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미시간 도착!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장장 4시간 동안 로렌의 운전면허 갈굼을 견디고, 드디어 미시간 그랜드래피즈 도착.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딱 영화 속 백인 중산층 동네였다.
잔디 깔끔한 2층짜리 주택들
SUV랑 픽업트럭이 쫙 늘어선 차도
아직도 남아있는 크리스마스 장식까지
"와… 미국 드라마에서만 보던 동네다."
내가 감탄하자, 로렌이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Welcome to my childhood."
(이게 바로 내 어린 시절 배경이야.)
그러고는 차를 멈췄는데,
집 앞에 두 명이 서 있었다.
아버지: 키 크고, 체격 좋고, 짧게 자른 머리에 진지한 표정.
어머니: 깔끔한 옷차림, 우아한 미소지만 속을 알 수 없는 분위기.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미 뭔가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엄마, 아빠, 얘가 박이야.”
로렌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부모님 앞에 소개했다.
딱히 엄청 긴장한 건 아니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까 심장이 쿵쾅거렸다.
"Hello. It's pleasure to meet you. "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자동으로 90도 인사를 했다.
그러자 로렌 아버지가 묵직한 악수를 건넸다.
"Welcome, Park."
(어서오게, 박)
로렌 어머니도 예의 바르게 미소 지었지만… 뭔가 거리감이 느껴졌다.
"…"
분명 대놓고 싫어하는 건 아닌데…
말 한 마디, 시선 하나하나에서 '우리 딸 남자친구?' 라는 느낌이 팍팍 전해졌다.
로렌이 옆구리를 툭 쳤다.
"Come on, let’s go inside before you freeze to death." (어여 들어가자, 얼어 죽기 전에.)
아, 이거… 쉽지 않겠는데?
집 안 분위기 = 완벽한 미국 가정집이었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크고 넓은 거실
아직도 남아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벽 한쪽에 걸린 가족사진들
그리고,
로렌의 어린 시절 사진들
나는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Oh, look at you.”
(와, 너 좀 봐라.)
사진 속 로렌은 유니폼을 입고 잔디 위를 질주하는 모습이었다.
환하게 웃고 있었고, 옆엔 트로피를 든 팀원들도 있었다.
"Damn, you really were something, huh?"
(와… 너 진짜 잘했던 거네?)
로렌이 소파에 털썩 앉으며 웃었다.
"I was a big deal in Michigan, at least."
(적어도 미시간에서는 좀 유명했지.)
그때 로렌 아버지가 내 앞에 앉았다.
"So, Park. Let's talk."
(자, 박. 얘기 좀 해보자.)
은근히 들어오는 압박 질문들
아빠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You just finished your military service, right?"
(군 복무는 끝난 거지?)
"Yes, sir. I was discharged recently."
(네, 최근에 전역했습니다.)
"And now?"
(그럼 지금은?)
"I’m preparing to go back to school."
(복학 준비 중입니다.)
"Hmm."
그 짧은 “Hmm” 에서 느껴지는 의미:
‘그래, 뭐 딱히 문제는 없군.’
‘근데 그렇다고 내 딸 남자친구로 인정한 건 아님.’
"Any plans for after graduation?"
(졸업 후엔 어떤 계획이 있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I’m still figuring it out, but I’m considering something related to public service."
(아직 고민 중인데, 공무원 시험칠까 생각하고 있어요.)
로렌 어머니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Public service? In Korea?"
(공무원? 한국에서?)
"Yes, ma’am. It’s not set in stone yet..."
(네.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그 순간, 아빠가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And what about Lauren? What do you plan to do about her?"
(그럼 우리 딸이랑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로렌이 물을 마시다 뿜을 뻔했다.
"Dad!!!"
나는 동공 지진이 왔다.
만난 지 10분 만에 이 질문이 나올 줄은…
로렌 어머니는 고요한 미소를 유지하며 찻잔을 들었다.
그 미소가 뭔가… 심리전 느낌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답했다.
"Lauren and I support each other. We’ll figure things out together as we go."
(로렌과는 서로 응원하며 지낼 생각입니다. 미래에 대해선… 함께 고민해보려고요.)
"Hmm."
(또 나옴)
아빠는 나를 5초 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Alright. Let’s eat."
(그래. 일단 밥부터 먹자.)
살았다.
저녁 식사 자리. 정중하지만 뭔가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저녁 메뉴는 전형적인 미국 가정식.
스테이크
샐러드
매쉬드 포테이토
엄청 맛있었는데…
분위기가 딱 면접 보는 기분이었다.
로렌이랑 나만 웃고 떠드는데,
부모님은 그냥 조용히 듣고만 계셨다.
가끔 나를 슬쩍 관찰하는 느낌도 있었다.
마치 "어디 보자… 이 동양 남자, 우리 딸에게 어울리는지 한 번 살펴볼까?"
-----
로렌의 형제들 방에서 묵다
저녁을 먹고 나니 슬슬 피곤이 몰려왔다.
시차도 적응 안되기도 했고..
"Where am I sleeping?"
(나 어디서 자?)
"My brother’s old room."
(오빠 방에서.)
"I thought I’d get to sleep in your room."
(너 방에서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로렌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날 쳐다봤다.
"You wish."
(웃기시네 ㅋㅋㅋㅋ)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방으로 향했다.
이렇게 첫날이 무사히 지나가는 듯했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