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40대를 눈앞에 둔 지금 깨달은 것이 있다. 충분히 오래 기다리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결국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1997년 페라리가 F1 카의 반자동 패들 시프트 변속기를 양산차에 이식했을 때가 떠오른다. 그 차는 F355 F1이었다.

 

서킷 위 기술을 도로로

 

 

이제 페라리는 플래그십 V12 모델 12칠린드리 마누알레(12Cilindri Manuale)를 통해 마라넬로에 수동변속기를 다시 가져온다. 페라리 스스로 "마누알레-바이-와이어"라 부르는 이 시스템은 전통 방식과는 다르다. 물리적인 스프링 클러치 페달과 페라리 특유의 6단 게이트 시프트 레버가 있지만, 이 두 부품은 변속기와 기계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고 전자적으로만 연결된다. 사실상 지금까지 있어온 패들 시프터와 같은 방식이지만, 패들 대신 시프트 레버와 클러치가 자리를 대신하는 셈이다.

 

 

흥미롭게도 355가 반자동 변속기로 출시됐을 당시에는 마니아들의 반발이 크지 않았다. 당시엔 전통적인 수동변속기 옵션도 함께 제공됐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F1에서 패들 시프터가 처음 도입됐을 때는 반발이 있었다. 레이싱 레전드 앨런 매크니시는 "예전 첫 F1 테스트 때는 H패턴 8단 기어박스에 풋 클러치였다. 패들 시프터가 도입됐을 때 사람들은 이게 레이싱이 아니라며, 드라이버가 새 기어박스를 통제하지 못한다고 불평했다"고 전했다.

 

'가짜 수동'이라는 비판에 대해

 

 

루체 EV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여론은 페라리의 '가짜 수동'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EV가 페라리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은 이해할 수 있지만, 거의 1만rpm까지 돌아가는 자연흡기 V12를 얹은 프론트 엔진 페라리에서 사실상 수동에 가까운 경험을 제공한다는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완전히 새로운 전통 방식 수동변속기를 만들 수도 있었을까? 아마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 1,499대만 제작되는 이 모델을 위해 새 변속기를 개발하는 건 경제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결국 선택지는 마누알레-바이-와이어냐, 아니면 아예 없느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현대 슈퍼카의 패들 시프터에 익숙하고 이를 즐기고 있다면, 스틱 시프트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일까.

 

30년의 순환

 

30년 전 페라리는 최초로 수동변속기를 자동화해 성능적 우위를 확보했다. 최첨단 기술을 도입하고, 도로용 차와 레이싱카의 경험을 일치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반대로, 모든 신형 슈퍼카가 패들 시프터를 기본으로 갖춘 시대에 페라리는 운전의 즐거움을 위해 오히려 약간의 성능을 포기하고 있다. 수동 버전이 서킷 랩타임에서 미세하게 느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향수를 원하는 고객들을 위해 이 선택을 내렸다. 페라리는 당분간 이 시스템을 다른 모델에는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짜 수동'이라 부르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니까. 하지만 선택지가 이것 아니면 아예 없는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12칠린드리 마누알레의 1,499대 중 한 명이 되지 못하더라도, 이 시도 자체는 박수받을 만하다.

 

출처 : https://www.thedrive.com/news/30-years-ago-ferrari-automated-the-manual-transmision-now-its-manualized-the-automa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