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판매되는 현대자동차 싼타페 배기량은 2.0ℓ와 2.2ℓ 두 가지다. 같은 플랫폼을 공유한 기아차 쏘렌토R 또한 마찬가지다. 쉐보레가 캡티바에 2.0ℓ를 활용하고, 쌍용차도 2.0ℓ 엔진을 모든 SUV에 적용하는 것과 달리 현대기아차의 중형 SUV에만 유독 2.2ℓ 엔진이 마련돼 있다.

 

 다소 무식한(?) 질문처럼 들리지만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혹자는 "차가 무거워 힘이 부족해서? 아니면 세제상 유리해서? 또는 수출을 위해서?"라고 묻는다. 물론 이 세 가지 모두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이 중 ‘수출을 위해서’라는 답을 근사치로 꼽는 이들이 많지만 싼타페의 주력 수출 시장은 미국이다. 그런데 미국은 가솔린 엔진이 탑재될 뿐 2.2ℓ 디젤 엔진은 아예 판매하지 않는다.

 

 그럼 여기서 의문은 더욱 깊어진다. 도대체 왜 2.2ℓ, 정확하게는 2,198㏄라는 엔진을 적용했던 것일까. 이유는 바로 환경부의 배출가스 규제 때문이었다. 뚱딴지 같이 배기량과 배출가스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기에 그럴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환경부의 배출가스 규제 적용 시점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답은 간단하게 나온다. 

 

 시점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5인승 소형 SUV(투싼, 뉴스포티지, 액티언)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 경유 승용차 판매에 따라 디젤차에 매연여과장치(DPF) 부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환경부는 소형 디젤승용차의 배출가스 기준을 유로3에서 유로4 기준으로 강화하는 것을 전제로 디젤 승용차 판매를 허용했다.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하려면 매연여과장치 장착이 불가피했던 셈이다. 이에 따라 5인승이든 7인승이든 소형 승용으로 분류되는 SUV는 모두 유로4 기준에 맞추어지며 가격이 200만원 가량 인상됐다.

 


 당시 현대차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했다. 5인승 소형 SUV 투싼 가격이 크게 오르며 7인승 SUV 싼타페에 근접하게 됐다. 엇비슷한 가격에 5인승 SUV와 7인승 SUV가 판매된다면 당연히 7인승으로 수요가 몰려 5인승 SUV 투싼의 존재가치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럼 여기서 또 다시 질문을 하게 된다. 싼타페도 매연여과장치를 부착해 5인승 소형 SUV와 동일한 가격을 올리면 되는 것 아니었냐고….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당시 다른 7인승 SUV 경쟁차종인 쌍용차 카이런 또는 기아차 쏘렌토와 가격 경쟁에서 밀려날 상황이었다. 환경부가 소형 승용이라도 중량이 2.5t을 초과하면 강화된 배출기준 적용 시점을 2008년으로 늦춰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쌍용차나 기아차의 경우 굳이 중형 SUV에 매연여과장치를 부착할 이유가 없었던 반면 현대차 싼타페는 투싼 가격 인상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던 셈이다. 

 

 고민하던 현대차가 찾은 해결책이 바로 2.2ℓ 엔진이었다. 배기량으로 소형 SUV와 차별화하되 투싼과 싼타페 가격차도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세금이었다. 배기량 2,000㏄를 초과하며 개별소비세율이 공장도가격의 10%에 달했고, ㏄당 자동차세도 높아졌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쉐보레가 캡티바(당시 윈스톰) 7인승에 2.0ℓ 엔진을 탑재해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렇게 등장한 2.2ℓ 배기량은 현대차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현대차로선 5인승 소형 SUV의 배출가스 규제 강화에 따라 7인승 중형 SUV의 배기량을 2,200cc로 높여 상품성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세금의 불리함과 강력한 경쟁차종 등장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현대차는 결국 2008년 6월 유로4 기준을 충족하는 2.0ℓ 싼타페를 추가했고, 소비자들은 앞 다퉈 2.0ℓ 엔진을 찾았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통계월보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싼타페 2.2ℓ 디젤 판매량은 1만5,000대에 그친 반면 2.0ℓ는 4만3,147대가 팔렸다. 2009년 4월에 등장한 2세대 쏘렌토 또한 출시 초기에는 2.0ℓ보다 2.2ℓ의 인기가 높았지만 어디까지나 반짝 효과일 뿐 2010년 판매량은 2.0ℓ가 3만2,713대로 9,222대의 2.2ℓ보다 월등히 앞서 2.0ℓ에 대한 절대 믿음을 보여줬다.  

 


 사실 7인승 싼타페 2.2ℓ가 시사하는 건 그만큼 국내에서 자동차 개발은 각종 규제와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환경부가 환경을 규제하면, 기획재정부는 개별소비세율을 조정한다. 또한 안전행정부는 자동차세를 부과한다. 그리고 세금 외에 국토교통부는 제품에 관한 다양한 규제 및 인증권을 갖고 있다. 실례로 국토부의 승용차 기준은 10인승 이하지만 환경부가 말하는 소형 승용은 중량에 따라 다르다. 자동차에 관해선 모두가 권한을 갖고 싶어 한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도로 위에서 간혹 보이는 무쏘픽업과 관련한 논란을 기억하고 있다. 국토부가 화물로 분류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승용으로 판단했던 사건이었다. 당시 개별소비세가 부과됐고, 국토부는 화물차 분류기준을 넓히는 작업을 감행했다. 메이커로선 억울한 일이었지만 ‘정부’라는 두 글자에 힘없이 당하고 말았다.

 

 최근 표시 연비를 두고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명분은 국민적 공감이지만 명확한 점은 부처 밥그릇 싸움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언제까지 부처별로 제각각인 자동차 관련 법규와 기준이 하나의 원칙으로 통일될 수 있을까. 국민들이, 그리고 메이커가 줄기차게 요구해도 중구난방인 제도는 바뀌지 않는다. 대통령도 이를 바꿀 수 없는 모양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출처-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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