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전역한 지 아주 오래되었고,
한국말을 쓸 기회가 없는 곳에 살고 있어요.
어디가서 한국말로 편하게 군생활 썰 이야기하고 싶은데,
나눌 사람이 없어요ㅠㅠㅠ
나의 카투사 썰을 올리고 싶어서 한번 기억을 더듬어서 적어봤어요. 반응이 괜찮으면 또 올릴게요!
약간 msg친 것도 있고, 이름은 가명이고, 약간의 픽션도 조금은 들어가 있으니 이해해주세요.
그리고 재미를 위해서 반말체를 사용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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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2007년 여름. 딱 울산 성남동에서 군대 가기 전에 친구들이랑 마지막으로 치맥 때리면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야, 카투사 가면 미군들이랑 친해질 수 있겠네?"
"헐, 거기 여자 군인들도 많대. 미국 여친 만들어와라 ㅋㅋ"
그때는 그냥 웃어넘겼는데, 지금 와서 보니 이거 실화냐? 싶다.
논산에서 6주간 신병훈련 수료하고, 미군부대로 가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확 밀려오는 찐 미국 느낌. 들리는 건 전부 영어고, 생김새부터 말투까지 다 다르다. 훈련소 때까지만 해도 그냥 군생활이겠거니 했는데, 와... 이건 그냥 미국 한복판에 던져진 느낌이었다.
"Alright, listen up, KATUSAs! Line up here!"
미군하사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치는데, 순간 반사적으로 자세부터 고쳐 잡았다. 옆에 있는 카투사들도 나처럼 좀 긴장한 눈치. 솔직히 영어 좀 한다고 자부했는데, 막상 이렇게 들어보니...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옴.
며칠 동안 정신없이 돌아가는 훈련과 적응 기간. 미군 애들은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한국군처럼 무조건 위아래 깔리는 문화가 아니라, 다들 자기 할 말 다 하고, 장난도 잘 치고. 근데 난 아직 좀 낯설어서 말 걸기도 어렵고, 걍 조용히 내 할 일만 했다.
그러다가 그녀를 만났다.
그날, 보급 창고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군용 MRE(전투식량) 박스 나르면서 땀 좀 뺐다. 그러던 중, 누가 날 불렀다.
"Hey! Can you pass me that clipboard?"
어라? 여자 목소리?
고개를 들었는데, 와... 진짜 눈에 띄는 사람이 서 있었다. 금발, 파란 눈, 군복도 딱 맞게 입고 뭔가 강한 느낌인데, 웃으면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이름표 보니까 ‘Anderson’.
"Uh… clipboard?"
머리가 순간 하얘지면서 걍 따라 말해버림.
"Yeah, that one. Thanks!"
급하게 클립보드 건네주고 보니, 표정이 되게 친근했다.
"You’re one of the new KATUSAs, right?"
"Uh... yeah. Just got here."
영어 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화하니까 입이 안 떨어짐. 이럴 줄 알았으면 미드 좀 더 보고, 스피킹 연습 좀 하고 올 걸.
"Cool. I’m Specialist Lauren Anderson. Supply unit. If you ever need anything, just ask."
말투가 엄청 자연스럽고, 뭐랄까... 걍 친절한데 쿨한 느낌? 근데 나는 너무 긴장해서 그냥 "네...!" 하고 넘겨버림.
그녀는 다시 자기 할 일 하러 갔고, 난 멍하니 몇 초 동안 서 있었다.
와... 진짜 미군 여자랑 말해버렸다.
그때는 몰랐다.
이게 내 인생을 바꿀 첫 만남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