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이었다.
꽃다발을 예약해 뒀다.
그런데 그날, 나는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됐다.
딸과 놀아 주다가 우연히 아내와 다른 남자가 나눈 부적절한 대화를 보게 됐다. 상대는 유부남이었다. 아이까지 있는, 주말부부로 지내는 남자였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 본 줄 알았다. 장난이겠거니 했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불륜이 들통난 뒤 아내의 모습이었다. 울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앉아서 웃고 있더라.
그남자는 다정했고 자기를 인정 해줬다고 한다.
세상 어느 남자가 유부녀를 꼬시며 다정하지 않은 사람이 있냐 물었더니 그사람은 다르다고 한다.
다정했다고. 유부남이 아니었다고. 돌싱이라고..
다른 남자의 다정함이 그렇게 좋았을까.
아내는 평소 호스트바에도 관심이 많았다. 주변에 이혼한 언니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호스트바에 다니는 멤버도 있었다. 아내는 자기도 한번 따라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언니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런 언니들 아니야. 선 딱 긋고 거기까지만 즐기고 나오는 사람들이야.”
그날 나는 변기를 붙잡고 토했다. 그날 이후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지금도 그날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아내의 카카오톡을 본 적도 있다. 서로 휴대폰을 바꿔서 확인하던 때였다.
그 중 한 이혼한 여자지인이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
“언니, 왜 그렇게 살아? 언니 정도면 남자 금방 꼬셔서 재혼할 수 있잖아. 나보다 예쁘잖아.”
아내도 유쾌하게 맞받아쳤다.
그 대화를 보면서 기분이 묘했다. 나는 가족을 지키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다른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던 걸까.
물론 그 대화만으로 외도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내가 목격한 일들이 있었기에, 그 말들은 내게 가볍게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 부부의 경제적 상황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아내는 나보다 월등히 돈을 잘 번다. 그래서 나는 육아를 주로 맡았다. 아이를 돌보면서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나는 안정적인 직업이 없는 반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더 많이 벌고, 나는 아이를 돌보는 방식으로 우리 가정이 굴러갔다.
나는 그게 잘못된 역할 분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아이를 돌보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맞는 방식으로 가족을 꾸려 가고 있다고 믿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때가 있고 나는 이제 다시 나의 일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신 아이가 혼자 있을 수 있을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었을뿐.
그런데 지금은 자꾸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육아를 하지 않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졌더라면 달라졌을까.
내가 돈을 더 잘 벌었다면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았을까.
내가 잘못 살아온 건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물론 내가 부족한 남편이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륜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은 자꾸 내 잘못을 찾는다.
불륜을 알게 된 뒤 처가에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럴 애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너무 힘들어 내 형제에게도 털어놓았다. 그런데 거기서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럴 애가 아니라고.
내가 함께 살아온 아내가 맞는데, 정작 나는 아무에게도 믿음을 얻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장난 같았다. 믿을 수 없어서 현실감조차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이 무너졌다.
그일은 나의 손발을 묶는 조금 더 남아있던 자존감이 박살나는 계기가 되었다.
스토킹으로 신고당해 접근금지명령을 받고야 말았다.
그런 상태에서도 아내는 상간남과 데이트를 했다. 그것 또한 나에게 걸렸다.
아내는 내가 집요한 성격이라고 한다.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격이라고.
맞다. 나는 그런 편이다. 아내는 상간남과 나를 스토킹으로 신고해야 한다는 대화가 있었다. 내가 무서웠다고 한다.
아내는 그 남자와 연락을 끊었다고 말했지만, 내가 확인한 바로는 그 이후에도 둘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지금도 연락을 주고 받는 그런 상태이다.
결국 나는 딸과 함께 집을 나와 부모님 집에서 그리고 아는지인집을 왔다갔다하며 지내게 됐다. 접근금지 명령 이후 쫒겨났다고 보는게 맞겠다. 평소 육아를 주로 내가 맡았기 때문인지, 아내는 힘들다며 딸까지 내게 보냈다.
나는 무너진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열 살짜리 딸을 돌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내가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상대 남자가 유부남이라는걸 확인했고 말을 해줬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자기에겐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자기가 연락해서 확인을 해보겠다고 한다.
여전히 그 남자의 말을 나보다 더 신뢰하는 것 같다.
아내는 먼저 나에게 이혼소송을 걸고 소장을 보냈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1차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2차로 충격을 받으니 심장이 이러다 터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 터질거면 터져라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언젠가 마주쳤었다.
나는 아직도 그 눈빛을 잊지 못한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지나가는 행인 1도 아닌, 정말 혐오스러운 인간을 보는 것 같았다.
12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을 어떻게 그렇게 바라볼 수 있을까.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나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상담도 받아봤다. 아내는 바람핀 배우자의 교과서적인 행동을 그대로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하나는 진행 했다.
현재 상간소송은 진행 중이고, 곧 변론기일이 다가온다. 그런데 아내가 상간남 측에 서서 진술을 해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간소송에 대해 알던 날 미안하다고 연락이 왔다.
근데 뒤에 자꾸 뭐가 붙는다. 일을 왜 이렇게 크게 만드느냐. 이렇게까지 해야하느냐....
내 아내가, 나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온 그 사람이, 지금은 다른 남자의 편에 서 있다.
내가 보기에는 서로에게 미련도 남아 있는 것 같다.
나는 이혼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딸에게 무엇이 최선일지 매일 고민한다.
가정을 지키고 싶었던 마음이 남아 있는 건지, 12년이라는 시간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건지, 나조차도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내가 지금껏 믿어 온 삶이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너진 자리에서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부터 찾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기념일에 예약해 둔 꽃다발이 생각난다.
나는 그날 아내에게 꽃을 주려고 했다.
아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날을 맞이하고 있었는지는 이제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꽃다발을 준비했고, 그날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됐다.
그게 우리가 함께한 12년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