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읽고나서 구석에 던져두었던 먼지투성이 채식주의자를 쌓아올린 책무더기 속에서 어렵사리 찾아냈다. 읽으면서 줄거리가 연결되지 않고 읽고나서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밤새워 완독했지만, 몇년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요령부득이다. 비디오아티스트인 형부가 이혼한 처제의 몸에 꽃을 그리고 비디오작품을 찍으면서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는 설정은 서사구조를 실종시키는 블랙홀일 뿐이다. ‘앎에 대한 욕망은 필연적으로 음란할수밖에 없다’는 작품의 해설(2019년 11월 11일 초판 87쇄 225쪽)로도 파국에 이르는 불륜과 정신분열을 설명하지 못한다. 수동적이고 냉정하지만, 물구나무 선 나무가 되고 싶어 몸부림치는 영혜의 실체는 몽고반점이란 순수로 위장했지만, 지독하게 달아오른 흘레붙은 개(227쪽)의 동물적 욕망일 뿐이다(226쪽). 꿈에 나온 피투성이 얼굴 때문에 고기를 거부한다는 채식주의자 영혜가 진짜 생고기(형부의 거시기)를 먹고 나서야 고기를 거부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장면(143쪽)은 차라리 코미디다. 혁명은 비극으로 시작해 희극으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