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라오스의 내전중 가장 뜨겁고 분주했던 활주로.
당시 5분당 1대 꼴로 폭격기가 이곳에서 떴다고 한다.
목표지점은 다른 나라도 아닌 자국인 라오스지역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인근의 폰사반지역은 포탄의 상흔으로 인해 생겨난 구덩이들을
현재까지도 도처에서 쉽게 볼수 있다.
미국의 간섭으로 인해 당시 내전중에 무고한 시민들과 전쟁터로 내몰린 젊은이들이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희생되었다.
아직까지도 미국 정부는 당시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며 함구하는 중.
그런 연유때문일까?
이곳 롱티엥까지 일반 여행객이 찾아오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다.
정기적으로 운행되는 버스도 없을 뿐더러 도로사정이
라오스에서도 최악의 수준임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아침 일찍 출발해서 큰 트럭이나 4륜구동차를 빌려탄 끝에 간신히 갈수 있었다.
실제 육안으로 확인한 활주로는 너무 오랜 세월동안 방치 되어서인지
낙후되고 조악하기 이를데 없었다.
현재는 라오스 정부군의 작은 부대 하나가 덩그러니 있을 뿐.
보통은 인근주민들이 가끔 이용하는 통로쯤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한창 촬영을 마치고 마을을 떠나려던 그때…
두세명의 경찰이 내게 다가와 여권제시를 요구했다.
난 영어를 못알아 듣는 척하며 말도 안되는 영어 문법과 단어를 내 뱉고서야
미친놈 취급을 받음과 동시에 간신히 빠저 나올수 있었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는 히치하이킹을 하려고해도 지나가는 차 자체가 없었다.
결국 7km정도를 걷고 쌈통을 1km 남겨 놓은 지점에서 지나가는 청년의 오토바이를
히치하이킹 할 수 있었다.
쌈통에서 또다시 경찰들에게 붙잡힌 나는 롱티엥에서 이미 검문을 받았다는 설명과
내가 라오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하소연하여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삼통에서 경찰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마지막 차로 보이는
트럭을 얻어타고 차 위에서 일몰을 감상했다.
나올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던 탓에 들어갈 때보다 훨씬 힘들게 히치하이킹을 해서 탈출 할 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비로소 나다운 여행을 한것 같아서 기분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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