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어느 날 보배드림에 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내용을 보니 소설 작품을 무료배포하겠다는 말. 그 말을 한 주인공은 바로 소재원 작가였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데뷔작품 '나는 텐프로였다(영화 비스티보이즈)'로 데뷔해, 영화 '소원', '터널',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 등의 원작을 써내며 소위 스타작가가 된 그.


그런데 그가 느닷없이 일제강점기 시대의 위안부를 다룬 소설 '그날'을 무료 배포하겠답니다.


과연 소재원 작가가 '그날'로 우리에게 하고 싶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답을 구하고자 보배드림이 직접 소재원 작가에게 질문을 건넸습니다.

 


Q1. 혹여나 작가님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영화 비스티보이즈와 소원, 터널의 원작 소설을 쓰고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 극본과 원작소설을 쓴 작가 소재원 이라고 합니다.

 

 

Q2. 이번에 본인의 작품 ‘그날’ 전자책을 무료로 배포한다고 들었습니다. 소속 회사도 있으신 터라 특히 ‘종이판 절판’까지 결정하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된 일인지 궁금합니다.


A. 특히나 제 작품은 전자책 보다 종이책의 판매 비중이 아주 높은 편입니다. 또 한 한 달 만에 4쇄를 찍어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무료배포를 출판사 측에 제안을 드리기 전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요. 다행스럽게도 출판사는 제 걱정과는 달리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승낙을 해주셨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인 만큼 돌려드리는 일에도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며 오히려 제 결심을 응원해 주셨습니다.

 

종이책 절판은 오히려 출판사 측에서 먼저 제안을 주셨습니다. 작가님의 순수한 의도를 입증받기 위해선 작가님과 우리가 과감하게 종이책 출판을 포기하는 건 어떨까요? 라며 기업으로선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주셨습니다. 또 한 저희 소속사에는 사실 비밀로 하고 글을 올렸었는데요. 소속사 대표님이 다음 날 아침에 바로 제게 문자를 보내오셨더군요.

 

"소재원! 스타가 되고 싶냐! 아니면 진짜 애국자가 되고 싶냐! 형한테는 솔직히 말해라!"

 

제가 곧장 답장을 보내드렸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같이 위대한 독립투사는 못될지언정 매국노는 되기 싫습니다"

 

그러자 전화가 오셔서는 종이책을 천권정도 회삿돈으로 찍을 수 있는지 출판사에 문의해보고 전자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도서관에 기증하는 건 어떤지 여쭤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미 대부분의 도서관에는 다 들어가 있는 거로 안다니 딱 한 마디 하시더군요.

 

 

“그래? 그럼 난 뭘 하지?” 제가 생각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Q3. ‘그날’은 일제강점기 시절을 다룬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을 집필하시며 가장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A. 기록과도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소설이기에 기록만을 담을 순 없지만 가장 기록과 가까운 소설을 집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읽기 쉽게 써 내려가려 노력했습니다.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면서 끝까지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가장 집중을 했던 작품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4. 특히 ‘그날’을 집필하시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혹은 느끼게 된 감정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생체실험이 마루타에서만 이뤄진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소름 끼쳤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절반도 안 된다는 사실에 부끄러웠고 두려웠으며 일본의 잔인한 모습들에 사지가 부들부들 떨려왔습니다.

 

집필을 멈추고 싶었던 적이 수도 없이 찾아왔고 소록도를 찾아갈 때면 눈물범벅이 돼 버리는 제 눈이 너무도 싫어 뒷걸음질 칠 때가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주하고 알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더는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진리라고 굳게 믿는 저인지라 반복된 역사를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알아야만 했습니다.

 

 

 

Q5. 작성해주신 글 이야기로 넘어가면, 글에서 ‘분노’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최근 일본의 어떤 행태가 작가님을 ‘분노’하게 만든 계기가 됐을까요?


A. 역사는 반복된다는 진리를 전 믿는다고 말씀드렸었죠?

 

반복된 역사를 우리는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억지스러운 거짓 논리와 뻔뻔함이 일제강점기의 시작과 비슷했습니다. 자신들 마음대로 짜 맞춘 모든 것들을 국제사회에 ‘정당하다’ 알리는 모습 또한 그러했습니다.

 

늘 그들의 시작은 똑같았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일제강점기 때도 그랬습니다. 뻔한 수법은 지금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조금만 아신다면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래서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반성은커녕 우리를 침략하고 발아래로 두어 복종시키려 하려는 모습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Q6. 여러 미디어에서 이번 일을 보도하고, 집중하고 있습니다. 혹시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으시다면?

 

A. 응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여러 문의가 있었는데 바로 공유해도 되느냐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공유를 하시든 전자책을 인쇄하셔서 보시든 자유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미 그날은 제 작품이 아닙니다. 전 손만 움직였습니다. 모든 역사의 산증인들이 살아 숨 쉬는 모두의 작품입니다. 전 단지 대신 옮겨 적은 것뿐입니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사실 소설가에게 인세는 정말 소중합니다. 하지만 그날이라는 작품으로 제 생활을 연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 국민과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신,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증언하신 모든 분들의 작품입니다.

 

전 앞으로 티끌만큼이라도 제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유롭게 읽고 복사하셔서 배포하셔도 됩니다.

 

 

Q7. 그간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사회, 역사적 이야기까지 다양한 범위를 포괄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혹시 그 안에서 저희는 어떤 공통적인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A. 제 작품은 항상 우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고 영화와 드라마까지 도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쓰지 않습니다. 그건 이미 다른 필력 좋으신 작가님들께서 하고 계시니까요. 하지만 저 같은 작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흔해빠진 우리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글도 존재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사회도, 역사도 결국은 우리 안에서 시작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흔하디 흔한 우리지만 우리가 있기에 모든 건 존재할 수 있다는 소중함을 써 내려가고 싶었습니다.

 

결국 제 작품은 우리는 소중하고 특별하다는 공통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라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제 창작의 원천이 되어주시는 이 인터뷰를 읽어주시는 모든 우리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Q8. 세간에는 ‘약자를 위한 소설가’라고 불리고 있는데요. 이러한 별칭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수식보다 더 소중하고 지키고 싶은 별칭입니다. 그 수식이 절 여기까지 이끌어줬고 저라는 작가를 만들어 줬습니다. 약자를 위한 소설가라는 수식이 없었다면 전 제 작품의 방향성을 찾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또 우리란 우리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제게 길을 가르쳐주신 소중한 우리입니다. 흔들릴 때, 좌절할 때, 제게는 분에 넘치는 수식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그 수식에 걸맞는 작가가 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지금도 선사해주신 수식을 지키기 위해 글을 씁니다. 끝까지 지켜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라는, 독자라는 신앙과 같은 존재에게 약속하고 맹세하겠습니다.



Q9. 이번 일로 댓글 중에 어떤 회원은 “안중근 같은 분이다”을 표현을 하시기도 했는데요.


A. 제가 가장 존경하시는 분이 바로 안중근 의사와 조마리아 여사님이십니다.

제가 감히 안중근 의사와 비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저희 회사 대표님께 말씀드린 것처럼 전 그저 독립운동은 못 해도 매국노는 되기 싫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안중근 의사와 같은 위대한 분을 칭송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을 보인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Q10. 이번 큰 결심으로, ‘그날’을 읽을 회원들이 더욱 많아질 것 같습니다.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그냥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그날의 역사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기억해주시길 감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기억할 때 우리는 기적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잊혔기에 우리는 또 다른 사회적 재난인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세월호 사건을 맞이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때를 기억했더라면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을 것이라 주제넘은 주관적인 주장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는 잊고 싶지 않습니다. 제 머리가 기억하고 제 가슴에 남겨두고 싶습니다. 끝까지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음으로 다다르는 기적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기억함으로 이끌 수 있었던 촛불의 기적이 또다시 이뤄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Q11. 다음 달에 둘째 아이가 태어난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혹시 이렇게 새로운 가족을 만나고, 아이가 태어나며 작가님의 작품활동에도 영향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당연히 영향을 미치지요.  첫째가 태어나는 순간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아이를 지킬 수 있는 힘은 과연 펜에만 존재하는 걸까? 그 뒤로 행동하는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함께 하는 길이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증언하지 않고 나서지 않았더라면 저 역시도 제 아이에게 가습기살균제를 썼을 것이기에 방관하고 유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균이라는 작품을 써 내려 갔고 현재 영화 투자사와 계약 단계에 접어들 수 있었습니다. 예전이라면 거기에서 멈췄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자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사회적 참사에 대한 책임을 법적으로 묻고자 사회적참사법 사회적포럼에서 활동을 하며 행동을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위원으로 국회의원들의 갑질과 부도덕한 행실을 처분하는 직분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정치라면 그토록 치를 떨던 제가 조금씩 세상을 바꿔보고 싶어졌습니다. 아! 절대 정치에 욕심은 없습니다. 전 언제나 작가로 행동할 뿐 그 어떤 직분도 앞으론 사양합니다. 해서 윤리심판위원직도 작가로 돌아가기 위해 서슴없이 사퇴했습니다. 잠시나마 바꾸고 싶은 욕심이 위원직을 승낙하게 했지만 제가 할 일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과감히 내려놓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평생을 약자를 위하는 소설가라는 수식을 지킬 것입니다. 두 번 다시는 작가가 아닌 길에서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작가로 살며 행동하는 편이 대중에 대한 충성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둘째를 기다리며 크림빵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임신한 아내가 케잌을 먹고 싶다고 했지만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던 가장은 가난으로 크림빵을 사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뺑소니 사고로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때 케잌을 살 수 있었더라면, 밤늦게 일한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아 크림빵이 아닌 케잌을 사갈 수만 있었더라면... 몸은 피곤하지만 아내가 먹고 싶은 케잌을 사 들고 뿌듯한 마음으로 웃으며 귀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떻게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데 크림빵만을 사갈 수가 있는 걸까? 왜 밤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돌아가는데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생이별을 해야만 했던 걸까? 뺑소니 사고를 낸 자도 씻지 못할 죄인이지만 미안하다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만든 높은 곳의 이들 역시 죄인이지 않을까?


둘째 임신이 제게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고 그로 인해 행복하게 해줄게. 라는 작품을 집필을 했습니다.
‘이제 또다시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작품으로 행동하려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빠를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때 우리 아빠는 베스트셀러 작가야! 라는 말을 하기 보단, 우리 아빠는 소설도 쓰고 영화도 하고 드라마도 직접 쓰는 작가야! 라고 자랑스러워하기보단, 우리 아빠는 약한 사람들을 지켜주는 작가야! 라고 우리가 선물해 준 이름으로 불러주길 원합니다. 그래서 행동하고 보여드리려 합니다.


첫 번째가 그날의 완전한 저작권 포기입니다. 제 나약한 펜으로는 높은 곳의 분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 우리라는 힘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라는 이들의 희생이 지켜낸 대한민국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지킨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우리가 아닌 그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드리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불매의 힘이 증명될 때 과연 일본 기업만 불안해할까요? 아니요! 우리 자국 기업들도 긴장할 겁니다. 우리가 뭉쳤을 때 갖게 되는 엄청난 힘은 힘없는 가장들을 지켜줄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가 우리를 뭉치게 만들고 그로 인해 강한 신념을 만들어 준다면, 일본 불매운동을 성공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 신념은 계속 이어질 테고 불매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자국 기업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기적을 만들 것이라 굳게 믿고 싶습니다.
 


Q12. 앞으로의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님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당분간은 행동하는 작가로 남겠습니다.

 

작가가 펜으로만 말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가라면 대중이 원하는 행동으로 보답을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구석에 놓인 책상에서 쓰기만 하는 작가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조금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대중의 사랑을, 대중이 선물한 수식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전 끝까지 대중의 사랑 속에서 행복하고 싶습니다. 그런 사랑을 얻기 위해선 구애를 해야만 합니다. 그 구애의 행동을 끊임없이 실천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독자를, 대중을 신앙으로 받드는 작가로 남겠습니다. 그런 작가로 끝까지 동행하겠습니다. 소명이와 소설이 아빠로 살아가며 행복한 세상을 선물하겠습니다.

 

그 힘은 언제나 대중에게서 나온다는 걸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기억만으로 충분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저라는 사람을 성장시켜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대중을 늘 존경하며 섬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