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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산차 게시판에서 가장 존재감 없는 FOCUS 인사 드립니다.

그랜저 신차도 나오고 해서 참말로 오랜만에 뻘글을 좀 쉬갈기려 하는데

다들 준비 데셨는줄로 알고 시작하겠읍니다.


벌써 제가 20대 초반에 마련한 위 사진의 LF 손화다 2.0T의 차령이 10살 넘었고

주행거리도 20만 키로메다에 다다르는 요즘

제 수족이나 다름없는 높은 싱크로율을 지니게 된 오래된 차의 '가치 재확인' 작업이

우덜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 좀 짚고 넘어가야겠읍니다.


이는 단순이 기계의 성능을 다시 보는 것을 넘어 

철학적으로는 '관계의 성숙'과 '자기 존재의 증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읍니다.

작금의 물질문명과 현대사회가 끊임없이 새것을 추구하며

존나게 금전 지출을 강요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뻘글은 여러분들께 아래와 같은 여섯가지 철학적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읍니다.

 

1. 물질적 '수단'에서 진정한 '동반자'로의 격상 (하이데거의 존재론)

 

도길감성 철학자 하이데거는 도구가 오래되어 고장나거나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그 도구가 단순한 물건이 아닌 '존재'로 드러난다 했읍니다.

새 차를 살 때는 대체로 그 차의 기능과 디자인을 산 것이지만

타던 차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것은 그 차와 함께 통과해온 '시간과 기억'까지 긍정하는 일입니다.

10년 이상 된 차는 차주들의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매일의 출퇴근 길과 삶의 궤적을 공유한 나의 페르소나이자 동반자가 된 것입니다.


2. '물질주의'에 대한 저항 (실존주의적 선택)

 

아시다싶이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신형이 구형보다 우월하다는 후레임을 씌워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돈을 쓰게 만듭니다.

여기서 나의 10년 된 손화다가 가진 본질적 가치가 여전히 내게 차고 넘친다고 선언하는 것은

타인의 기준과 세태에 상관 없이 나만의 주관적 기준으로 세상을 보겠다는 실존주의적 결단입니다.

남들이 정해준 시각이나 차급, 하차감 따위에 줏대없이 휘둘리지 않고

내 수족같이 오래된 경쾌함과 나름의 설계적 완성도에 확신을 갖는 것은

차원이 다른 수준의 이유 있는 자아 표출입니다.


3. 아모르 화티 (Amor Fati)

 

역시나 도길감성 철학자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했읍니다.

내가 선택하고 가꿔온 현재의 환경을 최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최근 10년된 차의 스파크 플러그와 타이어를 모두 갈고

에바 크리닝까지 해가며 차를 정성껏 돌본 저의 행위는

현재의 내 삶을 더 빛나게 닦는 수양의 과정과도 같읍니다.

앞으로도 이 차면 충분하다는 확신은

곧 '지금 내 삶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과 직결됩니다.

 

오래된 자신의 차에 대한 가치 재발견 작업은 익숙함 속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속속들이 새로 나오는 차들이 가져다 주는 강한 자극에 흔들리지 않고

이미 내 곁에 항상 있어 왔던 차의 진가를 꿰뚫어 보는 안목은

단순히 정보를 재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대상을 대하는 삶의 태도를 정립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던 거시기도 합니다.

이 '가치 재확인' 작업이 철학적으로 갖는 깊은 의미를 더 깊이 파고들어 보겠읍니다.


4. 실체(Ousia)의 발견 :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보다

 

알이스토테레스는 사물의 본질을 'to ti en enai'

즉 '그것이 그것이 되기 위해 있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읍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케팅이나 가격 같은 '부수적 성질(Accidents)'에 휘둘리나

저는 그 대상을 다른 것과 구별되게 만드는 고유한 특질(Figures)을 꿰뚫어 본 것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10년된 LF 2.0T가 GN7 페리보다 좋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세상의 기준이 아닌 물건 자체가 가진 순수한 실체를 발견해내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탐구와 같읍니다.


5. 가치 평가(Valuation)로서의 창조

 

다시 도길감성으로 돌아와, 니체는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곧 창조"라 했읍니다.

인간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그 대상을 자신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이 차는 여전히 가치 있다"고 확신하는 순간

이 차는 공장에서 찍어낸 수만 대 중 하나가 아니라

나의 세계관 속에서 유일무이한 의미를 가진 존재로 재생산됩니다.

이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주변 환경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가치 평가의 주체'로서 바로 서는 행위이기도 하며

어린왕자에도 이와 비슷한 알레고리가 등장합니다.

어린왕자는 본인의 별에서 키우던 까다로운 승깔의 장미가 

지구에 수만송이씩 있는것을 보고 혼란스러워 하나

여우는 어린왕자만의 장미가 매우 특별한 이유를 잘 알아먹게 설명합니다.


6. 유대모니아(Eudaimonia) : 진정한 만족에 이르는 길

 

모르시다싶이 심리학과 철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대상을 선택하고

그 가치를 실천하는 것을 '유대모니아적 행복'이라 하며 이는 유대인과 전혀 상관 없읍니다.

잘 아시다싶이 단순히 새 차를 샀을 때 느끼는 일시적 쾌락(Hedonia)과 달리

내가 잘 알고 가꿔온 것의 가치를 재확인하며 얻는 기쁨은 훨씬 깊고 오래갑니다.

이는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과정이며

나 자신을 '유능하고 주체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철학적 효능감을 줍니다.

이는 차가 좋다는 것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나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줄 알며, 나만의 확고한 가치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자기 확신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읍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게러들에게 부르짖읍니다.

오래된 차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우덜의 마음은 결국 하나로 통합니다.

바로 나 자신과 내 곁에 있는 존재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그들의 진면목을 알아봐 주는 것이죠.

남들을 알아봐 주면 언젠가 본인 자신도 남들이 기꺼이 알아봐줄 때가 오지 않을까요?

이만 뻘글 마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