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2년생입니다.
어릴 때부터 집안 분위기가 조금 특이했습니다.
어머니의 종교적 신념이 매우 강했고, 그 기준이 가족의 생활 전반에 깊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지냈습니다.
초등학교 때 누나와 저는 각각 학업우수상을 받아 집 벽에 붙여둔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집에 오신 분이 그것을 보시고 “이런 것도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고,
어머니는 그날 상장들을 모두 정리해버리셨습니다.
피아노 콩쿠르에서 받은 상도 함께 없어졌습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부터 무엇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기준이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나는 공부를 잘해서
지역 국립대 의대는 조금 부족했지만 사립대 의대 하나는 충분히 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학교가 불교 재단이라는 이유로 어머니가 반대하셨고, 결국 의대 진학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그 선택이 당연한 줄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의 방향이 바뀐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 역시 대학에 들어가면서 사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선택해서 이어가고 있는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어머니가 저 몰래 그 사람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관계를 정리해버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때의 선택이 정말 제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었던 일인지 지금도 가끔 헷갈립니다.
그럼에도 저는 제 방식대로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장학금을 받아가며 학교를 다녔고, 생활비도 최대한 아껴가며 버텼습니다.
군대를 가기 직전 학기에 등록금의 상당 부분을 감면받는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입대 전에 등록만 해두면 그 혜택이 유지되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등록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군휴학 처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뒤, 처음으로 큰 등록금을 제가 직접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집이 어려운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누나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어머니가 제 등록금을 따로 모아두셨던 돈이 있었는데 다른 곳에 사용하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것이 맞는 선택이었는지에 대한 판단보다 그 당시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제 상황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후 저는 결혼을 했고 가정을 꾸렸습니다.
지금의 아내는 전업주부로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 이후에도 어머니와의 기준 차이는 계속되었습니다.
아내의 집안이나 학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그때부터 저는 어머니와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누나는 어머니 곁에 남았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교회에 다니며 신념 중심으로 살아갔습니다.
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제 방식대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신 이후, 상황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누나는 여러 문제를 겪으면서 힘들어졌고,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결국 저는 재산 정리와 부양 문제에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전의 선택들이 하나씩 현실적인 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보다 이전부터 “교회가 보이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하셨고,
그 기준에 맞춰 입지가 좋지 않은 아파트를 누나 명의로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정리하려고 했을 때 그 집은 쉽게 매각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머니는 중증질환을 앓게 되었고,
3년 정도의 간병이 이어졌습니다.
그 시간 동안 누나는 많이 힘들어했고,
저 역시 여러 역할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누가 더 힘들었다기보다 모두가 지쳐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그 상황에서도 간병인에 대한 기준을 유지하셨고,
저는 현실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며 계속 부딪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3년의 시간이 지나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유산을 모두 누나에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상황은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누나는 계속해서 힘든 이야기를 했고, 제 아내와 가정에 대한 불만을 표현했습니다.
자신의 삶이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저에게 책임을 돌리는 말도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결국 감정이 겹쳤고,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 오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누나는 저를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지금은 몇 년째 연락이 없는 상태입니다.
현재 저는 직장과 가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같은 집에서 자랐는데 왜 이렇게까지 다른 방향으로 살게 되었는지,
조금은 덜 부딪힐 수는 없었는지,
아니면 애초에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는지.
요즘은 그냥 이렇게 정리하게 됩니다.
가족이라는 것이 가까워서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을 때 유지되는 관계였던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