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지금은 현대기아차 디자인부문 총괄로 자리를 옮긴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기아차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당시 기아차 지휘봉을 잡은 정의선 부회장의 판단이었다. 장고 끝의 선택은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른바 '피터 슈라이어 효과'가 나타나며 기아차는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절정은 2010년 등장한 K5였다. 그리고 그해 6월 이변이 벌어졌다. K5 판매량이 1만673대였고, 쏘나타는 9,957대에 그쳤다. 결코 깨질 것 같지 않던 쏘나타 아성이 K5 디자인에 송두리째 흔들렸다. 심지어 K5는 물량 부족에 따른 수출 연기가 거론될 정도였다. 세계 3대 디자인 상을 휩쓸고, 국내를 비롯한 해외에서 '올해의 차'에 선정되는 등 피터 슈라이어 작품성(?)은 삽시간에 시장에 퍼져 나갔다.

 

 하지만 인기도 잠시, 이후 판매량은 내리막을 걸었다. 2013년 더 뉴 K5를 내놓으며 소비자 주목을 유도했지만 예전 같은 관심을 얻지는 못했다. 그 결과 지난달 판매량은 4,485대로 쏘나타 1만3,687대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한 때 쏘나타 아성을 위협하던 K5였지만 지금은 구애(?)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돌변한 셈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요즘 회자되는 것은 디자인이다. 다양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전반적인 결론은 식상함으로 모아지는 것 같다. K5 인기에 힘입어 K3는 물론 K7도 패밀리룩 등을 유지했고, 심지어 플래그십인 K9도 역동성이 강조됐지만 시간이 흐르며 호응이 떨어졌다. 젊은 소비층을 겨냥했지만 초반에만 반짝 돌풍을 일으켰을 뿐 지속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유를 인구 고령화에서 찾기도 한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의 '고령화 사회가 자동차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01년 358만명에서 2012년 589만명으로 증가했다. 덕분에 고령 운전면허 소지자도 같은 기간 36만명에서 166만명으로 확대됐다. 2020년에는 233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인구 노령화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디자인의 보수화로 표현할 수 있다. 연령이 많아질수록 역동보다는 품격, 날카로움보다 차분한 디자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같은 중형차라도 K5와 르노삼성 SM5 소비 연령층이 조금 다른 배경이기도 하다. 역동을 선호하는 젊은 층의 감소가 기아차 디자인 마케팅을 가로막은 요인이었다는 시각이다. 게다가 역동적 디자인은 기아차 외에 가격 부담이 낮은 수입차도 적지 않은 게 부수적인 이유로 꼽힌다.

 


 기아차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분명 역동 디자인이 필요하지만 대세로 삼기에는 소비층이 한정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한 때 역동 디자인을 앞세워 재미를 본 만큼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역동'을 걷어내는 것은 '디자인 기아'를 그만두는 것이라는 암묵적인 생각이 지배하는 만큼 누구 하나 의견 개진도 어렵다.

 

 하지만 내수 시장에서 고령화는 현실이다. 다시 말해 젊은 시각 외에 품격 디자인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남들의 주목을 받고 싶을 때가 20-30대라면 40-50대는 소위 튀는 것을 경계하는 세대여서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기아차가 '디자인드 바이 케이(Designed by K)' 캠페인을 내놨다. K시리즈 소비자 특성과 요구를 분석해 그에 맞는 생활 방식과 문화를 제안하는 게 핵심이다. 내용을 보면 K3는 젊음, K5는 스타일로 정의했다. 역동에 초점이 맞추어진 디자인 기아를 이어가겠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전략이다.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내 시장에서 기아차의 젊은 디자인 전략…. 결과에 대한 판단은 시간만이 해줄 것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출처-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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