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308표의 ‘유령’과 호남의 곡소리, 우리는 ‘정치적 포로’인가

“내 표가 어디로 갔는지 묻지도 못합니까. 이게 민주주의 성지에서 일어날 일입니까.”

“내 표가 어디로 갔는지 묻지도 못합니까. 이게 민주주의 성지에서 일어날 일입니까.”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 초대 전남광주특별시장 경선 발표 직후 시당 인근에서 만난 한 시민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0.89%포인트라는 간발의 차이로 승패가 갈린 판국에 무려 2,308표가 증발했다는 소식은 지역사회를 거대한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표심(票心)은 곧 민심인데, 그 민심의 조각들이 안개처럼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를 아연실색케 한 것은 그 이후의 풍경이다. 시스템 오류라는 합리적 의심 앞에 재심을 청구했던 김영록 후보는 단 하루 만에 ‘없던 일’로 고개를 숙였다. 8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호남발 잡음’이 이재명 정부 연착륙에 방해가 될까 노심초사하는 지도부의 서슬 퍼런 압박이 있었을 것이란 의혹들은 잔잔하게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지역 민생을 책임져야 할 국회의원들의 행보다. 입법을 통해 국민을 보호하고 국가의 기틀을 잡는 것이 의원의 본분(本分)이거늘, 지금 호남의 의원들은 ‘법(法)’ 대신 ‘권력의 단맛’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자체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본업은 팽개친 채 경선판에 몸을 던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지역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정성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렵다.

현재 광주광역시의 예비비는 65억 원, 전남도는 75억 원 남짓이라는 전언이다. 인구 소멸의 파도가 턱밑까지 차오르고 민생 경제가 파탄 지경인데 곳간은 비어가고, 정치인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혈안이다. 대한민국 행정 지도를 바꾼다던 통합특별시 예산 573억 원이 정부의 칼날에 잘려 나갈 때, 호남의 의원들은 도대체 어느 권력의 그늘 아래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민형배 후보를 비롯한 중앙당 고위직들의 불통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취재기자의 연락을 외면하고 카톡과 문자를 무시하는 행태는, 권력의 취기에 빠져 민심의 경고를 한낱 ‘소음’으로 치부하는 오만함의 방증일것이다. ‘구맹주산(狗猛酒酸)’ 이라 했다. 술집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쉬어 터져도 손님이 오지 않는 법인데, 지금 민주당의 문턱이 딱 그 꼴이다.

재래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의 말마따나, 호남은 대가를 바라고 민주당을 지지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을 위해 기꺼이 양보하고 희생하며 표를 몰아준 것은 그들이 표방하는 가치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민주당은 호남의 헌신을 ‘당연한 기본값’으로 여기며, 투표가 끝나자마자 차갑게 등을 돌리고 있다.

20년 넘게 정치의 막전막후를 누벼온 필자지만, 요즘처럼 펜을 든 손이 무겁고 회의감에 젖는 때가 없다. 권력이라는 신기루를 쫓아 민생의 절규를 외면하는 인간군상들의 행태를 보며,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호남의 가치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후세를 위해 튼튼한 주춧돌 하나 놓자는 진심 어린 외침은 저들에게 그저 계절이 지나면 사라질 공허한 메아리일 뿐인가.

2,308표의 진실을 묻어버린 민주당의 오만함은 잠시 승리의 기록으로 남을지 모른다. 그러나 ‘함하성진(陷河成津)’이라 했다. 강물에 빠진 자가 결국은 나루를 만든다는 말처럼, 외면당한 민심은 스스로 길을 찾아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는 법이다.

광주·전남 시도민은 이제 투표함 속에 갇힌 ‘정치적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며, 침묵 속에서 날 선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들에게 우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험난한 길을 함께 걷는 동지인가, 아니면 권력의 문턱을 넘기 위한 일회용 징검다리인가.”

그 대답은 다가올 선거의 냉혹한 결과가 증명할 것이다. 권력이 가장 달콤하다고 느낄 그 순간, 호남의 민심은 가장 매서운 겨울바람이 되어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