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독살되지 않았습니다. 고종은 비만으로 인한 뇌일혈로 사망했습니다.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고종이 뒤진 1919년 1월 21일 오전 6시 35분을 전후한 주치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고종의 사망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고종 사망 전후의 주치의는 황실 전의 김형배와 총독부 의원장 하가 에이지로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순종실록부록 기미년(1919) 1월 20일에 '태왕 전하가 편찮아서 전의(典醫) 김형배(金瀅培)와 총독부 의원장(總督府醫院長) 하가 에이지로(芳賀榮次郞)가 입진(入診)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뇌일혈 전후의 병세는 내관들이 기록한 덕수궁 근시계(近侍係)와 창덕궁 찬시실(贊侍室) 일기에 시간별로 자세히 적혀 있으므로 조작하거나 속일 수가 없습니다.
안상호는 당시 종로 3가 16번지(지금의 KB 국민은행 종로3가 지점)에 안상호진료소를 개업하고 있었으므로 주치의를 고사했고 가끔 들르는 촉탁의는 수락했지만, 안상호가 궁을 드나들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주치의 김형배와 총독부 의원장 하가 에이지로 외에 총독부 의원 가미오카 가즈유키(神岡一亨) 총독부 의원장 후지타 쓰구아키라(藤田嗣章) 안과의사 우노 고이치(宇野功一) 평의사 스즈키 겐노스케(鈴木謙之助) 이왕직 전의보 이케베 요시오(池部義雄) 등이 수시로 교대 입시했으므로 조직적 독살 음모와 실행은 불가능했습니다.
@한머루 ㅋㅋㅋ 웃기고 있네. 당신은 유식해서 김건희 주가 조작 아니라고 우겼지. 그냥 아는 만큼. 알고 싶은 만큼만 내가 유리한대로 해석하는게 당신 같은 부류. 아전인수 격이지. 어디서 친일파 같은 놈이 쓴 글을 퍼 와서 선동질이야. 본인이 보는 글들은 다 그 놈이 그놈인 것들만 읽으니 ㅋㅋㅋㅋㅋㅋㅋ
안상호는 당시 황실 전의는 아니었으나 '이왕직 촉탁의' 자격으로 고종이 쓰러졌을 당시 입진(진료)에 참여했던 의료진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음. 따라서 "아무런 연관이 없다"거나 "입진하지 않았다"는 소린 그냥 당신이 다른 사실 하나로 또 다른 진실을 덮는다는 정황이지. 앞에 언급했지만 김건희 주가 조작도 마찬가지고.
안상호의 친일파 행적이 글의 요지인데 당신은 고종 독살은 설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안상호를 옹호하며 글의 요지를 흔들고 선동하며 당신 스스로 자위를 하고 있다는게 팩트임.
@사료급식중 고종 이희가 덕수궁 함녕전 서온돌에서 뇌일혈로 쓰러진 1919년 1월 20일 오후11시부터 사망한 1919년 1월 21일 오전 6시 35분 사이에 안상호가 입진에 참여했다는 기록을 제시하십시오. 당시 입진 기록은 덕수궁 찬시실 일기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건희 주가조작 따위 헛소리는 끼워넣지 마세요. 안상호가 주치의가 아닌 촉탁의는 수락했다니까 고종 발병 당시 드나들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헛수작 부리지 마세요. 반일팔이 하면 마치 애국투사나 되는 듯 함부로 막말을 지껄이는 작태는 역겨워서 더이상 보지 못하겠습니다.
@사료급식중 안상호가 전혀 입진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고종이 뇌일혈을 일으키는 위급한 막바지에 한 번 입진했어요. 그러나 독살과 전혀 관련이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따로 있어요. 그것은 장서각 문서로 공개된 덕수궁 근시계 일기와 창덕궁 찬시실 일기를 세밀하게 조사해야 아는 일인데 대한민국의 게으른 역사학계는 그런 것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역사학계가 게으르니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은 반일팔이 역사업자 황현필, 조정래 같은 자들에게 휘둘립니다. 김건희는 특검에 의해 탈탈털려 문재인 정권이 그렇게 털어도 나오지 않던 증거로 기소되어 1심에서 무죄였는데 항소심에서 4년인가로 바뀌었죠? 아직 대법원 최종심도 끝나지 않았고 이재명 덕분에 4심인 헌법소원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정권 바뀌면 어떻게 될 지 모릅니다. 그때는 이재명도 법카로 사쳐먹은 것 때문에 어떻게 될 지 모릅니다. 주가조작은 태블릿을 최순실 것이라고 위증하며 박근혜를 감옥에 보낸 어리석은 윤석열의 업보라고 차치하고 안상호의 친일의혹과 고종의 독살설에나 집중하세요.
박정희 소령은 8연대 중대장 요원으로서 여순반란사건이 발발한 1948년 10월 19일 이후에는 광주 5여단 사령부에 설치된 토벌사령부(사령관 원용덕) 휘하 작전참모 김점곤 소령의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므로 빨치산이 만들어지게 된 장본인이라는 표현은 터무니없는 왜곡입니다. 토벌을 피해 입산한 자들이 빨갱이 빨치산입니다.
문근영은 외조부를 도저히 자랑할 수 없어서 자랑하지 못했습니다. 빨치산 활동을 자랑하면 사람도 아닙니다. 나무위키에서 류낙진으로 검색하면 '1928년 8월 26일 전라북도 남원군 이백면 과립리에서 태어나서…1947년 남조선로동당에 입당하여 1950년 6.25 전쟁에서 남조선로동당 남원군당 선전부에 활동하였고 전라북도 순창 회문산 등지에서 조선인민유격대 빨치산 활동을 벌였다. 1952년 3월 지리산에서 체포되어 광주 포로 수용소에서 군사재판을 받아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1953년 민간 재판소로 이양되면서 5년으로 감형되었다. 1957년 출소한 뒤에도 계속 지하 활동을 하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혁신당 조직 활동으로 1964년 체포되었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19세가 되던 해 인민군에 입대하여 지리산에 입산한 부인 신애덕을 만났다. 1953년 신애덕은 총상을 당한 채 붙잡혔다가 석방되었고, 류낙진은 이후 신애덕과 결혼하였다. 이후 전라남도 보성군의 예당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71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고 나옵니다. 교사가 통혁당 활동을 했는데 어떻게 자랑합니까? 허나 배우 하영은 현재 마녀사냥처럼 근거 없이 과장되고 있는 증조부의 친일 의혹을 몰랐기 때문에 '4대째 의사집안'이라고 말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