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2006년에 가입해 소소하게 댓글 몇번 달아보고,

여태껏 한번도 게시글을 작성해 본적이 없는 눈팅 회원입니다.


요즘들어 섬나라와 추종세력 덕분에 앞으로 여러분들께 공유할만한 내용 남겨 보려 합니다.


이 내용은 제가 직접 조사해서 알아낸 내용은 아니구요.

 "독립운동가"라는 정상규님(현역 공군 장교)께서 사비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독립운동가 분들의 서거일에 맞춰 푸시알람을 해주는 어플에서 발췌한

내용과 검색에서 얻은 내용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고, 앞으로 주기적으로 공유해 드리려고 합니다.


내용이 길어도 한번쯤 읽어보고 역사를 잊지 않도록


** 독립운동가 전해산 선생(1879.10.18 ~ 1910.7.18)


호남의병의 정신적 지주,

의병대장으로 일군경과 70여 차례 교전하다.


"사람이란 어차피 한번 죽고 마는 것이니 왜놈과 가까이해서 죽게 될 진데 어찌 의병에 충실하다 죽어서 끝내

 좋은 이름을 차지 하는 것만 하겠느냐 "    [전해산 진중일기(1907) 中]



활동분야 : 독립운동 

출생지 : 전북 임실군 국평리 

주요수상 :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주요업적  : 대동창의단(大東倡義團) 결성, 호남동의단(湖南同義團) 결성 

1879년 전북 임실(任實)의 가난한 유생(儒生)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장한 후 전북 진안(鎭安)에 살면서 평소에는 농사일을 주로 하였고 이한룡(李漢龍)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했다. 1905년 무렵 익산(益山)에서 송병선(宋秉璿)·최익현(崔益鉉) 등이 호남지역의 젊은 재사(才士)들을 모아 학문을 논하였는데 그도 이에 참여하였다. 이로써 그는 학식과 견문을 넓힐 수 있었고 명문가 유생들이 의병을 일으켜 투쟁하는 사례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실천유학자(實踐儒學者)로 성장하였다. 

1907년 진안의 유생 이석용(李錫鏞)이 ‘창의동맹단(倡義同盟團)’을 만들어 의병을 일으키자 전수용은 참모(參謀)로 참여하여 투쟁하였다.그는 1908년 창의동맹단이 일본군을 피해 일시 해산할 때까지 활동하였다. 해산 후 이석용의 권유에 따라 장성(長城)에서 활동했던 의병장 김태원(金泰元)과 합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전수용이 장성에 당도했을 때 김태원은 이미 순국한 뒤여서 그는 한동안 나주(羅州) 의병장 오성술(吳聖述)에게 의탁하여 지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조경환(曺京煥)이 와해된 김태원의 세력들을 다시 규합하고 전수용으로 하여금 대장이 되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전수용은 이를 받아들여 1908년 7월 25일 ‘대동창의단(大東倡義團)’을 결성하고 의병대장으로 활동했다. 1908년 8~9월 경에 이르러서는 단원들이 300명이 넘었다. 당시 의병대들이 보통 수십 명 단위로 활동했었던 것으로 보아, 전수용이 호남지방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세력과 명성을 바탕으로 전라도 전역의 의병장들과 연합하여 1908년 겨울 ‘호남동의단(湖南同義團)’을 결성하고 ‘대동의병대장(大東義兵大將)’이 되었다. 이로써 전수용은 호남지역 의병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전수용은 훈련이 미흡한 군사들과 함께 빈약한 무기로 투쟁했음에도 불구하고 호남지역에서 많은 전승을 올렸다. 그러나 1908년 후반부터 일본군들이 의병 소탕을 본격화함에 따라 전수용은 연이어 패배하고 큰 피해를 입었다. 시간이 갈수록 일본군들의 압박이 더욱 격렬해 지자, 그는 훗날을 도모하기로 하고 의병장 지위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후 남원(南原의) 고래산(古萊山)에 은신하며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던 중 1909년 12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영산포 일군 헌병 분견대에 갇혔다. 1910년 6월 3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후에는 대구감옥소로 옮겨졌다가 1910년 7월 18일 처형되었다.

정부에서는 전수용의 공적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하였다.

 

요약 : 조선후기의 의병장. 대동창의단과 호남동의단을 결성하여 일본군에 맞서 투쟁하였다.


출처 : 독립운동가 어플 + [네이버 지식백과] 전수용 [全垂鏞] (두산백과)


10월 18일,,

저와 정확히 생일이 같고, 100년전에 태어나셔서 저보다 어린 나이에 독립 투쟁으로 생을 마감하셨네요..


100년이 지난 요즈음에,, 많은 생각이 드네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