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경: 그대의 마음이 내 마음 같아, 흰 머리가 되도록 헤어지지 말자!
이재명의 성공에는 항상 김혜경이 함께했습니다. 한데 수많은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은 조금 성과가 나자 창피함을 모르고 아내와 자식을 버리며, 시대에 발맞춘다면서 당당히 나섭니다.
1990년, 김혜경은 이재명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평범한 외모에는 마음이 끌리지 않았지만, 손으로 쓴 일기장 한 권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때만 해도 가난한 변호사였던 이재명은 주머니에 돈이 별로 없었지만, 그녀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을 빼곡히 종이에 적어내려 갔고, 그 행간마다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훗날 이재명이 구류에 처해졌을 때, 김혜경은 바삐 돌아다니며 밥을 챙겨주고 보석을 신청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믿는다"는 한마디에 결혼식은 1991년으로 앞당겨졌습니다. 결혼식 비용은 겨우 몇만 원, 손님보다 반찬이 더 많았지만, 두 사람은 유난히 크게 웃었습니다. 마치 평생 가장 소중한 보물을 손에 넣은 듯이요.
결혼 후에도 살림살이는 여전히 빠듯했습니다. 김혜경은 세 개의 일을 병행하며 집안을 알뜰히 꾸려 나갔고, 이재명이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권리 소송을 돕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시의원을 거쳐 시장이 되고,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도전하기까지, 이재명은 정치 무대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김혜경은 항상 10미터 뒤에서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앞에 나서지도 않고, 폐 끼치지도 않으며, 그가 필요로 할 때만 물을 건네주고 외투를 벗겨주는, 공기처럼 투명하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습니다. 2018년 이재명이 과로로 쓰러져 입원했을 때, 그녀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호박죽을 쑤었고, 석 달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그녀의 세심한 보살핌이 그의 빠른 회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성남의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꺼진 소파도 오랫동안 바꾸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앉아 있어야 마음도 편하다"고 말합니다. 이재명은 공개 연설에서 항상 월급 카드를 꺼내 보이며 말합니다. "돈은 그녀에게 있고, 나는 그녀에게 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달콤한 말이 아니라, 삶을 '공동체'로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이 앞에서 싸우면, 내가 뒤에서 지키고, 모든 헌신은 일상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