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플이글 읽는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나서 눈씨울이 붉어지네요!
저희 아버지는 제가 7살땐가 중풍이와서 몸을 제대로 못움직이셨는데, 어느덧 시간이 흐르다보니 보행은 지팡이집고 걸을수 있는단계는 되셨네요.
참고로 저는 완전 늦둥이로 아버지가 저를 오십 넘어서 낳으셨네요.
어느덧 세월이 흘러 초딩 3학년 가을 운동회때 어머니는 집안 가장으로써 사시사철 일하러 다니셨고, 아마 6년동안 가을운동회에 어머니가 참석한 경우는 거의 없는거 같습니다.
저희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약 2키로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50분정도 걸리는데, 그 거리를 아버진 막둥이 달리기 보려고 분명 2시간 넘어서 걸어왔을건데, 그때는 그것도 모르고, 친구들 보기 부끄너워서, 왜 왔냐고? 얼른 집에가라고 면박 줬던 기억이 나네요...
그땐 무지 철이 없었겠죠...
그몸으로 평생을 사시다, 내가 중2때 돌아가셨는데, 보배보다가 이걸을 읽고 깊은 반성과 참회를 하게 되네요...
이제는 제가 두 딸을 키우는 아빤데, 저도 어떨땐 아버지가 그리워서 생각에 잠길때가 있습니다...
베플훈훈한 이야기지만 이건 소설같다 보통 엄마들은 자식이 가라해도 잘 안가신다
설령 가신다해도 그 부모의 둿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다시 부모를 잡는 초딩이 몇이나 있을까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다 넘어지고 둘이 부둥껴 안고 울수 있을까? 다시 돌아와 1등으로 해피엔딩 마무리..?
베플1991년 국민학교 첫 운동회.
점심시간에 엄마가 안오셨다.
일찌감치 운동회 못간다고 말씀하셨던 차였다.
어린마음에 얼마나 서러웠는지, 다른친구들의 손에 쥔 양념통닭 닭다리보다 옆에 엄마가 계신게 더 부럽고, 서러웠다.
엄마가 운동회 안왔다고 울면서 집에 왔다.
집에 와서도 서러워 한참을 울다 잠들었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 집에 오신 엄마는 씻지도 않고 잔다고 핀잔하셨다.
내가 달리기 꼴찌한 이야기를 하셨다.
어. 엄마 안왔는데?
왜 나 보고도 나한테 안오고 그냥 갔노.
밥상앞에서 서러워 또 울었다.
엄마는 밥상앞에서 운다고 혼내지도 않으시고 묵묵히 진지만 잡수셨다.
당신 진지를 다 잡수시고는 울다 그친 내 밥을 숟갈마다 정성스레 다독여 내 입에 넣어주셨다. 먹다 또 울었다. 엄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이게 내 운동회의 첫 기억이었다.
이제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되었다. 댓글을 쓰려니 서글퍼 눈물이 고이네. 그때 멀리서 아들래미 달리기 하는거라도 보시려고, 일터에서 눈총받아가며 짬내 나오셔서, 아들한테 인사도 못하고 돌아가시는 엄마는 얼마나 더 서글프셨을까.
동일 사건으로 엄마에게 3번정도 사과의 말씀을 드린 적이 있음
1996년 중학교 3학년때 갑자기 비가 내려 엄마가 우산을 들고 학교까지 버스 타고 오심
엄마와 난 20살 차이로 늘 친구들 사이에서 예쁘고 젊은 엄마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날따라 갑자기 나오신 엄마의 옷차림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엄마에게 그냥 가라고 함
(사춘기 시절이라도 나도 왜 엄마에게 가라고 했는지...참 철없었음)
그 날 엄마에게 사과했고 20대때도 사과했고 30대때도 사과했음...
그래도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음...(사실 비만 오면 가끔씩 그때 생각남ㅠ)
지금은 아들딸 낳고 사는데 엄마의 사랑을 정말 많이 받았음을 지금 더 많이 느끼고 있음
내년 입주하고 아이들이 중학생쯤되면 아파트 팔고 내 집 지어서 양가 부모님 모시고 사는 게 내 꿈임
(소설이라는 글을 보고 창피하지만 내 경험을 써 봄)
1991년 국민학교 첫 운동회.
점심시간에 엄마가 안오셨다.
일찌감치 운동회 못간다고 말씀하셨던 차였다.
어린마음에 얼마나 서러웠는지, 다른친구들의 손에 쥔 양념통닭 닭다리보다 옆에 엄마가 계신게 더 부럽고, 서러웠다.
엄마가 운동회 안왔다고 울면서 집에 왔다.
집에 와서도 서러워 한참을 울다 잠들었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 집에 오신 엄마는 씻지도 않고 잔다고 핀잔하셨다.
내가 달리기 꼴찌한 이야기를 하셨다.
어. 엄마 안왔는데?
왜 나 보고도 나한테 안오고 그냥 갔노.
밥상앞에서 서러워 또 울었다.
엄마는 밥상앞에서 운다고 혼내지도 않으시고 묵묵히 진지만 잡수셨다.
당신 진지를 다 잡수시고는 울다 그친 내 밥을 숟갈마다 정성스레 다독여 내 입에 넣어주셨다. 먹다 또 울었다. 엄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이게 내 운동회의 첫 기억이었다.
이제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되었다. 댓글을 쓰려니 서글퍼 눈물이 고이네. 그때 멀리서 아들래미 달리기 하는거라도 보시려고, 일터에서 눈총받아가며 짬내 나오셔서, 아들한테 인사도 못하고 돌아가시는 엄마는 얼마나 더 서글프셨을까.
주책이다. 이 글에 눈물이 나고...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일에 주책없이 눈물이 나네.... 그리 힘들게 자식새끼 가르쳐 그래도 이제는 먹고 살만해 효도하려나 싶었는데 그 마저도 미안하셨는지 암으로 내 나이 마흔도 되기전에 돌아가셔서 이런 생각날때마다 가슴이 미어짐... 보고싶네요. 쇳가루에
손바닥이 다 갈라진 아버지가 너무 감사하고 죄송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