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단편적인 사건에 불과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사학계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식민사관 교육을 받은 사학자를 대부로 받들고 대학강단과 주류사학계 전체를 식민주의 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지배하며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공공연하게 인정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는 국사편찬위나 동북아역사재단... 이런 단체들도 감시 대상에서 예외 일수 없습니다. 유튜브 이덕일역사TV에서 이덕일 교수님 혼자 주류 식민사학자들에 맞서 고군분투 하시는데 응원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왜곡된 역사가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져야 합니다. 그게 우리 소시민들이 할 수 있는 진짜 애국입니다.
이상해. 저렇게 철저하게 따진다? 그렇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도 좌익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판결까지 받았는데????
뭔가 이상해 그럼 박정희 동상, 기념관 싸그리 치워야지. 공산당에 가입한 게 그렇게 문제인가?(공산당에 가입해서
일본을 위해 일했나? 누구처럼 독립군 토벌을했나?)
백선엽 육군본부 정보국장의 장녀 백남희씨의 증언에 의하면 본래 남로당 가담 혐의자 4000여 명 가운데 12명이 최종 사형판결을 받았는데 그중 한 사람이 박정희였고, 12명 모두 1949년 총살당할 운명이었으나 자신의 아버지가 육군 최고 지도부에 박정희의 감형을 요청하여 박 전 대통령만 극적으로 살아남았다고 주장한다.[97] 박정희가 이때 최종 사형판결을 받았다는 백남희씨의 주장을 뒷받쳐줄 공식적 기록은 현재 발견되지 않고 있다. 1949년 당시 용산 육군본부 군사법정 문건들에 따르면 이때 <국방경비법 16조 위반>(반란기도죄) 재판을 받았던 69명 가운데 4명은 무죄판정, 나머지는 유죄 판정을 받은 뒤 대다수 감형조치를 받았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 박정희의 죄과는 구 경비법 32조 위반, 범죄사실은 '군 병력 제공죄'였고, 유일하게 1심에서 무기징역 판결을 받은 사람이었다고 1949년 4월 18일자 <고등군법회의 명령 제18호>에 적시되어 있다.[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