쟁'을 원한다면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외칠 것이다.

"조선일보는 문을 닫는 게 나라를 돕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