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카투사 군생활 썰" 후속편입니다.

아직 못보신 분은 자유게시판 -> 카투사 검색하셔서 꼭 보기길 바랍니다.

 

인터넷에서 네덜란드 여성과 펜팔을 하다 결혼한 사람 같은 사연은 들어봤지만…

제 주변에서는 아직까지 저보다 더 먼 거리에서, 더 오랫동안 연애한 사람은 못봤습니다.

 

 

과연, 이 초장거리 연애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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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광주 외갓집으로 

 

 

전역하고 나서

"이제 자유다!!!"

 

외쳤던 것도 잠시.

할 일이 없으니 심심해 죽을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엄마가 말했다.

 

"추석인데 외갓집 갈 거지?"

 

"어, 당연히 가야죠!"

 

오랜만에 할머니도 뵙고,

사촌들도 만나고,

기름 좔좔 흐르는 명절 음식을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 가족들에게 로렌을 비공식적으로(?) 소개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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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갓집 도착하자마자 가족들의 관심 폭격

광주 외갓집에 도착하자마자,

외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하셨다.

 

 

"오메~ 우리 손주 왔구만!"

 

"외할머니, 저 왔어요!"

 

"밥 묵었어?"

 

"아직이요."

 

"거 봐~ 오자마자 밥부터 먹여야지!"

 

할머니의 긴급 명령이 떨어지고,

나는 갓 부쳐진 전과 잡채를 흡입했다.

 

그런데.

앉자마자 친척들의 궁금증 폭격이 시작됐다.

 

"야, 너 여자친구 있다며?"

 

"미국 사람이라며?!?!"

 

"진짜야? 와~ 완전 글로벌하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아니, 내가 언제 말했지?

 

 

슬쩍 엄마를 보니,

엄마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ㅏㅏㅏ  엄마가 이미...

 

 

"사진 없어? 어디 보자!"

 

"오메야, 스카이프 할 거면 우리도 구경해야 쓰겄다~"

 

나는 순간 식은땀을 흘렸다.

이거… 일이 커지는 느낌인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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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조용히 스카이프 하려다가 대참사 

 

 

밤에 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켜고, 스카이프를 실행했다.

 

로렌 - incoming call..

 

"Hey, Park!"

 

로렌이 휘튼대 기숙사에서

후드티를 입고 커피를 마시며 웃고 있었다.

 

"Hey, you look cozy."

(“편해 보이네.”)

 

"Well, yeah. Unlike you, I don’t have to wear a uniform anymore."

(“당연하지~ 너랑 다르게 난 더 이상 군복 안 입어도 되잖아.”)

 

"I don’t either!"

(나도 마찬가지거든!)

 

"Yeah, but you’re still in ‘military mode.’ Admit it."

(“그래도 너 아직도 군인처럼 행동하잖아. 인정해.”)

 

나는 웃으며 살짝 반박하려는데…

 

 "형, 뭐해?"

 

문이 벌컥 열리더니,

사촌동생(당시 초딩)이 방에 들어왔다.

 

"아, 그냥…"

 

그런데.

사촌이 화면을 보고 순간 얼어붙었다.

"헐… 형, 여자랑 영상 통화해?"

 

"…어?"

(상황 파악 중.)

 

"형… 여자친구야?!!! 엄마!!!"

나는 입을 막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 ㅡㅡ^

 

5초 만에 가족들 몰려옴.

 

"뭐? 여자친구?!"

 

"오메~ 미국 사람이라며?!"

 

"야, 우리도 봐야지!"

 

"헐, 진짜 예쁘다!"

 

그리고 큰이모가 감탄하며 말했다.

 

"오메야, 인형이 따로 없네!"

 

나는 멘붕.

그냥 혼자 통화하려고 했을 뿐인데…

로렌이 화면 너머로 상황을 보고 폭소를 터뜨렸다.

 

"Wait, what is happening right now?"

(“뭐야? 지금 무슨 일인데?”)

 

나는 속삭였다.

 

"My entire family is watching this call now."

(“우리 가족이 다 이 통화 보고 있어.”)

 

로렌은 웃음을 참고 말했다.

 

"Wow. Great. Love this. No pressure at all."

(“와~ 아주 좋아. 부담감 1도 안 느껴지네~”)

 

그 순간.

 

외할머니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새색시, 얼른 집으로 데려와야 쓰겄어!"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로렌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Park? What did she just say?"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해석했다.

 

"She… uh, she called you our ‘new bride’ and said I should bring you home soon."

(“할머니가 너를 ‘우리 새색시’라고 부르시면서 빨리 집에 데려오라고 하셨어.”)

 

로렌은 입을 틀어막고 빵 터졌다.

 

"네. 할머니! I wish I were there!"

(네, 할머니! 저도 가고 싶어요!)

 

방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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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하려다 국대시절 사진 발견.

 

그날 밤.

사촌동생이 내 방으로 슬쩍 들어왔다.

 

"형, 노트북 좀 써도 돼?"

 

"뭐하게?"

 

"스타 해야지."

(스타크래프트)

 

"그래, 잠깐만 써."

 

나는 무심코 휴대폰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촌동생이 화면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형, 이거 뭐야?"

 

"뭐가?"

 

사촌이 내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거기엔.

 

로렌이 미국 U-17 여자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있는 단체사진.

훈련장에서 공을 차는 모습의 사진.

팀원들과 함께 스트레칭하는 모습의 사진.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이거 어디서 찾았냐?"

"몰라. 그냥 사진 폴더 클릭했는데?"

 

그때.

문 밖에서 듣고 있던 큰이모가 소리쳤다.

 

"뭐? 니 여친 축구선수였다고?!?!"

 

그리고 또

가족들이 우르르 다시 몰려왔다 ㅡ.,ㅡ

 

"헐, 진짜 선수였어?!"

"야, 국가대표였어???"

"오메, 대박이네!!!"

 

 

나는 그제야 진짜 질문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운동했던 애가 어떻게 휘튼대에 들어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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