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9등급의 조끼 10년의 덫이되다

가장 친절했던 나의 감옥

 

수능 채점지는 잔인했다.경험 삼아 본 시험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쏟아지는 빨간 비 사이로 선명하게 박힌 ‘9등급’은 내 10대의 최종 성적표였다.

인정했다. 공부를 안 했으니까.하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10대 내내 수술대 위를 오가며 병원 냄새에 절어 살아야 했던 내게, 세상은 시작부터 공평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내 10대는 밤이었고, 수술대 위였다.

지독하게 나약했고, 억울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대학 입학 전 잠시 어머니 집에 머물던 며칠은 내 생애 가장 눈부신 순간이었다. 머리를 새로 하고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다짐했다.“20대는 다르게 살아보자.”근거 없는 열정이 가슴에 가득 찼다.

하지만 현실은 등록금 고지서와 함께 왔다.굽은 등으로 삶의 무게를 견디는 아버지에게 대학 등록금은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었다. 나는 그 짐을 나누기로 했다. 아니, 스스로를 책임지기로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내 20대를 통째로 가둘 편의점 유니폼 조끼를 입었다."

전문대에서 만난 사람들은 생경할 정도로 내게 호의적이었다. 병실 밖 세상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과 어울리며, 나는 "나도 평범해질 수 있구나, 하는 달콤한 착각에 빠졌다."

특히 편의점 사장님 부부의 친절은 치명적이었다.

 

“원진아, 새벽에 배고프면 뭐든 찍어서 먹어라.”“밖에서 밥 사 왔으니까 이거 먹고 해.”

평생 결핍에 시달리던 나에게 그들의 친절은 구원 같았다. 처음엔 날을 세우고 경계했지만, 따뜻한 밥 한 끼와 다정한 말 한마디에 내 경계심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친구들이 술을 마시며 청춘을 낭비할 때, 나는 새벽의 편의점을 지키며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보는 게 유일한 유흥이었다.

밤을 새우는 건 익숙했다. 예전에는 병원에서 고통으로 버티던 밤이었지만, 이제는 그 밤을 견디면 ‘돈’이 들어왔다. 통제할 수 없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과 보상이 생긴 것이 재밌었다.

"하지만 그 재미는 독이었다. 돈이 쌓일수록 조끼는 무거워졌고, 나는 그 친절한 감옥 안에서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성실하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그건 성실함이 아니라, 지옥 밖으로 나가는 법을 잊어버린 자의 무력한 반복이었다. 나는 그렇게 10년 동안, 내 젊음을 바코드와 맞바꾸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5화 예고: 새벽 3시, 가면무도회의 시작]

"편의점 조끼는 나를 지켜주는 갑옷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곳은 무대였다.

밤마다 각자의 가면을 쓰고 찾아오는 사람들. 그들의 위선과 욕망을 바코드와 함께 찍어내며 나는 깨달았다. 진짜 지옥은 수술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쓰고 있는 '가면' 뒤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작가 장원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