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민원’이라는 단어 앞에 과도하게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민원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담당자의 과오나 조직의 결함으로 치부되다 보니, 민원의 질 을 따지기 전에 민원 발생 자체를 막으려는 강박에 빠진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정당한 개선의 목소리와 단순한 화풀이성 불평을 구분하지 못하는 ‘행정적 마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본래 민원은 시스템의 빈틈을 메우고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귀한 목소리여야 한다. 마땅히 고쳐야 할 부조리,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국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변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내가 기분이 나쁘다", "우리 애가 손해 보는 것 같다", "그냥 보기 싫다"는 식의 지극히 사적이고 감정적인 내용들이 민원이라는 방패를 들고 공적인 영역을 뒤흔든다. 문제는 조직들이 이를 걸러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무분별한 민원까지 일단 해결하고 보자는 식의 무원칙한 태도는 결국 모든 사회 구성원의 행동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민원 발생 자체를 공포로 여기다 보니, 공공기관이나 교육 현장, 기업들은 새로운 시도나 원칙 고수보다는 ‘욕먹지 않을 선택’만 하고 있다.
정당한 법 집행보다 민원인의 목소리 크기에 따라 원칙이 널뛰기 시작한다.
'우리 애'만 소중한 학부모의 민원을 피하기 위해 교사는 훈육을 포기하고, 아이들은 공동체의 질서를 배울 기회를 잃는다.
새로운 도전에는 반드시 반대 급부의 불편함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민원이 두려워 현행 유지만 하고 있다.
결국, 민원이 안 나오게끔 하기 위해 모든 행동 자체를 제약하는 '사전 자기검열'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모든 민원에 평등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당한 요구'와 '정당한 개선'을 구분해야 한다.
타당한 근거가 있고 구조적 개선이 필요한 민원에는 전력을 다해 응대하되, 개인의 감정 해소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민원 같지 않은 민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그것이 도리어 정당한 민원을 제기하는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길이다.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 공동체를 살린다는 말처럼 모든 사람을 100%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이나 서비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사소한 불편함이 사회 전체의 질서와 원칙을 무너뜨리는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민원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상식적인 민원이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민원을 두려워해 모두의 손발을 묶어버리는 상황을 만들지 말고, 불편함과 부당함을 구분할 줄 아는 사회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