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시작하는 말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교회에 다니지는 않고, 하물며 신학을 공부한 적도 없습니다.

다만 성경은 좋아합니다. 재미있거든요.


제 외할아버지는 일제시대 이북에서 전도사를 하셨습니다.

신사참배를 결의하며 심어놓은 기념식수를 잡아 뽑고 체포되신 적도 있지요.


이 사건을 시작으로 신학교가 폐쇄되고,

당시 신학교의 목사님께서 배후로 지목되어

옥고를 반복하다 결국 돌아가신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위인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한국 기독교사와 독립운동사에는 중요한 사건이나

저 자신을 밝히기는 부끄러우므로 실명은 거론치 않겠습니다.


뭐 아무튼 그렇습니다.

뉴스를 떠들썩 하게 만드는 목사들도 수두룩 합니다만

현대에도 분명 목자다운 목사도 있습니다.


음... 아주 잘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

제 사촌형도 목회하다가 캐나다 건너가서 훈련받고 군대 다시 갔거든요.

그냥 거기 청년들 이야기 듣는게 좋답니다.


따라서 무분별한 비난과 편견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하기에 기록하는 내용들은 제 개인의 의견을 적은 것에 불과함을 밝혀 둡니다.




1. 십일조에 대하여


① 십일조는 예수 탄생 이전 구약시대의 잔재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떤 법률들이 있었나요?


유대인들이 이룬 이스라엘은 왕이 세워지기 전 신정국가에 가까웠습니다.

법과 제도 등 종교법의 판결이 우선되는 형태를 갖고 있었습니다.


레위기와 신명기를 보면 그들은

돼지고기,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물고기, 피, 굽이 없는 동물,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동물

등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우상숭배는 물론 안식일에 노동을 하거나 씨앗을 섞어 밭에 뿌리는 것도 금지 되었죠.


이 중 상당수가 예수가 십자가에 묶여 죄와 함께 가져감으로 폐지되었습니다.


십일조를 유지해야 한다면, 돼지고기도 먹으면 안됩니다.

십일조만 내야 하는건 선택적 율법주의죠.



② 십일조는 헌금인가?


신명기에 의하면 십일조는 단순히 성전에 바치는 헌금이 아니었습니다.

세금에 가까웠죠. 레위인들, 즉 제사장들의 생계와 성전을 유지하는 비용이었습니다.


우린 이미 국가에 세금 내죠?

그런데 왜 교회에 또 세금을 내야 하나요?



③ 십일조는 헌금만의 용도가 아니었다


역시 신명기 14장에

 '십일조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축제를 벌이고 가족과 즐겨라'

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가족들과의 축제에 쓰입니다.


또한 제사장들 뿐만 아니라 손님과 고아, 과부들에게 쓰였습니다.

따라서 십일조는 복지 예산의 성격도 가졌습니다.


교회에 바치기만 하는 용도가 아니었다는 뜻이죠.

가족들과 외식에 즐겁게 쓰세요.

교회에 내실 분들은 내시고요.




2. 목사는 성직자인가


법적, 통념적으로는 목사는 성직자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마르틴 루터가 대문짝에 갖다 붙였던 95개의 반박문을 토대로 봅시다.


6조, 죄는 교황이 사하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36조, 면죄부 없이 죄를 사함받을 권리가 있다 했습니다.

37조, 성직자를 거치지 않고도 모두가 영적으로 평등하다 했습니다.

62조, 교회의 참된 보물은 복음이라 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 성직자 체제인 구교에서 벗어나

신교가 등장하며 개인의 복음 사유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만인사제설'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목사는 장로의 직분에 가깝습니다.

성직자가 될 수 없지요.




3. 성서는 절대적인가


종교개혁이 이루어지며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다름아닌 성서의 번역이었습니다.


장로들은 탁자에 모여 회의를 통해

정경과 외경을 구분했습니다.

원서가 있는 성서만을 정경으로 구분했다 하나,

사실, 정치적으로 구분했다고 보는게 더 가까울 겁니다.


실제로 외경으로 구분된 성서는 테클라 행전도 있습니다.

그녀는 바울이 세례를 주지 않자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세례를 주었습니다.

부유한 신분이었음에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반발해 선교를 선택했습니다.

교회는 자주적인 여성상이 드러난 이 복음서를 성서에서 빼버렸죠.

여성이 자주적이면 곤란하니까요.


또한,

그들에게 '성령'이 함께하며 기도하고 주의 뜻으로 여러 문자들로 번역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사람이 한 작업입니다.

당연히 잘못된 번역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거의 정치적인 이유가 가장 크지만,

개신교 내 종파가 갈리진 이유들에 이 번역된 문장들에 대한 해석의 문제들도 존재하게 됩니다.




4. 끝맺음


성서의 중추는 메시야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만

사실 '사랑'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동성애에 관련된 문제들도 많이 언급됩니다만,

사실 성서에 성적취향 문제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봐야죠.


저 포함 이성애자가 대다수인 우리 입장에서는 우웩, 하겠지만

에스겔서에서도 소돔과 고모라가 무너진 진짜 이유는 사회적 부패였다고 말합니다.

다른 서에서도 '쾌락만을 위한, 또는 위력에 의한 강제 동성애'를 죄로 규정했습니다.

바울도 '우리 교회에 동성애자들이 예배하러 오는데 어떻게 해요?'라는 편지에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죠.


교회는 이들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뭉치기, 즉 내부결속용으로 사용한 것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좀 더 열려있는 해외 교회들에서는 동성애를 가진 여자 목사들이 목회에 서기도 합니다.

사랑은 죄가 아니니까요.


에...

결론이라기엔 뭐하지만,


우리 모두 사랑합시다.



5. 요약


1. 좋은 목사도 잘 찾아보면 어딘가에는 존재한다

2. 십일조는 내도 되고 안내도 된다

3. 목사는 성직자가 아니다

4. 성서의 문구는 오역이 있을 수 있다

5.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