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에 앞서,

미리 양해 구합니다.

누군가에겐 뻘글, 일기장 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1인칭 으로 작성 하겠읍니다.

(자유게시판에 활동 안하지만.... 신유게와 동시에 ㅎㅎ)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마음속에 굳게 닫혀있던 작은 서랍이 봉인해제....



1. 영등포 

지인들과 모임자리였다.

그들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있었는데,

지인과 함께 온 일행였다.

첫눈에 반한다는걸 그때 처음 알게됬다.

그녀에게 호감이 갔고 연락처를 용기내서 물었다.

다행이 만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뒤로 하며,

그날 첫만남은 그렇게 내게 큰 호감을 안겨주었다.


나는 무적권 직진였다!

근데 나는 전술이 없었다.

그냥 소소한 문자, 전화 통화...

그 이상 진도는 없었다!.....



2. 겨울바다

객지 생활하던 나는 명절 때 마다 귀향.

그러던 어느 때 설 명절이 다가 옴.

뽀쉬는 겨울 바다가 보고싶다! 며 내 고향 바다에

함께 가면 안되냐기에

어려운 부탁도 아니라 그렇게 그녀를 바닷가에 위치한

숙소를 얻어주고 나는 부모님 댁으로....

흔히들 명절 때 고향친구들과 만나 여흥을 즐기는데,

그때는 여자친구도 아니였던 뽀쉬가 신경쓰였다.

혼밥 할텐데..... 함께 먹을까?.....

그렇게

낮엔 숙소 근처에 찾아가

함께 바다도 보고 식사도 하고...

어떤 날은 술한잔 함께 하고 싶었으나,

음주운전!

연인도 아닌데 숙소를 함께 쓰기엔 무리!

(그때는 대리기사 라는게 없었다.)


뽀쉬와 서울<->고향 오가는 동안에

나는 그녀가 호감이 설레임으로 바뀜!



3. 온라인 게임

세기가 바뀌던 2000년대.

그녀의 포트리스 게임의 닉네임은 "이뽀쉬~☆" 

게임에 관심없던 나에게 포트리스를 알려주며

온라인으로 소소한 소통을 나누고,

오프라인으로 자주 만나면서 우린 연인으로 발전.



4. 부천 종합경기장

주말만 되면 인라인스케이트 타러 가자며

부천 종합경기장을 자주 찾았고,

그러다 월드컵 8강(대 스페인 전) 경기를

뽀쉬와 함께

부천 종합경기장에서 

운종장 잔디에 수많은 인파와 함께 어울려 응원.

챙겨간 키친과 소+맥...

6월임에도 햇볓이 뜨겁다 못해 따가웠을 정도.

옆에 외노자 몇몇과 우리가 챙겨간 키친 + 소맥 을

함께 나누며 추억 만들기의 나날은 계속.....



5. 서울 강서구 등촌동

그녀의 직장은 영등포구 당산동.

어느 날엔가

회식 마쳤다고 데리러 와달라던 뽀쉬.

뽀쉬가 사는 집으로 데려다주는 차안에서 하는말....

"택시를 타고 등촌동 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도착해보면 송파 둔촌동! 였을 때가 종종 있었다" 며

까르르르 수줍게 웃던 뽀쉬!



6. 우렁각시

이따금씩 감동을 주던 뽀쉬.

뽀쉬는 자취방 열쇠가 필요 하다며 뜬금없이 말했고,

나는 서슴없이 건네준 자취방 열쇠.

회사 일 마치고 집에 가니

아이들 소꿉장난 하듯 귀엽게 차려논 저녁밥상...

어떤 때는 찌개 하나.

또 어떤 때는 자기 집에서 싸온 반찬들....

그녀는 그럴 때 마다,

밥상 위에 작은 손쪽지로 다정함을 표 해놓던 뽀쉬.



7. 면접

그녀의 어머님이 나를 궁금해 하셨다.

내 딸아이가 만나는 남자가 어떤 녀석인지 한번 보고 싶다며

그녀의 어머니께서 말씀 하셨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집이 아닌 외부에 식사자리를 만드셨다며,

뽀쉬를 통해 나를 초대 하셨고,

그렇게 그녀의 어머님을 처음 뵘.

애둘러 말씀 안하셨던 그녀의 어머님!

이런 저런 이야기 마치고,

"회사에서 연봉은 얼마 받아요?" 라고 내게 물으셨고,

이에 대답을 드렸더니 

어머님은 살짝 웃으시며 "다음에는 집으로 한번 와요" 라고

말씀 하시길래 난 속으로 "통과" 인가보다!

그날 매우 기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뽀쉬가 그렇게 더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격하게 끌어안아줌)



8. 해돋이

그녀의 어머님을 뵌 후로 나는 더 적극적으로 

그녀를 대했던거 같다.

더 자주, 더 많이, 더 깊은 사랑으로 발전시키자 애를 썼다.

물론 그녀의 뜻도 나와 다름이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를 모시고 관악산 해돋이를 청했다.

그 때가 아마 2003년.

새벽 어두운 산행을 마치고

너무 서두른 탓에 산 정상에서 우리 셋은 추위에 덜덜 떨며

시간 체크만 했다.

드디어 떠오른 해!

해를 우린 그 일출 모습을 함께 보며

나는 그녀에게 우리 부모님께 인사를 청했고,

그녀 어머님도 응원해 주셨다.

해돋이를 마치고

그녀의 어머님께서 가끔 가시는 순댓국집이 있다 하셨고,

우린 순댓국으로 추위를 녹였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어머니의 단골집이라 그런지,

순댓국이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



9. 가족

그녀의 친인척들 중에 태백에서 혼인을 하신다 하시며

나에게 함께 가자고 그녀의 어머님의 소환장이 있었고,

나는 응당 그 뜻을 따랐다.

결혼식장에 도착하여 여러 친지분들께 인사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런 내 모습을 본 뽀쉬는 더욱더 나를 챙기기 바빳던거 같다.

그렇게 나는 뽀쉬 가족 사진 촬영에 나도 박제가 됬다!



10. 미래

내 부모님께도 그녀를 인사 시켜드린 뒤,

우린 함께 생각하고, 설계하며 미래에 대한 틀을 다지기 바빴다.

그러다 여느 때 였으면 웃고 넘어갈 소소한 일도

우린 너무 신경이 날카로웠던지 잦은 다툼이 발생.

그녀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이건 기싸움" 이라 생각한 것 같다!

사소한 다툼이 큰 말다툼의 연속.....

함께 머리 맞대고 미래를 계획해야 하는 시간도 부족한데,

우린 잦은 다툼으로 점점 소원해져갔다....

전화 연락도 며칠은 의무적으로 하다가,

점점 연락함에 있어 나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게 일주일, 한달 두달....



11. 휴대전화 번호

몇달이 지났을 때.

늦은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다시는 전화 안하려했는데, 술먹어서 그런지 오빠가 생각났어...

그리고 오빠 연락처도 지웠었는데..... 몸이 기억을 하나봐...." 라며

그녀는 본인 잘못이 없음에도 자기가 잘못했다며 내 자취방으로

온다고 하길래, 난 만류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왜 만류 했는지 참 이해가 안감)


그녀는 정말로 찾아왔고,

나는 그녀를 집근처 놀이터로 데리고 가서 

그녀에게 냉철하게 말하며 그만 하자고 말을건네고 그녀를 버스에 태워 보냈다.


위에 그녀의 전화 멘트....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바보녀석....그때 잡았어야.... 멍충한 녀석,....)


그리고

011, 016, 019 등등의 휴대전화 앞자리가

얼마 지나지 않아 010으로 통합....

중간 번호 3자리도 4자리로 바뀌고.....


그렇게 난 011-XXX-XXXX 에서

010-5XXX-XXXX 으로 앞번호 통합과 함께 

중간 번호 앞자리 "5"를 부여 밭아 지금도 쓰고 있다.



12. 미련

미련했다!

그때 나는 너무 미련했다!

그녀를 그렇게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했으면서.....

그때 나는 왜 미련스럽게 고집을 피웠으며,

지금 이렇게 미련을 남기는 글을 쓰는지 참 미련한 나다!

미련댕이 녀석!



13. 내 마음속 서랍장

연인 때도 꿈에 나오지 않던 뽀쉬가

며칠전 내 꿈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그시절

그모습 

그얼굴 

그대로......

꿈에서라도 참 반가웠다.

꿈이 너무 생생했기에.....


그녀를 떠올리며,

글 한글자 한글자 적으면서 

부끄럽고 미련스러웠던 나의 지난 연인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떠오르는 것을 적다보니 내용이 길다....길어!

그리고 난!

이렇게 길게 씌여질 거라 예상 못했다.

(말이 참 많다....)





- 마치며 -

이뽀쉬!

잘 살고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기적으로 생각들지만,

네가 잘 살고있어야 내 소중했던 추억도 아픔이 없기에.....


미안했다! 뽀쉬야!

사랑했었다! 뽀쉬야!

그리고

내 꿈에 나타나서 고맙고 감사해 뽀쉬야!

잘지내라! 뽀쉬야!









- 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