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제조업을 말아먹고 빗쟁이들에게 시달려

차도팔고해 차를쓸수있는  또 해본적 있던 택시쯩도

있고해  교대없는 1차제로 총알을 뛰고 가끔은

기술 있는 직물공장 기계수리,신조직 패턴등을

시직하는 알바를 가끔씩 비번날하고 또 기존알던

나이트와 룸싸롱서 장거리 대리운전 서울등

돈 되는 코스만 어쩌다 연락되면 하다가

 

거제서 사고치고 온천장으로 도망온 선배님의

조언으로 거제로 넘어왔지요 부산이랑 다르게

조선경기가 좋아서 그리고 거가대교가 없으니

아주 불친절하고 물가는 넘사벽이었던 거제도

첨혼자 와 빌빌하다 여기저기 버스타고 온천지

다 돌아다녀 봤습니다 거제도선 택시 타기가

참 힘든시기였고 합승도 예사롭게 했고

전국서 택시가 돈벌이기 젤 되고 프리미엄이

엄청났었지요 오라한 선배님은 감감 무소식처럼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중학교 다녀서 온천장집서 와잎이

케어하고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일단 기술이 전혀없고 노동일은 잘몰라서

일당이 세다는 파워공을 취업하려니 이것도

아름아름이라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쉽게 취직할수있는 족장공을 했지요

원체 땀이 많은 체질이라 또 안경을 쓰니

안경쓰고 그 위에 수경같은 고글을 덮어쓰니

도통뿌연 서리가 껴 앞이 안 보였지요

20240225_121221.jpg

 

노동의 강도 빡셌지요 그러나 체력과 악으로 깡

하난 타고났기에  2주하니 15키로가 빠져 슬림

해지고 일도 손에익고 용어도 알아들어지고

(전국서 모인 8도 사투리등 서울분이 젤 많고)

다 실패를하고 재기를위해 모인 분들이라

의기투합은 잘 되었지만 노동강도와 내가 낸데

하던 욱이 있던 분들은 중간 말없이 떠나더라구요

 

그러던중 와잎도 내려와 작은집서정착 와잎도

근처 알바를 하고 살인적인 물가의 거제서

어느날 고현시장서 콩나물 3천원 어치를 울부부가

사러가니까 할머님께서 울 부부를 보고 힘든것이

표시가 나는지 젊어고생은 사서도 한다더라

콩나물 밥도해무고 국도 끼리묵고 반찬도 해묵고

그래 해라면서 내 세상에 콩나물 3천원어치가

 

배추나 큰채소 담는 큰푸른비닐에 한가득

주시고 3천원이다 하시데요

저와 와잎 세상서 그리많은 콩나물도 첨 보았고

몇날 며칠을 콩나물 잔치를 했습니다

 

 

그후

지켜보던 선배님께서 비로소 기회를 주셔서

자리잡고 다시 일어설수 있는 기회를 주셨지요

늘 콩나물만 보면 저에겐 꿈과 희망이 된 콩나물

묵고 힘을내고 내게 주어진건 바로 내가 지금하는

내일이 내게는 최상의 선택이다

그냥 시키면 시키는되로 하다보니 요령도 생기고

일을 즐기고 내가 해야만 내가족이 묵고산다

그렇게 한거 뿐입니다

 

(살면서 임금은 잘 안 떼어봐서 그고통은 모릅니다)

 

*아 족장일 잔넬해체중 면장갑+빨강반코팅+용접용

피수갑장갑 2시간 하면 안에낀 목장갑까지

너덜너덜 해져 2시간마다 전부다 교체의 노동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