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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이야기이고 또 동의없이 알려질경우 문제가 될 수 있어 읽기전용으로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제시 고소하겠습니다) 


보배드림을 우연한 계기에 알게되어 글을 본지 이틀째입니다.


저는 평생 공부만 하고 지냈습니다. 저와 다른 삶을 사신 분들의 이야기를 접하니 참 즐겁고 새로웠습니다.


저 또한 다른분들에게 흥미로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써볼까 합니다.


(참고로 현재는 대학병원을 떠나 병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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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턴 하반기 시절


인턴을 인간처럼 대우해주는 분과가 있는가 하면 실습학생보다도 못한 버러지로 보는 분과도 있다. 인턴은 다음해 분과 예비 던트이기 때문에 윗년차라 해서 함부로 해선 안된다. 요즘 같으면 줄줄이 아랫년차가 들어오지 않아 결국 4년 내내 1년차 신세를 면치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턴을 개처럼 부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특히 그런 사람들은 수술과에 집중돼 있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대학병원의 OS (정형외과) 분위기는 살벌하다. 내가 인턴인 시절만 해도 아랫년차 던트들이 윗년차들에게 맞고 사는건 일상이었다. 여기저기 멍든채로 수술방에 들어와 수술을 하고 다시 환자를 올리고 내리고....

정형외과는 맞고 아파할 겨를도 없을정도로 바쁘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의국 식구도 아닌 인턴을 인간 취급해줄리 만무하다. 


거기다 자그만 실수라도 하는날엔 세상 들어보지 못한 쌍욕은 다 듣게 된다. 수술방에서 인턴의 실수라고 할만한건 교수님이 주로 사용하는 수술 기구 배치를 제대로 해놓지 않거나 제때 콜 했을때 달려오지 않는것 정도가 있는데 나는 이런 실수 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세상 쌍욕은 OS 도는달에 모두 들었다. 정형외과의 이런 군대식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일본에서 들어온 도제식 교육 문화의 영향이 크다. 특유의 보수적인 의사집단 성향과 우리나라 특유의 수직상명하복 문화가 만나 고착화 되었다.


산부인과. 요즘도 전공의 지원을 거의 하지 않지만 나때도 인기가 없었다. 산부인과가 인기 없는 이유는 수익 대비 리스크가 크고 평생 의료소송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강아지 제왕절개 비용보다 산모 제왕절개 비용이 더 저렴하다)

그러나 인턴들이 산부인과 (OBGY)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특유의 OBGY 분위기도 한몫한다. 

우리병원 OBGY 의국 분위기는 말 그대로 지옥 그자체였다. 예전 군대에서나 보던 내리갈굼을 여자들만 있는 OBGY 의국에서 하고 있었다. 4년차가 3년차를 갈구고 3년차는 2년차를 갈구고 2년차는 1년차를 갈군다. 그들에겐 '사랑의 방' 이라고 불리는 방이 있었는데 이곳으로 아랫년차를 데려가서 마구 욕을 퍼붓는다. (내가 본건 파일을 던지고 심한 욕 하는 정도였다 폭력은 보지 못했다) 

그런 내리갈굼은 이따금 죄없는 인턴들에게도 왔는데 예를들어 저녁시간 제때 음식을 갖다 놓지 않았다고 짬뽕 그릇을 칠판에 던지는 등의 행동들이 그러했다. 짬뽕그릇 던짐 당한 인턴은 결국 다음날 도망갔다.


OS와 OBGY는 각각의 이유에 의해 가지 말아야할 최악의 분과로 고려되었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다. 인턴기간도 절반이 지났다. 이제는 주사기를 찌르다가 욕먹는 일 따윈 없다. 눈감고 찔러도 피가 철철 나왔다. 인턴을 마치면 동대학병원의 전공의를 지원할 계획이었다. 매달 경험하는 다양한 과에서 하루에도 수십번 가고싶은과가 바뀌었다. 애초에 가고싶지 않은 최악의 과도 있었지만 가고싶었던 과중에서도 가고싶지 않은곳들이 생겨났다. 점차 이런일이 반복되니 대학병원 내에는 내가 가고싶은 분과가 전혀 남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차악을 선택해야했다.


공부 잘하는 동기들은 이미 피부과 성형외과 등에 가지원을 마친 상태였다.

분과마다 전공의를 뽑는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는 선배 아는 교수님의 라인만 잘타도 성적 따위 걷어차던 시절이었다. 교수님 아들, 교수님의 친구 아들, 학회내 친구 아들, 누군가의 지인 등이 원하는 과에 척하고 가는건 일도 아니었다. 나는 주위 의사라곤 나밖에 없는 흙수저였다. 이런 고민들을 반복하면서 정말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전공의 지원 시기가 되었다. 우리 병원의 전공의 지원 현황을 보면 1:1을 넘는곳이 없었다. 그렇다. 이미 내정자가 있었다. 그것을 병원에서는 어레인지라고 한다. 각 과의 어레인지를 통해 탈락한 인턴들은 지원자가 없는 분과를 쓰거나 아니면 타대학병원에 지원을 한다. 1명 정원에 1명 지원했다고 불나방처럼 지원하면 100프로 떨어진다. 나는 가고 싶은 분과가 있었지만 로얄에 밀려 쓸 수 없었다.

(로얄 : 한마디로 병원에 라인이 있는 사람)


3월부터 12월까지 단 하루도 제대로 쉰적 없이 달려왔다 아니 달려져왔다. 나는 자동차의 수많은 베어링중 하나였다. 악셀을 밟으면 움직일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같은 처지의 베어링들이 서로 연결되어 움직여졌다. 베어링이 하나라도 빠진다면 다른 베어링이 그 몫까지 해야했다. 지금 죽을거 같아서 내가 포기하면 그 업무는 내 옆 베어링 친구에게 간다. 그래서 모든 인턴들은 그만둘 수 없었다. 


나는 인턴이 끝날 3월만을 바라보며 견뎠다. 나는 너무 지쳤고 전공의를 할 의욕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지원하지 않았다.


픽스턴달이 왔다 (픽스턴달은 전공의에 합격한 인턴들이 3월부터 각과에서 근무하기 앞서 2월에 각과의 인턴을 도는것을 말한다) 

나는 합격한 분과가 없었으니 그들이 가고 남은 분과에 들어갔다. 다행히 주말중 하루는 오프가 있는 분과였다. 



1-(2) 수술방에서 만난 인연



마침 내가 차리게 된 수술방에 처음보는 스크럽 간호사가 있었다. 스크럽 간호사 역시 레지던트와 비슷하게 순환식으로 이곳저곳을 돌며 교육을 받기 때문에 처음 스크럽하는 곳에선 실수하기 마련이다. 

스크럽 간호사를 교육하는 수간호사는 굉장히 무서운 사람으로 인턴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사람이었다. 짬으로는 인턴과 비교가 안될정도로 경험이 많고 교수들 또한 그들을 신뢰해서 마치 수술방을 호령하는 지휘관 같았다.

직군이 다른 인턴에게도 반말로 지시하는 수간호사가 처음 스크럽을 잡는 스크럽 간호사에게 친절할리 만무했다. 

나또한 오늘은 수술 처음부터 끝까지 Observe 해야 하는 상황이라 긴장하며 수술을 지켜봤다. 

교수님이 계시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스크럽 간호사에게 윽박지르는 수간호사. 마치 일그러진 영웅에서 교사의 지지를 받는 엄석대가 떠올랐다.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의 대부분을 가렸지만 울기직전인 상태가 느껴졌다. 나또한 인턴 초반 그런 경험들이 있었기에 남일 같지 않았고 연민의 감정이 느껴졌다.

2시간여의 수술이 끝나고 수간호사, 스크럽간호사 그리고 내가 남게 되었다. 수간호사는 고삐가 풀린 망아지 마냥 스크럽 간호사에게 욕을 퍼부으며 그딴식으로 할거면 병원을 나가라는 협박을 했다. 그제서야 울음 가득한 간호사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조용히 방정리 중이던 나 뒤로 다른 간호사가 들어와 스크럽 간호사에게 빨리가서 밥먹고 오라는 말을 하는걸 들었고 이내 그 스크럽 간호사는 총총 걸음으로 나갔다.

살짝 젖힌 마스크 뒤로 얼굴이 보였다. 이내 나는 그 간호사를 기억하기 위해 신고 있던 슬리퍼를 보았다. 어렴풋이 ㅈㅅㅇ 이라고 써져있는것 같았다. 까먹을까봐 그 이름을 되뇌며 수술방을 치우고 나갔다. (수술방에선 얼굴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면 신발을 볼수 밖에 없다)


마침 나도 점심 수술이 취소되어 1층 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을수 있었다. 결제하고 자리에 앉았다. 배가 너무 고파 와구와구 먹고 있는데 맞은편에 스크럽 간호사로 추측되는 직원이 앉아 울먹이며 밥을 먹고 있었다. 일개 인턴따위이지만 뭔가 위로라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늙어버린 얼굴은 생각도 하지 않은채 옆에 가서 앉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간호사는 병원과 꽤 먼 지방의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혼자 올라와 아는 사람이 전무했다고 한다. 그러니 옆에 누가 앉아도 자기를 아는 사람이라 생각은 하지 못했을것이다. 


"안녕하세요. 저 아까 같이 수술방에 있었던 인턴 선생입니다"

그제서야 옆을 쳐다보며 눈물을 훔치는 스크럽 간호사. 우느라 밥은 거의 먹지 못했는지 음식이 그대로 놓여져 있었다.

그렇게 울고 있는 상황에서 나에게 무슨 할말이 있었겠는가...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던 간호사는 민망했는지 벌떡 일어났다.

마침 점심 수술이 취소되어 그 방 스크럽이 당장 필요없다는것을 알고 있었고 나도 식판을 내려놓고 뒤따라 갔다.


"아까 그 수간호사는 원래 성격이 개같아요 그러니 상처받지 마세요" 라는 말과 함께 한달동안 잘지내보자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밥을 먹으며 간호사에게 했던 행동과 말은 이전에 내게선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용기를 내어 그분에게 말을 걸었던 그 상황을 다시 복기해보니 나도 모르는 무언가에 끌리듯 가게된것 같았다. 


그날도 힘들게 일을 마치고 당직 침대로 돌아와 누웠는데 문득 오전의 스크럽 간호사가 생각났다. 힘들기만 한 병원이었는데 스크럽 간호사가 생각나자 갑자기 내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이 되었고 수술방을 차리고 있는사이 그 스크럽 간호사가 들어왔다. 수술복으로 갈아입는 사이 마스크와 모자사이로 얼굴이 얼핏 보였는데 내 이상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설레기 시작하는 인턴 나부랭이.... 니가 지금 그럴때냐...?) 

다행히 그 수간호사는 오늘 나타나지 않았고 무사히 오전부터 오후 수술까지 끝냈다.

수술이 모두 끝난후 수술방에 남겨진 나 그리고 스크럽 간호사. 

"오늘 수고하셨어요" 라는 말과 함께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했더니 아무말 없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줬다.


병원내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될거라곤 전혀 상상도 안해봤는데 이 지옥같은곳에서 무슨짓인들 못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차피 픽스턴 기간이고 난 전공의도 안갈거라 예전보다는 농땡이도 많이 치고 있었다) 혹시 몰라 로비 1층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무작정 기다렸지만 머릿속은 복잡해졌는데.. 혹시나 잘못되면 내일 수술방에선 당장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함께... 내 앞가림도 못하는데 무슨 다른 사람까지 챙기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부분의 간호사들이 퇴근을 마친 시간까지 ㅈㅅㅇ 간호사는 나오지 않았고 혹시 당직을 서나 하는 생각에 집으로 가려는 순간 멀리서 혼자 나오고 있는 ㅈㅅㅇ 간호사를 발견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헷갈렸다. 내가 이 간호사에게 정말 마음이 있는건지 아니면 전쟁터 같은 수술방에서 일종의 연민과 동질감을 느낀것인지..... 뭐 어찌됐든 나는 그 당시 마음이 내키는대로 하고 싶었던것 같다.

나는 다시한번 인사를 했다. 그분도 당황을 했는지 인사를 하며 눈을 아래로 내렸다.

내가 얻은집은 병원에서 5분거리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어차피 가는길이었기에 같이 따라나섰다.

나는 어떤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얘기했지만 당황해서인지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고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서있는데... 갑자기 간호사가 한마디 한다


"어제 밥먹는데 말걸어줘서 고마웠어요"

(내 속마음은 제게 지금 말 걸어줘서 더 고마워요)


이내 아니라고 하며 나도 그 수술방에 있으면서 마음이 안좋았다는 둥 여러 이야기를 하며 한 3분정도 걷다보니 내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안녕히가세요라는 말과 함께 지금 타이밍이 아니면 더이상 기회가 없을것 같았고


"혹시 전화번호 여쭤봐도 될까요?" 라는 뇌가 시키지 않은 척수반사가 나왔다. 다행히 나는 간호사의 전화번호를 받을수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받았던 번호를 한창 쳐다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마 인턴을 시작하고 이토록 웃었던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것 같다. 사실 그사람과 한거라곤 몇마디 나눈 대화뿐이었지만 그 대화에서마저도 이사람을 좀 더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itive Feedback이라고 하던가? 처음엔 무슨 감정인지 몰랐던 initial emotion에서 여러 피드백을 통해 점차 호감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쭉 간호사와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점차 감정이 더 커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인턴을 하면서 내일 할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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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드림 덕분인지 이 글을 쓰는동안 큰 일이 없어 무사히 당직을 마치고 집에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