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들로부터 다소 불만을 샀던 앞뒤 디자인과 실내를 과감히 손보고 엔진 라인업까지 보강한 기아 뉴 오피러스는 구형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낼 듯 여러 모로 개선되고 다듬어졌다. 한결 품위있고 안정감있는 디자인은 물론 운전자 중심의 최고급 세단으로서의 운전 재미와 풍부한 편의장비 그리고 쇼퍼 드리븐 카의 분위기가 배인 뒷좌석까지 흠잡을 데가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아졌다 글·노진수 기자 사진·민성필 기자

9스포크에서 10스포크 타입으로 바뀐 17인치 휠. 디자인은 더 심플해졌다

볼륨이 한층 강조된 뒷모습. 테일램프가 현대 그랜저 XG를 닮았다

FR 차의 세로 배치된 엔진처럼 커버가 씌워져 있다

무른 서스펜션 덕에 출렁거리긴 하지만 몸놀림은 의외로 가뿐하다

센터 페시아에서 기어 레버가 있는 센터 터널까지의 디자인이 한결 보기 좋다

뒷좌석 천장의 화장거울 및 독서등, 센터 콘솔의 호화로운 편의장비들은 쇼퍼 드리븐 카를 방불케 한다

차 주인이 운전석에 앉느냐, 뒷좌석에 앉는냐 하는 문제는 최소한 자동차 메이커 입장에서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다. 동시에 이것은 ‘어중간한 고급차’를 만들어야 하는 개발자들을 꽤 집요하게 괴롭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다소 마른 체형에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성실해 보이는 기사가, 경제적 풍요의 아우라를 발산(?)하는 중년 오너를 뒷좌석에 ‘모시고’ 가는 이른바 ‘쇼퍼 드리븐 카’의 운전자는, 그 차가 아무리 마음에 들고 손에 넣을 경제력이 있어도 운전석에 앉아 있는 한 그저 ‘기사’로 비쳐질 뿐이다. 
‘좋으면 사고, 아니면 그만’인 일반 자동차 시장과는 달리 고급차 시장은 이같은 복잡 미묘한 심리적 요소까지 깃든 꽤 까다로운 시장이다. 이 시장에 지난 2003년 3월 겁도 없이 뛰어든 차가 바로 기아 오피러스다. 당시 국산차 가운데 쇼퍼 드리븐 카로는 현대 에쿠스와 쌍용 체어맨이 자리잡고 있었고, 오너 드라이브용 고급 세단으로는 현대 그랜저 XG가 독보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겉모습 만큼이나 대변신한 인테리어 
그러나 어딜가나 틈새 시장은 있는 법. 오피러스의 계산은 단순했다. 그랜저 XG로는 어딘가 2% 부족하고, 그렇다고 에쿠스를 몰자니 기사로 보일 것 같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오너 드라이브용으로도 어색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선 쇼퍼 드리븐 카로도 손색없는 차’라는 그럴 듯한 컨셉트를 앞세우며 한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간 것이다. 
이처럼 최고급 오너 드라이브용 세단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내심 양쪽 모두를 포용하고 싶었던 오피러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양쪽 모두에게 외면당하는 최악의 결과를 빚고 말았다. 오너 드라이버들은 현대 그랜저 XG로 향했고, 기사를 둔 지체 높은 양반들은 현대 에쿠스와 쌍용 체어맨으로 발길을 돌린 것. 이도 저도 싫은 사람에겐 3,000만~4,000만 원대의 매력적인 수입차가 손짓했다. 
뉴 오피러스는 이 같은 지난날의 부진을 말끔히 털어내려는 듯 비장한 모습으로 기자 앞에 나타났다. 실내는 운전석 편의장비를 강화하며 여전히 최고급 오너 드라이브용 세단을 아이덴티티로 삼고 있지만, 쇼퍼 드리븐 카의 야망도 포기하지 않은 듯 뒷좌석 편의성도 함께 끌어올렸다. 그러나 아무리 뒷좌석 편의성을 높였다 해도 운전자 중심의 최고급 세단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기에 이와 비슷한 성격의 르노삼성 SM7과는 정면 대결이 불가피할지도 모르겠다. 
편의장비도 편의장비지만 디자인 변화는 더욱 눈에 띈다. 첫 인상만 파격적이었을 뿐 보면 볼수록 어디선가 본듯해 독창성이 많이 떨어진 구형의 겉모습을 일신해, 페이스 리프트라는 단어가 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변화를 추구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많은 곳을 조금씩 고쳤다기보다, 몇 개의 포인트만을 크게 손봤다. 
특히 너무 튀는 나머지 다소 위화감을 주던 프론트 그릴을 가로로 넓게 디자인해, 안정감 있으면서도 차체와 좀 더 잘 어우러지도록 다듬은 것은 뉴 오피러스의 ‘백미’다. 이 품위있는 프론트 그릴 덕에 차폭이 구형보다 한결 넓어 보인다. 아울러 뒷모습 역시 가로에서 세로타입으로 바뀐 리어램프를 중심으로, 다소 밋밋했던 뒷면에 입체감을 넣어 더욱 세련되게 다듬었다. 프론트 그릴과 리어램프의 변신만으로도 뉴 오피러스는 완전히 다른 차로 거듭난 듯 하다. 
반면, 확 바뀐 앞과 뒤에 비한다면 측면의 변화는 거의 없다. 사이드 미러에 추가로 내장된 방향지시등은 요즘 빠뜨리면 안 될 최신 유행 아이템. 
시승차는 GH380 최고급 모델로, 세부명칭에서 알 수 있듯 에쿠스와 그랜저에 먼저 쓰이기 시작한 V6 3.8ℓ 람다 엔진을 얹고 있다. 이 엔진은 지금까지 오피러스의 최고급 모델에 쓰인 V6 3.5ℓ 시그마 엔진을 대신하며 대형차의 이미지를 보다 확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엔진룸에는 가로배치된 엔진 위에 세로배치된(?) 커버를 씌워 얼핏 FR 구동계로 보이도록 꾸몄다. 현대가 예전 투스카니를 출시하며 처음 선보였던 수법이다. 조금 어리숙한 오너라면 스노체인을 뒷바퀴에 감는 ‘모범적인’ 해프닝을 벌일 수도 있을 듯. 
실내로 들어서자 확연히 바뀐 대시보드와 센터 페시아가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밝은 톤의 우드그레인을 배경으로 사각형 플라스틱 헤드유닛과 에어컨 등이 어색하게 자리잡고 있던 에쿠스 풍(?)의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진한 캐러멜톤 유광 그레인 바탕에 일체감있게 배치한 각종 버튼과 스위치가 꽤 고급스럽게 어우러졌다. 억지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아 고개가 끄덕여지는 디자인은 설득력이 있다. 다만 동그란 스위치류를 좀 더 크게 만들어 포인트를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사족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3’에서 ‘+5’까지 조절돼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사계절용 시트는 폭염과 혹한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우리나라에서는 반가운 장비다. 스티어링 휠 왼편 대시보드에 달린 스위치로 켜고 끌 수 있는 전방 카메라는 TV CF의 그것보다는 화질이 다소 떨어지는 듯 했지만 사각지대를 확인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성능을 갖고 있다. 
이 밖에도 뒷유리와 뒷도어에 달린 전동 및 수동식 블라인드와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전동식 뒷좌석, 동반석 등받이 왼쪽에 별도로 마련한 동반석 전후 조절 스위치, 센터 터널 뒤쪽에 자리잡은 뒷좌석 시트 전용 모니터와 열선 시트에서 오디오 시스템 등의 컨트롤러가 모여있는 뒷좌석 암레스트 등은 쇼퍼 드리븐 카로도 쓰이길 바라는 메이커의 바램이 슬며시 드러난다. 뒷좌석 천장에 달린 전용 무드램프와 별도로 마련된 독서등도 마찬가지. 
뒷좌석 등받이를 젖혀 최대한 편한 자세로 앉아보니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편하다. 그러나 전반적인 꾸밈새는 역시 운전자 중심의 최고급 세단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뒷좌석은 이런 류의 세단 중에서는 조금 더 편하게 탈 수 있는 수준. 
가벼운 몸놀림과 안정된 주행성능 보여 
실내를 둘러 본 후 조심스럽게 이그니션 키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진동도 소음도 전해지지 않는 실내는 오히려 적막(?)하다. 기어 레버를 드라이브 모드로 옮긴 후 차를 움직여 보았다. 깃털처럼 가벼운 액셀러레이터를 지그시 밟자 차체는 잡아끌리듯 앞으로 나간다. 확 뛰쳐나가는 듯한 느낌은 익숙해지기 전에는 조금 당황스러울 것 같다. 동행했던 기자 역시 시운전을 해보더니 ‘이거, 운전 서툰 초보자들은 급발진 사고 내기 딱 좋겠는데…’ 하며 중얼거린다. 
힘들이지 않는 가벼운 운전 감각을 선호하는 국내 고급차 소비자들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 세팅으로 여겨지지만 안전을 위해 초반 액셀러레이터 반응을 의도적으로 억제해 놓은 프리미엄급 수입 세단들의 성숙한 세팅을 조금 참고해야 할 듯 싶다. 어찌됐건 이 같은 액셀러레이터 반응은 안전의식이 희박한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 ‘엄청 잘 나가는 차’라는 꽤나 만족스런 기분을 선사할 듯. 소비자의 취향을 정확히 간파했건만 뒷맛은 조금 씁쓸하다. 
가벼운 스티어링 휠을 살살 돌리며 이리저리 차체를 움직여보니 의외로 핸들링이 나쁘지 않다. 노멀 상태에서의 다소 무른 서스펜션과 긴 휠베이스 그리고 큰 차체를 감안한다면 몸놀림이 평균 이상이다. 기어레버 왼쪽에 자리한 ‘ECS’ 버튼을 눌러 스포트 모드로 바꾸면 좀더 단단해진 서스펜션 덕에 운동성은 여기서 한층 좋아진다. 엔진의 출력이 266마력으로 높아지고 특히 저속에서의 순발력을 결정짓는 토크가 36kgㆍm으로 조금이나마 커진 탓도 있으리라. 엔진의 힘과 핸들링이 어느 정도 받쳐주니 대형차임에도 운전이 재미있다. 
직선로에 차를 진입시킨 후 풀 가속을 하자 속도계 바늘이 순식간에 시속 120km를 훌쩍 넘어선다. 시속 100km를 지나면서도 절제된 소음은 시속 150km 부근에서 들려오기 시작하지만 엔진음보다는 차체에 부딪히는 바람소리와 타이어 소음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소음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다만 시속 60~80km 정도로 요철을 지날 때의 서스펜션 반응은 어딘지 어색하다. 
급차선 변경과 내리막 코너에서도 차체가 휘청거리기는 하지만 국산 대형세단 치고는 안정감있는 몸놀림이다. VDC가 개입하는 타이밍도 약간 늦은 감이 있지만 큰 무리없이 차체를 안정화시킨다. 물론 이 차를 사는 소비자들 중에 이처럼 VDC가 개입할 만큼 극단적으로 차를 몰아부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다른 고급 세단 못지않은 만족스런 평가를 기대할 수 있을 듯 하다. 
내외관은 물론 주행성능까지 한층 완성도있게 다듬어진 뉴 오피러스. 기아의 최고급 세단으로 다시금 자리매김하며 부진했던 지난날의 아쉬움을 깨끗하게 털어버릴 수 있을지 앞으로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