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 직후 조선인 노동자 수천명을 태운 채 

폭침된 일본군 수송선 우키시마호를 5년이 지난 

1950년 인양하는 과정에 수습된 희생자의 유골을 

기록한 사진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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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리랜서 언론인 후세 유진 기자는 

20일 도쿄에서 한겨레와 만나

 “일본 후생노동성에 정보 공개 청구로 확보한 

공문서에 우키시마호가 인양됐던 1950년 당시 

뭍으로 올라온 희생자 유골을 찍은 사진이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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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확보된 우키시마호 희생자 유해 사진은 

모두 17장이다. 1950년 3월31일 ‘마이즈루 복원

(병역에서 해제된 군인) 및 잔무 처리 부장’ 명의로 

작성된 ‘우키시마호 사망자 유해 처리에 관한 보고’ 

문서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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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사진을 보면, 인양 현장에 사람 것이 분명한 

두개골 등이 수십개씩 놓여 있다. 일부는 신체 뼈가 

완전한 형태로 보존돼 사람 모양으로 배치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신원 파악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은 듯 여러 유골이 대형 나무상자에 뒤섞이듯 

담긴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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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 참사는 1945년 8월24일 조선인 

수천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가던 배가 돌연 진로를 

바꾼 뒤, 교토 마이즈루 앞바다에서 폭침을 일으킨 

사건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승선자 3735명 중 조선인 524명, 

일본인 승무원 2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부 증언을 바탕으로 조선인 사망자가 

수천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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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우키시마호 참사 뒤, 1950년과 1954년 

각각 인양 작업을 벌였는데 이번 사진은 1차 인양 

작업 당시인 1950년 3∼4월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이 포함된 문서에는 3월24일∼4월6일 다섯 차례에 

걸친 촬영 일자와 ‘양수(수습)된 유해들’, ‘작업 현장’ 

등의 제목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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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부 유골은 신원이 확인된 듯 사진 옆에 희생자 

것으로 추정되는 ‘○○씨’라는 호칭이 적혔지만, 

이름 부분은 지워진 채 사진이 공개됐다. 

 

또 이 문서에는 오사카마이니치 신문이 당시 상황을 

“일본 해군 공창으로 징용됐던 한국인 작업자와 

가족 등 수천명이 부산으로 귀국하던 도중 

촉뢰(기뢰와 부딪힘)해 700여명이 구조됐으나 

본체가 두동강난 채 침몰했다가 이번 인양에서 

주검 58구가 수습됐다”(1950년 4월 13일치)고 

기록한 기사도 첨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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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일본인 희생자를 25명이라고 주장하는 

만큼, 유골 상당수는 조선인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유골은 지금도 일본 도쿄의 절 유텐지에 

여러 사람의 뼈가 뒤섞인 ‘혼골’ 형태로 안치된 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희생자 대부분이 일본 군수공장에서

강제징용으로 고초를 겪으신 분들이시라니.

이제라도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