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아차 카니발 3세대가 주목받고 있다. 사전 계약에서 이미 5,000대를 돌파, 기아차를 미소 짓게 만드는 중이다. 한 때 후끈 달아올랐다가 내리막을 걷던 미니밴 시장에서 벌어진 소비자 반응임을 감안하면 가뭄의 단비가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서 카니발로 대표되는 미니밴의 시작은 1998년부터 시작됐다. 이전까지 다인승은 승합차로 여겨지며 인기를 끌었다. 소위 보닛 없는 원 박스 차종이 실용성으로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미니밴 탄생의 원류를 찾아 오르면 시작은 승합차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1981년 출시된 기아차 봉고 코치로 거슬러 오른다는 얘기다.
 
 1981년 국내에는 자동차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자동차산업 합리화 조치다. 당시 정부는 중복 산업 투자 방지를 위해 자동차회사의 주력 제품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승용차만 생산하고, 기아차는 5톤 미만 소형 상용차를 만들도록 했다(1987년 해제).

 

 어쩔 수 없이 승용에서 손을 떼야 했던 기아차는 마쓰다 소형 트럭 '봉고'를 한국에 가져와  생산, 판매했다. 이른바 기아차 봉고 신화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승용 시장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어떻게든 승용 시장 공략을 위해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봉고 트럭의 시트를 보강해 9인승 봉고 코치를 내놨다. 당시 다인승은 버스 외에 없었던 국내 시장에 9인승과 12인승 봉고 코치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쓰러져가는 기아차를 다시 세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차종으로 지금도 차명이 활용되는 중이다.

 


 봉고 코치로 승합차 시장에서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된 기아차는 1986년 3월 봉고 코치의 뒤를 이은 '베스타'를 내놓고 인기를 이어갔다. 이전 봉고가 소형 트럭에 기반해 개발됐음에 비춰 베스타는 최대한 승용 느낌을 담아냈다. 차명 베스타는 '베스트(Best)'와 '에이스(Ace)'의 합성어로 승합차로는 처음으로 4WD 구동 방식이 적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기아차가 봉고에 이어 베스타로 시장 수성에 나서자 현대차는 같은 해 그레이스를 내놓고 반격에 나섰다. 미쓰비시의 3세대 델리카를 기반으로 개발해 9인승을 685만원, 12인승은 695만원에 내놨다. 승합차 최초로 4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하는 등 편의성을 개선했다. 덕분에 그레이스는 봉고의 오랜 아성을 단숨에 뒤흔드는 차종으로 우뚝 섰다.


 그러자 상용차에 강하던 당시 아시아자동차도 가만있지 않았다. 아시아자동차는 1987년 승합차로는 최초로 15인승인 '토픽'을 선보였다. 이를 두고 모기업인 기아차는 베스타 롱 바디로 부르기도 했다. 주로 교회나 학원 등에서 인기를 얻은 것은 물론이었다. 결국 승합차 시장은 쌍용차가 이스타나를 내놓은 1995년까지 기아차 베스타, 현대차 그레이스, 아시아자동차 토픽이 시장을 3분했다.

 


 이즈음 승합차 시장에 매력을 느낀 쌍용차는 독일 벤츠와 제휴로 이스타나(Istana)를 국내에 선보였다. 9인승, 12인승, 15인승으로 가격은 1,056만원, 1,071만원, 1,249만원에 달했다. 벤츠가 쌍용차에 디젤 엔진 기술을 주는 대가로 이스타나를 OE 생산, 수출은 벤츠 엠블럼으로 나갔다. 2.9ℓ 디젤 엔진은 무쏘와 코란도에서 활용된 엔진이었고, 승합차로는 처음으로 앞바퀴굴림이 채택됐다.

 


 이스타나가 시장에 등장하자 기아차는 같은 해 베스타의 후속 차종으로 기아차 독자 기술을 활용해 '프레지오(Pregio)'를 선보였다. 이전보다 승차감 개선 및 최대한 승용 느낌에 가깝도록 설계했다. 다인승 승합차에서 최대한 벗어나 승용 쪽으로 성격을 이동시켰다는 점에서 승용형 미니밴의 시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프레지오의 인기는 높았다. 특히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서 폭발적인 수요가 발생했다. 버스는 덩치가 부담스럽고, 고객을 태워야 하는 소규모 자영업자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러자 현대차는 1997년 승합차의 지존 스타렉스를 내놨다. 기존 원 박스에서 다소 벗어나 앞을 돌출시켜 안전성을 강화하고, 운전석을 최대한 승용 느낌으로 강조하며 판매에 돌입했다. 9인승, 12인승, 15인승에 4WD도 추가했다. 이때까지 원 박스 승합차에 익숙해 있던 국내 소비자들은 스타렉스를 '승용형 승합차'로 여기며 구매에 앞 다퉈 나섰다. 실제 스타렉스는 출시 후 승합차 시장에서 독보적이었던 기아차를 서서히 물리치며 앞서갔다.

 


 위기감을 느낀 기아차는 소비자들이 보다 승용에 가까운 승합차를 원한다는 점을 주목하고, 새로운 상품 개발에 매진해 1998년 국내 최초 승용형 미니밴인 카니발을 내놨다. 그러면서 프레지오는 실용적인 승합차로, 카니발은 고급형 승용 미니밴으로 접근시켰다.

 


 물론 현대차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카니발 출시 이듬해 트라제를 승용형 미니밴으로 내놓고 맞불을 놨다. 카니발과 트라제는 치열한 경쟁을 펼쳤고, 덕분에 미니밴 전성시대를 개척하며 시장을 양분했다. 이외 스타렉스, 프레지오, 이스타나 등은 원 박스 승합차로 묶어지며 사실상 성격 분리가 완성됐지만 인기는 여전했다.

 


 그러던 중 승합차에 불똥(?)이 튀었다. 정부가 박스형 승합차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나선 것. 특히 승합차는 앞 부분 돌출이 거의 없어 충돌 시 사망사고가 빈번한 게 단점이었다. 그러자 충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기준이 제시됐고, 시행에 들어갔다. 이른바 '전방조종자동차 안전 기준 강화'이며, 이 때가 2004년이다.

 

 정부의 기준 강화에 따라 제조사들이 선택한 방법은 원 박스 승합차의 단종이었다. 대신 승용 미니밴을 보다 활성화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쌍용차는 이스타나 단종 이후 2004년 승용 미니밴으로 로디우스를 세상에 등장시켰다. 그리고 기아차를 인수한 현대차는 인기 차종 스타렉스로 승합차를 유지하되 트라제는 단종시켰다. 승용 미니밴 시장을 기아차에 넘기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 결과 2005년 2세대 카니발이 등장했고, 2007년에는 현대차 스타렉스II가 세상에 고개를 내밀었다.

 


 현재 국산 미니밴 시장은 고급화 바람이 치열하다. 지난해 쌍용차는 로디우스의 후속으로 코란도 투리스모를 내놓으며 다양한 편의품목을 마련했고, 기아차도 최근 3세대 카니발에 각종 편의장치를 담아냈다. 이른바 '미니밴 고급화' 열풍이다. 덕분에 승합차로 분류되는 현대차 스타렉스 또한 고급화되는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고차 시장에선 15인승을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인승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현대차가 최근 스타렉스 어린이 통학용 15인승을 내놨다. 결국 시장의 끊임없는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다. 덕분에 중고차 시장에서 15인승은 잠시 주춤하는 모양새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출처-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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