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 중심 잃으면 무너지죠, 음악처럼 삶처럼…”- 얼핏 보기만 해도 강한 개성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정작 본인은 그러한 개성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갖고 있는 개성의 밀도는 더 진하다. 남들 또는 주변상황과 자신을 연관시켜 살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모터바이크를 타는 재즈피아니스트’ 한충완씨(43·서울예대 실용음악과 교수)가 그렇다. 버클리음대 유학 1세대로 연주계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는 한국사회에서 마흔셋의 남자에게 기대하는 이미지를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넥타이 맨 회사원이 아닌 음악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탈사회화’한 중년임을 금세 알 수 있다. 회색으로 탈색한 머리에 가죽잠바, 청바지, 그리고 크로스백 차림이 꽤 잘 어울리는 그의 취미는 모터바이크 타기다. 어떻게 모터바이크에 관심을 갖게 됐느냐는 질문에 “취미로, 재밌어서”라고 간단명료하게 답한다. “세워져 있는 것만 봐도 끌리고 탔을 때도 재밌고. 재미위주로 타죠. 산에 가는 재미, 험한 길 가는 재미, 속도 내는 재미 그런거요.” 최대로 달려본 속도는 시속 280㎞라고 한다. 그가 갖고 있는 모터바이크는 모두 3대. 일반 도로에서 탈 수 있는 2종류와 산악용 1대가 있다. ‘Bik@E’라는 오프로드 동호회원들과 장흥 등지로 나갈 때는 산악용을, 교통수단으로 학교와 연습실 등을 오갈 때는 다른 것들 중 하나를 골라타고 나간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다시 돌아온 1993년 모터바이크를 타기 시작했으니까 이제 10년된 셈. 10년동안 생각하는 것들과 음악색깔이 변해온 것처럼 모터바이크도 주인을 닮아갔다. “처음엔 네이키드(naked·부품이 차체 밖에서 보이는 제품)를 탔는데 지금은 레이서 레플리카(racer replica·부품이 차체에 가려져 있는 제품)를 타요. 취향이 바뀐 거죠. 네이키드는 밖에서 보기엔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요. 대신 공기의 저항을 많이 받아 속도는 빠르지 않구요. 반면 레플리카는 단순한 대신 스피드 내기에 좋죠.” 겉으로 보기 좋은 것보다는 실용적인 것, 기본적인 것을 좋아하는 쪽으로 변한 거냐고 물었다. “그렇죠.” 반은 강제로 의미부여를 한 셈이다. 그가 최근 새로 낸 앨범 ‘회색(回色)’에 서정적이고 듣기 편한 곡들이 주로 담긴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힙합, 국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음악을 하는 그에게 ‘재즈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는 다소 협소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그의 연주 기본은 퓨전재즈다. “피아노 연주와 모터바이크 타기는 어떤 연관이 있냐”는 뻔한 질문에 그는 인터뷰 가운데서 가장 섬세한 표현을 내놓았다. “즉흥연주인 재즈가 특히 그런데요. 외줄타며 중심잡기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간순간 집중하는 거죠. 바이크도 마찬가지예요. 한 순간 중심을 잃으면 넘어지죠. 재즈연주도 집중력을 잃으면 연주 흐름을 잃어요. 자신의 능력 범위에서 중심을 이어가는 것, 그걸 감수하는 재미가 있어요.” 어렸을 때 짧지 않은 시간 피아노를 배웠지만 별다른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기자는 인정받는 피아니스트가 된 그에게서 범인(凡人)과는 다른 열정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런 열정이 모터바이크 타기라는 힘차고 스릴있는 취미를 갖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심증을 확인해 줄거란 생각도 들었다. “대학 졸업 후에야 다시 전공을 바꿔서 음악을 했는데 별다른 계기가 있었나요?” 한충완씨는 서울대에서 농화학을 전공했으나 졸업후 미국 버클리음대(학사)와 뉴잉글랜드음악학교(석사)에서 공부한 이력을 살펴 던진 질문이었다. “사회생활을 해야 할 때가 되고 보니 음악밖에 할 게 없었어요. 학교에서 수학, 화학 등을 배웠지만 정작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없더라구요. 그나마 조금 알고 있던 게 음악이었고요. 하고싶었다기보다 직업으로서 음악을 선택한 거예요.”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이 멋없는 대답을 한 것에 대해 항의했으나 그의 덤덤한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피아노가 좋은지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 피아노를 쳤기 때문에 그냥 피아노를 하는 거니까요. 피아노는 굉장히 차가운 악기예요. 현악기나 관악기는 음의 높낮이, 떨림, 톤 등으로 감정을 넣을 수 있지만 피아노는 누가 치나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그의 대답은 시종일관 건조했다. 차갑기도 한 그의 대답에서는 그러나 자신감이 묻어났다. 비교우위의 자신감이 아닌 절대적인 자신감이었다. 자기 일의 허점을 까발리고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건 그 이유 이외의 다른 것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았다. “모터바이크는 바람을 직접 맞는 재미가 있어요. 밀폐된 차를 타는 것과는 크게 다르죠.” 크고 힘있어 보이는 두 바퀴와 근육질같은 차체를 갖고 순식간에 가속도를 붙이며 나아가는 모터바이크처럼 그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섬세한 피아노 연주와 거친 모터바이크의 불화 사이에 놓여있는 그의 삶이 참 다이내믹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