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 정리하고 다시 올립니다
2026년, 올해 제 나이는 43세입니다.
여동생의 아이, 즉 제 조카를 키운 지 20년, 이제 21년 차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삼촌을 버리고 인천으로 가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여동생이 22년 전에 한 번 임신을 했었습니다. 갑자기 저를 부르더니 “오빠, 나 애기 가졌어. 엄마한테 비밀로 해줘”라고 하더군요. 그때 남편 될 사람은 동거 전이었고, 겨우 45만 원만 보내줬다고 했습니다.
보호자가 있어야 낙태가 가능하다며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결국 아이를 지웠고, 회복실에서 쉬다가 “오빠, 나 슈크림 먹고 싶어”라고 해서 사다 주었습니다.
6개월인가 1년쯤 지났을까요. 이번에는 저에게 말하지 않고 어머니에게 말하더군요.
“엄마, 나 임신했어. 이번에는 이 사람이랑 결혼도 하고 애 낳고 잘 살아볼게.”
아이를 낳고 처음에는 3개월 정도 잘 키우는 듯했는데, 남편이 군대를 간다고 했습니다. 여동생은 아이를 데리고 시어머니가 있는 충주로 갔습니다.
몇 달이 지나 잘 사는 줄 알았고, 저도 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카가 감기, 정확히는 폐렴에 걸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병원에 데려갈 생각은 하지 않고 약국에서 약만 사다 먹였다고 합니다. 계속 토를 했고, 여동생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돈을 아끼는 분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친정어머니께서 차를 끌고 충주로 가서 평택의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조카는 폐렴으로 죽을 뻔했습니다. 폐가 하얗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얼마 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와서 “고생했다”며 5만 원을 주고 갔습니다. 보험도 가입되어 있지 않아 병원비는 어머니와 제가 대신 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애기랑 며느리가 여기 있으면 이쪽에서 다 부담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정말 말이 안 나왔습니다.
치료 후 몇 달이 지나고 남편이 제대했지만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계속 어머니와 제가 기저귀, 분유, 병원비, 어린이집 비용까지 모두 부담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어머니에게 차비를 받아 쓴다는 얘기를 듣고 “그게 남편이 맞냐”며 따귀를 때린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못 차리고 게임에 빠져 회사도 자주 빠지다가 결국 해고되었습니다. 결국 갈등 끝에 이혼했습니다.
이때부터 진짜 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혼하면서 “조카 못 키우겠으니 고아원 보내든지 알아서 하라”며 떠났습니다. 여동생도 힘들어서 못 키우겠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어머니와 제가 다 키웠는데, 무엇이 힘들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는 이성을 잃었고, 남편을 거의 반죽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어머니께서 울면서 “중학생까지만 키우자”고 설득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하셨고, 저도 직장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동생은 아이를 자주 집에 두고 나가버렸습니다. 결국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시간 맞는 용역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집 등하원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돌보는 건 대부분 제 몫이었습니다. 기저귀 갈고, 분유 먹이고, 병원 데리고 다니고…
여동생은 인맥 쌓느라 바빴습니다. 남자친구도 수백 번은 바뀐 것 같습니다.
또 한 번 큰 사고도 있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차를 사주겠다며 아버지 명의로 할부를 진행했고, 몇 달 타다가 사고를 냈습니다. 이후 헤어지면서 할부금을 못 낸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 빚을 해결하려고 제 명의 아파트를 전세 놓고, 나중에는 팔아서 빚을 갚았습니다. 전세금 5천만 원을 돌려주고 남은 돈으로 세금과 빚을 정리했습니다. 그 아파트는 제가 20살 때 아버지께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후 월세 생활을 시작했고, 10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여동생은 미용 자격증을 따겠다며 돈을 빌려 학원을 다녔지만, 결국 남자를 만나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빚이 생기면 또 제가 대신 갚았습니다.
이후 한부모 가정 지원으로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면서 잠시 숨통이 트였습니다.
그러다 여동생이 인천으로 가서 살다가 또 사건이 터졌습니다.
조카에게 “삼촌이 가슴 만졌냐”고 물어봤다는 겁니다. 조카가 저에게 직접 말해줬습니다. 그때도 겨우 참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조카가 성인이 되었고, 인천에서 살다가 다시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었습니다.
요즘은 10대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옵니다. 어느 날 새벽까지 안 들어와 공원에 가보니, 미성년자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화가 나서 혼냈지만 “이제 성인이니 상관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날 이후 더 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조카가 “삼촌이 성추행했다”지애미 및 미성년자10대들에게 말했다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저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다음 날 술김에 한 말이라며 없던 일로 하려 했지만, 저는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짐을 싸서 내보냈습니다.
20년을 키운 결과가 이것이었습니다.
여동생은 여전히 저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연을 끊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조카와 여동생에게 어떤 일이 생겨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고아원에 보내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20년 동안 제 인생을 희생하며 키웠고, 병원도 수십 번 데려가며 살렸는데 돌아온 건 배신이었습니다.
2026년 1월, 개인회생을 끝내고 빚도 모두 정리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 정말 책임질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절대 낳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에게 맡길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