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출산 및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곤 한다. 여성에게는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임신과 출산, 양육을 비롯한 가사노동의 부담이 지어진다. 우리 어머니 세대가 그러했고, 어머니의 어머니 세대 또한 그러했다.

 

재생산노동은 사적인 가정의 영역과 관계가 있으며,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생산해 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전은 노동을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가사노동은 충분히 노동의 정의에 부합한다. 청소하지 않으면 집은 유지되지 않고, 밥을 짓지 않으면 가족은 굶는다. 밥을 사 먹고, 세탁을 맡기면 비용이 드는 것이 당연한데, 이런 일이 누군가의 손을 거치면 그 인건비는 0원이라는 점은 분명 어딘가 이상하며, 자본주의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성평등 인식의 확산, 여성의 대학 진학율 증가 등으로 오늘날 여성의 사회 진출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했다. 그러나 여성이 생산노동에 참여하는 만큼 재생산노동의 부담이 감소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쉽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오늘날 여성에게는 생산노동과 재생산노동에 대한 부담이 이중적으로 강요되고 있다. ‘워킹맘이라는 단어는 흔하지만 워킹대디라는 단어는 없다. 사회가 여전히 돌봄과 가사노동을 여성의 책임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증거다.

 

산업현장에서 남성 근로자가 매일 8시간을 일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 그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를 돌보며, 가정을 유지해 주기 때문이다. 가사, 돌봄, 출산과 양육 같은 재생산노동은 분명 자본주의 사회가 돌아가게 만드는 핵심 기반이지만, 경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어머니 또는 아내가 제공하는 대가 없는 헌신과 사랑은, 동시에 고된 노동을 무급으로 취급하는 것을 정당화 해왔다. 재생산노동이 가족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라는 논의는, 그 노동이 공짜여도 괜찮다는 생각을 합리화하는 것뿐이다.

 

남성이 가끔 요리를 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일이 돕는 일로 인식되는 한, 근본적 평등은 실현되지 못할 테다. 이런 내면화된 역할 분담은 결국 여성이 임신과 출산 등의 이유로 경력을 중단하고, 재취업 시장에서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를 감수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강요다.

 

재생산노동을 노동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 의문은 여전히 존재하고, 규정한다 하더라도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여전히 어렵다.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더이상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인정이 필요하다..근본적인 사회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 어떤 여성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부모의 육아휴직, 공공돌봄, 직장 내 유치원 등 복지 제도가 지금보다 더 강화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