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라는 ‘박제된 심장’, 누구를 위한 설계도 인가
망월동의 침묵은 무지가 아니라 깊은 고뇌다

오래된 취재수첩을 들춰보다 보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화석처럼 굳어버린 문장 하나를 발견하곤 한다. “호남은 민주당의 심장이다.” 참으로 숭고하면서도, 한편으론 지독히 편리한 말이다. 심장은 묵묵히 피를 내보낼 뿐, 스스로 박동의 방향을 결정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이용하려는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수사(修辭)이기 때문이다.
최근 유튜버 뉴탐사 등에서 흘러나오는 중앙 정치권의 공천 잡음과 이면의 이야기들을 복기해보면, 이번 호남 공천은 단순한 ‘인사(人事)’를 넘어선 고도의 ‘기획’ 냄새가 짙다. 20년 넘게 여의도와 호남의 공기를 마시며 민주당을 지켜봐 왔지만, 이번만큼 정교하게 짜인 설계도를 마주한 적이 있었나 싶다.
이른바 ‘호남 합병’이라는 거창한 마무리를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밑그림을 그려온 누군가의 ‘큰 그림’ 말이다.
기자실 소파에 앉아 돌아가는 판을 보고 있자면, 요즘 민주당의 공천은 마치 잘 짜인 알고리즘 같다. 겉으로는 ‘시스템’과 ‘혁신’이라는 근사한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특정 계파의 영토 확장을 위한 치밀한 공학이 작동하고 있는것이다.
호남의 맹주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운 그곳에 채워진 얼굴들을 보라. 지역의 낮은 목소리를 대변하기보다는 중앙의 ‘그분’과 주파수를 맞추는 데 최적화된 이들이다. 합병이 선언되기 전, 이미 호남의 토양을 특정 색깔로 개간해놓은 일종의 사전 작업이었던 셈이다.
"정치는 생물이라지만, 때로는 누군가에 의해 박제된 생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과거의 호남 공천이 전략적 요충지를 지키는 장수들의 배치였다면, 지금은 마치 ‘본사 직영점’을 관리하기 위한 지점장 발령처럼 보인다. 호남의 정치적 역동성은 거세된 채, 중앙 집권적인 권력 구조 아래 편입되는 과정이 너무나 노골적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호남을 향해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우리가 누구를 보내든, 당신들은 결국 우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 "이것은 합병이 아니라, 효율적인 관리다."
이 얼마나 오만하고도 슬픈 확신인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