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고된 몸으로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지라 실시간으로 상황을 접하지는 못했고


오늘 아침에서야 보배에 또 하나의 큰 일이 생겼었다는걸 알게 됐습니다.


일단은 거두절미하고 죽지 않고 살아서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보배 형님들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구요.


너무 안타까운 내용인지라 좀 더 자세한 정황을 알고 싶어서


윤수씨와 관련 된 글들을 하나하나 읽다보니 하고 싶은 말이 생겨서 몇마디 적어보려고 합니다...



우선 저는 85년생 올해 34살 남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15년 가까운 시간을 휠체어에 앉아 생활했던 지체장애 2급의 장애인이며


스무살이 되던 해,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에서 서른을 넘기기 힘들거라는 시한부 판정도 받았었죠.


병의 특성상 내부 장기까지 강직(마비) 되는 것은 결국 시간 문제였으니까요...


정확한 병명 조차 없는 희귀 근육병 환자고,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는 병과 싸워가며 정말 많은 고생을 해왔어요.


다리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제 몸을 잠식해가는 병마와 긴 시간 치열하게 다퉈야 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상체, 얼굴 그리고 내부 장기의 기능까지 방해하는 근육 강직 탓에


대화도 어려웠고 스스로 숨을 쉬기도 힘든 지경까지 이르러서


몇분간 자가호흡을 하지 못해 얼굴이 보라색이 될 때까지 숨을 쉬지 못하다가


정말 죽을거 같을때 겨우 한 숨을 내쉴 정도로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20대 중반의 다 큰 성인이었음에도 배변 실수를 하기도 하고..


혼자 씻거나 식사를 하거나 옷을 입거나 하는 아주 기본적인 생활조차 힘들어져서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이었구요...


그런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불쾌함으로 느껴질까봐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오직 집 안에서만 생활한 적도 있었습니다.


근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단 하루도 의미없이 보낸 적이 없었어요.

 

저는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났고, 살아 있었으니까요...


남들 눈에는 그저 다 죽어가는 산송장 같았겠지만


그런 몸을 이끌고 저는 쉬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습니다.


몸이 내 맘과 같지 않으니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다녔고


키보드 하나 제대로 누르지 못하는 손으로 혹은 입에 문 젓가락으로 키보드를 쳐가며


남들보다 30배이상 느린 속도로 하루 18시간씩 타이핑을 해가며 출판사 타이핑 알바를 했었고


그렇게 하루 18시간 이상 일해가며 한달에 30~40만원을 받아도


그저 행복했었습니다.


적은 돈이었지만 직접 고생해서 번 돈으로 내가 먹고픈 간식 정도는 사먹을 수 있었고,


정말 작게나마 집안 생활비에도 도움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저희 어머니는요.


생활력 제로에 가정에 전혀 관심없는 아버지를 만나 스무살에 결혼을 하셨고,


그 해에 누나를 낳으셨고, 스물두살이란 어린 나이에 저를 낳으셨으며


능력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경제 활동을 이어오시다가


지금의 제 나이보다도 어린 32살...

 

여자로써 정말 창창 할 나이에 위자료 한푼 없이 아버지와 이혼하여


누나와 저를 부족함 없이 키워내신 정말 강한 여성이자, 위대한 어머니셨습니다.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물불 안가리고 다 하던 원더우먼이셨고


정말 악착같이 살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저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몸이 불편했던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수년간 정말 온갖 수모를 감수하며 번 돈을 제 병원비로 다 쓰는 것도 모잘라


작은 희망이라도 보이면 빚까지 내가며 저를 항상 병원에 데리고 다니셨고,


평범하게 키워야 한다는 교육 신념으로 장애인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로의 진학을 위해


학교가 바뀔 때마다 교무실 한복판에서 무릎까지 꿇어가며 사정사정하던 분이셨지요...


그렇게 어머니는 저 하나만 바라보며 정말 열심히 키워주셨는데...


본인의 꽃같은 인생은 자식들을 위해 다 희생하고 정말 고되게 살아오셨는데...


늘 우리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던 어머니였는데...


그런 어머니를 두고 저는 늘 죽을 생각 뿐이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만으로 버텨내기엔 육체적인 어려움이 선을 넘어버렸고

 

어차피 병원에서도 서른을 넘기기 힘들거라고 했는데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주면서 송장처럼 살 바에는 차라리 몇년 일찍 죽는게 정답이라는


삐뚤어진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거든요.


그런 못난 생각을 하루종일 달고 살던 불효자 아들의 손을 꽉 잡고 어머니가 하신 말씀...


"평생을 더 힘들게 살더라도 곁에만 있다면 어떤 고생을 해도 엄마는 행복해"


" ............... "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저는 생각을 180도 고쳐먹었고,


결과적으로 서른살의 시한부를 넘겨 34살이 된 지금까지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꿈...? 희망...?


그런건 상상에서나 존재하는거라고 생각했고

 

하루하루가 그저 지옥이었던 제 인생에 말도 안되는 기적이 찾아왔거든요.


25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지독히도 싫어하던 병원을 다시 찾았고


5년만에 다시 만난 주치의 선생님을 보자마자 인사도 하기 전에 내뱉은 말이


"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 살고 싶어요." 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를 담당하셨던 선생님이었기에 이미 할 수 있는건 다 해 본 상황이었지만


살려달라는 간절한 호소에 "그래.. 뭐라도 해보자..." 라고 말씀하셨고


3일 뒤, 병원에 입원하여 저와 조금이나마 비슷한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먹는

 

여러가지의 약을 하나씩 직접 먹어가며 몸에 변화를 확인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게 없었으니까요.


약물 부작용으로 인해 쇼크가 오기도 하고...

 

먹은 것도 없는데 하루종일 위액을 토해내기도 하고...


갑자기 없던 틱 장애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러면서 역시 난 안되는구나... 나에게 정말 희망따윈 없는거구나...


그냥 죽음만이 정답이구나... 라는 절망이 점점 가까워질 때쯤,


정확히 퇴원을 2일 남겨뒀던 날...


별 기대없이 먹은 약에 반응하는 몸의 변화가 느껴졌고,


놀랍게도 그 약을 먹은 뒤로 저를 괴롭히던 강직 증상들이 서서히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물리적인 수술이나 별도의 치료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기적과 같았죠...



물론 10년 이상을 걷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근육은 퇴화 될 때로 퇴화되어 있었고,


앉은 자세로 자라버린 뼈들의 기형 때문에 바로 걸을 수는 없었지만


저를 정말 지독하게 괴롭히던 강직이란 악마에게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뭐든 다 해낼 수 있을거 같은 자신감이 들었고,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습니다. 


그 후, 정말 눈물 흘려가며 고통스러운 재활에 집중했고


인적없는 새벽에 공원을 찾아 수없이 넘어지고... 또 다시 일어나 걷기를 반복...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땐 조금씩 굵어져가는 거울 속 종아리를 위안 삼아가며


상상도 하기 싫은 1년이란 시간을 견뎌낸 끝에


비로소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 다른 이상없이 잘 살고 있어요.


물론 완치가 되었거나 장애의 그늘에서 완벽히 벗어난 것은 아니에요.

 

지금도 비장애인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니고

 

타인의 눈에는 여전히 불편함을 가진 장애인으로 보이겠지만

 

그래도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현재 상태에 충분한 감사를 느끼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전 홈플러스에서 우연히 재회한 고등학교 동창이 묻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다시 걷게 되었냐고...


우리는 다 네가 죽은지 알았다고...


지금 눈 앞에서 걷고 있는 모습이 꿈만 같고 믿겨지지 않는다고...


그 친구에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머니 때문에라도 나는 살아야 했다고... 


그것만이 나를 다시 걷게 만든 유일한 이유였다고...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어려움을 가진 채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다른 이가 말하는 어려움이 자신한테 와닿지 않을 수 있고,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으며,

 

그 어떤 위로와 격려에도 세상 가장 힘든건 나라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희망 섞인 조언이 그저 희롱 혹은 조롱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기적이란 단어가 그 어떤 말보다 심한 욕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제가 그런 삶을 살아왔거든요...


근데요. 저는 이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기적? 기적이요?


그거 그리 거창하고 대단한거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놓치고 있었던 내 주변을 다시 한번 천천히 둘러보고


나한테 가장 소중한게 무엇인지 찾아서 그걸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 돼요.



윤수씨...


한낱 장애인으로 보일 수 있는 제가 이런 조언을 하는게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8년쯤 더 살아 본 사람으로써 한가지만 부탁할께요.



그냥 사세요...


그냥 다른 생각하지 말고 사세요...


당장의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 초라하게 보이지 않을까? 라는 속물같은 생각으로


좋은 직장... 폼나는 일... 근사한 자동차...


그런거 쫒으려 하지 마시구요.


남들이 우습게 생각하는 일 일지라도 당장 내가 할 수 있는게 있다면 뭐든 해가면서


그냥 살아주세요...



일면식도 없는 제가 하는 말들이 꼰대 같이 들릴 수도 있을테지만


두번 다시는 후회로 남을 행동 하지 마시고


내가 지켜내야 할 소중한 것만 바라보며 치열하게 살아주세요.


두 손 놓고 있어도 자연스레 찾아와서 인생역전 시켜주는 동화 같은 기적...?


기적은 그런게 아니에요.


소중한 사람들, 윤수씨에게 향했던 따듯한 마음들 생각하면서


더럽고.. 힘들고.. 서글퍼도 묵묵히 살아주세요.


부디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주세요.






그게 기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