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20여년전 중학교 시절부터 지독하게 괴롭혓던 사람이 면접을 보러왔네요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워버리고 싶었던 과거를 상기시키고 다시 저의 마음을 다잡고자 써내려가 봅니다.

저는 시골의 작은 동네에서 국민학교를 다니고 면내에 작은 중학교로 진학을 하였습니다.

집에서 중학교까지는 4~50분 걸어가면 갈 수 있는 거리였고 가끔 아버지가 차로 태워주시곤 햇엇죠.


동네에 또래 남자들도 없고 형들도 나이차가 많이 나서 항상 여자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또래의 남자애들과 어울리다보니 솔직히 잘 어울리질 못햇습니다.

그러다가 1학년 시절 하나둘 괴롭히는 친구들이 생겻고, 그 중심에 한 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뺏고, 돈을 뺏는거는 둘째치고 오락실로 불러내서 다른 친구와 서로 뺨을 때리고 하고, 싸워보라고 하고

참새나 개구리를 잡아와서 커터칼을 쥐어주며 배를 가르라고 하고 못하겟다고하면 다른 친구를 시켜 배를 가른 개구리,참새 등을저에게 묻히며 참 감정적으로 많이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1년 넘게를 괴롭힘을 당하다가 선생님께 말씀드렷는데 선생님이 우리를 학교 앞 중국집으로 불러서 친구들끼리 그러는거 아니다. 지금 잠시뿐이지 작은 동네다보니 나중에 너희가 나이를 먹으면 친구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될거다.

대충 그런 설명을 해주시며 화해 아닌 화해를 시키셧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게 화근이었는지 그 친구는 기분이 많이 나빳는지 그 후로 집으로 가는 방향도 다른데 걸어가는 저를 동네 

사거리까지 쫓아오며 몇날 몇일을 괴롭히더군요.

도저히 버틸수가 없어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고,부모님도 그 동안 저의 행동에 대충 짐작은 하셧는지 제 이야기를 쭉 들으시곤

동네에 수소문을 하시더군요.정말 작은 시골동네라 누구누구 하면 다들 아시는 사이라 그 날 저녁 내 통화하시는 소리가

들리고 몇몇분은 집으로 오셔서 아버지와 술 한잔 하시면서 미안하다고  하시는 걸 들엇습니다.

무슨 생각이엇는지 저는 그날 저녁 펑펑 울면서 공책에 그 친구들 이름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고 창고에 잇던 농약을 한컵 마셔버리곤 잠이 들었습니다. 어수선한 주변에 눈을 떠보니 지역에 있는 큰병원의 응급실이었고, 위세척과 응급처치를 끝낸채로

누워있었습니다.어머니는 울고 계시고 아버지는 미안하다며 제 손을 꼭 붙잡고 떨고 계셧습니다.


결국 익명으로 지역뉴스에까지 제보가 되고, 그 사태로 학교에 공론화가 되엇고 요즘처럼 학폭위? 그런건 없지만 해당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모두 소집되셧습니다.학교는 저에게 전학을 권유하였고 저는 여섯차례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치료를 다 마치고 저는 전학을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졸업을 하였고,어머니는 제 이름이 잘못되었다며 개명까지 하였습니다. 집에서 떨어진 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더 이상 그 친구들을 마주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서져버렸던 3년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지만 일일히 나열하기에는 정말 긴 글이 될 것 같아서 이정도만 쓰는 걸로 하고.

 

저는 어느덧 40대 초중반이 되었고, 결혼도 하고 예쁜 아들,딸래미하고 마누라랑 행복하고 살고 있습니다.

젊었을때부터 했엇던 화물일이 잘 풀려서 현재는 고향 근처의 도시에서 법인대표로 11대 가량의 화물차를 굴리고 있습니다.

기존에 기사직으로 타던 기사님 한분이 차량을 구매하셔서 독립하고 싶으시다고하셔 작년(22년)까지만 하시기로 해서

새 기사를 뽑으려 지역신문과 사이트에 공고를 올렸더니 연락 온 사람들 면접을 보는데 오늘 오전에 왓던 한명이 얼굴이

눈에 많이 익더라구요. 신분증과 면허증을 달라고 해서 보니...맞습니다...그 인간이...순간 저도 모르게 손이 너무 떨려서

아무 말도 못하다가 차분히 물어봤습니다. 편의상 A라 하겟습니다.

 

나 : 혹시 XX중학교 다니지 않았느냐?

A  : 넵. 맞습니다.어떻게 아셨습니까?

나 : 나 김아무개(개명 전 이름)다. 못알아 보겠느냐?

A  : 한동안 아무말이 없더니..제가 건내 준 명함을 뚫어져라 보더군요.

     아.....몰라봤다.미안하다.

나 : 아니다.키도 많이 크고 나이를 먹었으니 그럴수도 있지.나도 많이 놀랫다.

     내가 일일히 설명하는 것도 웃기지만, 너도 대충 짐작하겟지만 나는 너를 채용할 수가 없다.이해해라.

A  : 무슨 말인지 알겟다.그만 일어나 보겟다..

 

그렇게 10분도 채 안되는 면접은 끝이 났습니다.

떼어 온 초본과 등본을 보니 결혼도 했고 일곱살 되는 아들도 하나 있더군요.

대형면허증과 화물운송자격증은 취득일을 보니 작년 겨울..아마 취득 후 제가 첫 면접이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서 하다가

짤리거나 안맞아서 나온거겟지요.

구직 입장이다보니 제 앞에서 바른 자세로 앉아 수그리고 있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아 한참을 아무일도 못하고

멍하니 연거푸 담배만 태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의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뭐 위에 이유도 있겟지만 지워버리고 싶었습니다.

과거의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친해지려 노력햇고, 그때의 저를 점점 지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나이를 먹어가고 거친일을 해오면서 성격도 많이 바뀌었고,가끔 학폭 뉴스를 접하면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 당시의 힘듬은 내 자신이 만들었다고 자책하면서 살았습니다. 괴롭힘을 당한 이유가 저에게 있다고 자책하면서요.


그런데 오늘 20여년만에 이 인간을 마주하고 순간 아무말도 못하고 심장은 미칠듯이 뛰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저를 보면서

어디에라도 토해내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서 가끔 눈팅하던 보배에 글을 남깁니다.

 

혹시나 이 글을 보게 될 지 모르겟지만..나는 니가 정말 불행했으면 좋겟다.

너를 선택한 너의 가족과 아이가 능력없는 너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니가 몸부림쳤으면 좋겟다.

현재가 힘들어서 적지않은 나이에 힘들다는 화물일을 하려 준비했겟지..

난 니가 더 힘들었으면 좋겟다.하루 한끼를 챙기기도 힘들게..그렇게...니가 살았으면 좋겟다.

 

이것이 분노에 주먹을 뻗지도 못하고 눈물이 마를때까지 울다가.. 목이 타들어가는 농약을 삼키던 

14살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나는 니가 정말 불행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