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현 육군의 전방 GOP 사단 중 하나이자, 해방이후 부터 현재까지 전방에서 많은
업적과 대승을 거두었던 육군 제 3 보병사단 "백골부대" 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거의 타칭 육군계의 해병대 라고 불릴 정도로 자부심과 한국군 내에서도 가장 특이한
자기색깔이 강한 부대이면서 전방 GOP를 사수하고 있는 메이커사단인 동시에 한국전쟁
때 많은 업적을 세웠습니다.
그 만큼, 훈련강도 또한 보병사단+전방+GOP 철책부대 라는 트리플크라운 덕분에
전생에 지은 죄가 많은 사람이 간다던가 하는 얘기도 있고 거의 유일무이하게 육군사단
들 중에서 백골전우회 라는 전우회 까지 있는 부대입니다.
역사
현 3사단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1년전 이었던 1947년 12월 1일 3개
연대를 모아 부산에서 제 3 조선 경비대 보병여단 을 창설하면서 시작됩니다.이후 2년뒤
1949년 5월 12일 지금의 제 3 보병사단 으로 승격되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심볼격인 백골 문양은 현 진백골연대(18연대) 에 자원입대한 서북청년단원 들이 중심으로
탄생했는데, 죽어서도 백골이 되어 고향땅을 지키겠다는 의지로 자신의 철모 좌우에 백골
문양을 세긴 것이 그 시초입니다.
따라서 부대시초나 성향부터 매우 반공적인 성향이 강하고 북한에 대한 무한한 증오심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리고 6.25 전쟁 기간동안 국군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것으로
유명한데, 사전에 의하면 "1950년 10월 1일 05시 3사단 예하 23연대 3대대 11중대 3소대 2번
보측병이 국군 최초 38선 돌파" 라고 합니다.이 것을 가지고 수기사와 누가 먼저 입성했
느냐에 대한 라이벌관계가 있었는데, 흥남철수 이후 연대끼리 예속이 맞바꿔지면서 생긴 문
제로 사실 어느 소속이 최초냐고 하면 3사단이 최초입니다.
사단 예하 구성부대들에도 업적들을 기리고 상징하기 위해 3.7 완전작전 포병대대(71포병대대)
라던가 3.8선 최초돌파 맹호연대(23보병연대) 와 그 예하에 있는 3.8선 최선봉 돌파대대 (3대대)
그리고 최북단 혜산진 최초입성 연대 (22보병연대) 등으로 부릅니다.
북한이 가장 무서워하는 부대이다?
맞습니다
우선 부대분위기나 역사부터가 북한을 완전히 부숴버리겠다는 의지로 창설되었고
실제로도 왠만한 타부대 정훈병들도 울고갈만한 상징물을 놓거나 플랜카드를 걸어놓습니다.
살아도 백골 죽어도 백골 필사즉생 골육지정! 백골 백골 화이팅!
이게 정식구호이고 몇개 더있는데,
김정은은 미친개! 몽둥이가 약 약 약 !
북괴군의 가슴팍에 총칼(포병부대는 포탄)을 박자 박자 박자 !
입니다.
실제로도 북한이 이걸 의식했는지 걸고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북한이 3사단을 이렇게 무서워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3.7 완전작전 이라는
사건 때문이었는데,
1973년 2월 27일 표지판 보수작업을 위해 사전통보를 하고 0654 표지판을
보수하러 3사단 장병들이 북한측이 군사분계선 바로 위에 설치한 599 GP 로 인해
작업에 문제를 겪게 됩니다.
또한 북한측은 계속해서 표지판 보수작업을 방해하면서 약 20회가량 국군
장병들을 향해 육성으로 비난하며 상습적으로 아군구역에 침입해 0654 표지판을 훼손
했습니다.결국에는 당시 사단장이었던 박정인 장군 은 상황을 대비해 작업을 보류하게
하였으나, 3월 5일 군단장이 직접 해당지역을 방문하면서 3월 7일 예정대로 보수
작업을 시행하게 됩니다.
사건은 여기서 부터 였는데, 3월 7일 표지판 보수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던 장병들에게
북한군이 갑자기 총을 난사하면서 도발해왔고, 이로 인해 아군측 장교 1명과 부사관 1명이
중상을 입게 됩니다.박정인 장군은 바로 즉각대응 태세를 갖추게 하고 북한측에
방송으로 "계속해서 사격이 있을 경우 너희들에게 중대한 책임이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지만 당연히 북한은 그 성격 남 못준다고 간단히 무시 해버리고 아군측을
향한 사격도발을 지속하게되었고...
그렇게 해서 박정인 장군은 즉각 관측병과 관측기를 띄워 599GP 의 동향을 살핀뒤
포병대에 연락해 적의 도발원점을 향해 105mm 와 155mm 포병사격을 지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해당 GP를 향해 백린 연막탄 을 사용해 무차별 대응포격을 하면서 그 중 한발이
GP 막사에 그대로 명중한뒤에 이어 적이 심어놓았던 지뢰등 까지 연쇄반응을 일으켜 폭
발해 그 한발로 북한군 장병 36명 을 저승길로 보내버립니다.
이후 북한군은 전방 사단과 후방 사단이 통째로 교체되고 지휘관들은 대거 물갈이 되면서
백골부대 주둔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3개 사단을 추가배치할 정도로 난리가 났습니다.
물론 그 3개사단의 현 지휘관들에 관해서는 백골부대가 주적으로 지정해놓아서 북괴군
영정사진을 만들어 본부에 하나씩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물론 북한과의 교전은 이번이 끝이 아닌데,
5.22 완전작전 이라는 사건에 대해 설명해 드리자면, 1992년 5월 22일 은하계곡 을
통해 보복의 일환으로 아군 군복 차림을 한 북한군 무장공비 3명이 침투를 하자,
아군 사상없이 3명을 그대로 일소해 사살해버렸습니다.
과정은 정찰국에서 전문으로 침투해 교란및 파괴 암살 작전을 벌이는 무장공비 3명으로
인해 비상사태가 걸리고 수색대가 투입되었는데, 아군의 13 중대장 김승겸 대위 와 통신병
병장(특진) 이 피해 하나 없이 일소해 2명을 사살해 버리면서 남은 공비 1명은 당연히
충격에 빠졌고... 5월 말까지 대치상태를 하다 지친 아군은 결국 도망갔을거라 파악하고
수색을 중단하려 했는데...
16 중대장과 하경호 원사가 잡기 전까지는 철수 못한다며 적이 도망가기를 기다리다
16시경 은하계곡을 도주로로 다시 월북하려는 남은 공비 1명을 즉각 사살해버렸습니다.
또 한개 더 있는데,
바로 7.16 완전작전 입니다.
1997년 7월 16일 오전 10시 50분 경 철원 GP에서 MDL(군사분계선) 을 넘어 남하하는
북한군 14명이 국군을 향해 사격도발을 감행하자 이에 대항해 김인하/김호춘 일병
이 위험을 무릅쓰고 벙커에서 나와 57mm 무반동총과 M2 중기관총을 꺼내 응사하며
포격으로 끊어진 통신선로 까지 복구해가며 23분간 교전을 벌였습니다.
북한의 도발원점은 561GP 였는데, 이때 북한군 3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어
급하게 해당 GP로 구급차가 출동했다고 합니다.그런데 놀라운건 아군피해는 벙커에 포격
손상을 입은 것 외에는 없었다는 것이랑 교전을 했던 부대가 위 3.7 완전작전때와
같은 부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 사단은 이후 대간첩/침투작전 대응 우수부대 로 꼽히게 되어 현재까지 북한군이
무서워하게 되었습니다.실제로도 3사단과 마주보고 있는 북한군 라이벌 부대는 북한군
내에서도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이자 북한판 22사단 이라 할정도로 별들의 무덤이기 때문에
교전이 있을때 마다 부대 장교들이 줄줄이 물갈이되거나 숙청당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아 그리고, 2009년 3월 18일 일명 3.18 완전작전 도 있었는데,
월북을 시도하던 일본인을 진백골연대 소속 이등병 1명과 병장 1명이 철책에서 붙잡았
는데, 이후 3 야전사령관이 직접 포상으로 두명에게 14박 15일 포상휴가와 통신병과 상황
병,5분대기조 인원들은 6박 7일, 대대장과 중대장,소대장은 4박 5일 씩 포상휴가를
줄줄이 받았지요.
그러니까, 휴전이후 육군에서 가장 북한에게 큰 타격과 저지력과 뛰어난 작전력을
보여준게 바로 3사단입니다.
그리고 상당히 우수한 사단으로 꼽히면서 이러한 업적들도 줄줄이 내고 있다보니,
출신 장교들의 진급도 무진장 빨라서 기보사단과 함께 장교가 가장 가고싶어하는 사
단중 하나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부대자체의 분위기도 그렇지만 위에 나와있듯
필사즉생(반드시 죽는다 생각하고 싸우면 산다) 와 골육지정(뼈와 살을 뭉친듯한
형제같은 전우애=백골혼) 의 정신으로 무장해 북괴군 따위 두려워 하지 않겠다는 마음
가짐도 한 몫했습니다.
그리고 해방이후 100건이 넘는 도발을 자행해온 북한인데도 97년(7.16 완전작전)
이후 부터는 2001년 철원군일대 MDL 월경 한것 딱 한차례 빼고는 바로옆 열쇠/태풍/마
스터카드가 주둔해 있는 연천군일대에서 기관총 도발이나 현판 떼가면서 깔짝깔짝 대지
3사단이 주둔해 있는 철원 일대를 직접적으로 건든적이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파주 MDL 기관총 난사 (01/11.27)
연천 DMZ 기관총 난사 (03/7.17)
연천 GOP 철책 2곳 절단도발 (04/10.26)
경기 북부일대 GPS 신호 교란 (12/4.5)
파주 무인기 추락사건 (14/3.24)
파주 귀순 현판 탈취/훼손 사건 (14/6.19)
연천 대북전단 격파 사격 (14/10.10)
파주 북한군 보병 10명 군사분계선 침범 (15/7.11)
연천 서부전선 포격사건 (15/8.20)
3사단 주둔지 바로 옆동네인 파주/연천 일대에서 90년대 이후 북한이 이 짓거리들을
해왔는데 철원 일대에서 도발한게 단 한차례도 없다는건 우연이 아닙니다. 물론 그 3사단
과 주둔지를 거의 함께하고 있는 부대는 6.25 전쟁때 북한으로 부터 가장많은 업적
(최다전투 154회/적 92669명 사살/단일작전 무패)을 세운 6사단 청성(이스라엘 부대)
와 그 둘 아래에 있는것은 동해안전선에서 북한군의 허리를 잘라버려 60일간 1개 군단
을 혼자 궤멸시킨 8사단 (오뚝이) 도 있습니다.
철원쪽과 5군단은 그냥... 북한군에겐 지옥이라 보면 됩니다.
그 와중에 열쇠랑 태풍은....
부대 분위기
일단 해골을 좋아해서 신교대에서 부터 줄기차게 볼 수 있습니다.
왠만한 곳에는 다 해골을 넣기도하고, 2014~15년 기점으로 해서 부대의 시설이 외관
은 그대로 두면서 내부를 리모델링해 전체적인 생활처우는 306 보충대 있던 시절보다는
훨씬 나았다는 얘기도 종종 들립니다.
근데 진짜 북한군이 보면 혐짤이겠네요;;
현재까지 나와있는 얘기에 의하면, 3사단(5군단)과 대치중인 라이벌부대는 마찬가지로
북한군의 25사단(5군단) 인데,북한의 5군단은 강원도 평강군에 본부를 두고 있고 이 중
25사단이 직접적으로 3사단과 대치하는 구도일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위에서도 말했지만, 백골부대가 걸어놓은 북한군 지휘관 영정사진 중 하나가
이 5군단 군단장과 25사단 사단장이라 합니다.
음... 그냥 구역내로 치면 3사단이 북한군과 직접 대치하는 사단은 3~4개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군이 1999년 이후 육군 전체를 개편해 재래식전력으로 최대한
버텨보겠다고 휴전선 인근 100km 내에 총 병력의 70% (74만명 추정) 를 배치했
기 때문입니다.
그래봤자 북한군의 현실을 보면 3사단 포병연대로도 충분히 1개 사단의 발을 묶고
피해를 입히는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백골부대는 북괴의 도발과 위협에 대해 안전하게 철원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