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안부호 교수의 소록도병원 재직 기간은1949년부터 1953~1954년까지입니다.

 

1949년부터 1954년까지의 소록도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의 혼란, 6·25 전쟁의 비극, 그리고 일제강점기 악습의 부활로 인해 한센인들이 극심한 인권 유린과 수난을 겪었던 잔혹한 시기였습니다.
당시 소록도(당시 중앙나요양소, 김상태 원장 재임기)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과 실태를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극단적인 출생 억제와 강제 단종·낙태
정부 수립 이후에도 소록도 내 한센인의 임신과 출산은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 강제 정관수술(단종) 및 낙태: 병원 내부에서 결혼하거나 생활하기 위한 조건으로 정관수술을 강제했습니다. 임신이 발견되면 강제로 낙태 수술을 자행했습니다.
  • 비정상적인 출생률: 실태조사에 따르면, 1949년 당시 소록도 수용 환자는 약 6,100명에 달했으나 그해 섬 전체에서 태어난 출생아는 단 45명에 불과했습니다.
 

  
 
2. 반인권적 생체 실험 및 시신 유린 (1950년대 초)
치료와 연구라는 명목하에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가혹한 생체 실험이 음성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골수 나균 검출 실험: 당시 기사와 증언을 따르면, 환자의 가슴(흉골)에 거대한 침을 직접 꽂아 골수를 채취하는 잔인한 방식의 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실험의 여파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거나 숨진 환자도 발생하였습니다.
  • 무단 사체 해부: 사망한 환자들의 시신은 유족의 의사와 관계 없이, 병원 내부의 해부학 실습 및 연구 자재로 강제 이용되었습니다.
 

 
3. 일제식 통제 부활과 한센인들의 저항 (1953~1954년)
전쟁 전후로 부임한 김상태 원장 체제하에서, 일제강점기 시절의 악명 높은 차별과 통제 관행들이 대거 부활했습니다.
  • 차별과 감시 강화: 병원 측은 엄격한 경계선을 세워 환자들의 이동을 통제하고 가혹한 강제노역을 다시 부과했습니다.
  • 김상태 원장 해임 운동 (1953년): 병원의 부패와 인권 유린을 견디지 못한 한센인들이 대규모 진정서를 작성하여 원장 해임을 요구하는 거센 항거를 시작했습니다.
  • 소록도 4·6 사건 (1954년): 한센인들이 자신들의 비참한 실태를 담은 진정서와 성명서를 발표하며 자유와 인권을 요구하며 조직적으로 부딪쳤던 역사적 저항 사건입니다.
 

요약 : 안부호 교수가 재직했던 이 시기는 해방과 정부 수립 이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식 강제 격리, 단종, 낙태가 그대로 지속되었으며,

전쟁의 혼란 속에서 강제적인 시신 해부와 골수 채취 실험에 관한 기록과 증언까지 존재했던 소록도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였습니다.

 

다만 하영의 조부 안부호 교수가 이 같은 인권침해에 가담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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