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삼일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비장하고 슬프지만 자랑스럽기도 한 이날을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새롭게 기억해보려고 하는데요.


삼일절



(1950년에 출시된 삼일절 기념우표)

 

매년 3월 1일, 1919년 3월 1일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항거하며 한반도에서 시발된 민족독립운동을 기념합니다.
1919년 고종의 장례일인 3월 1일 정오 서울을 비롯하여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선천, 원산 등지에서
동시에 독립선언식이 이루어짐으로써, 전국적인 민족독립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그림으로 재현)

 

민족대표 33인은 본래의 예정과 다르게 독립선언식을 종로의 탑골공원에서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학생과 시민들이 시위에 뛰어들어 비폭력 원칙을 깨뜨려 열강의 회의를 얻어내지 못할까 염려가 되어
결국 탑골공원에서는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군중은 독립만세의 함성을 외치며 선언은 만세시위운동으로 확산이 되었습니다.

 

이후 3월 5일 서울역 광장에서 다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고 5월까지 동시다발적이고 격렬한 투쟁양상을 보이며
독립운동이 계속 되었습니다.
국내에서의 시위운동에 호응한 간도, 연해주, 미국에서도 동조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숙연하고 숭고하며 열정적인 독립운동의 노력을 기리는 일은 늘 새로워
매년 그날이 되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삼일절에 관해 생각을 해보면 아우내장터에서 시위를 벌였던 유관순 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민족의 시인 한용운 선생의 뜨거운 애국심이 생각나죠.

 

삼일절의 진행과정을 간단히 설명해드렸는데요.



고종과 커피


나라를 지키지 못한 나약한 왕이었지만, 고종의 장례일 역시 3월 1일이었으며,
그 행사를 계기로 시민들이 함께 밖으로 뛰어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공식적으로 기록된 한국에서 커피를 최초로 마신 사람은 고종황제라는 것.



 


한국도 물론 다른 나라의 상인들과 교역을 통해 100년 훨씬 전에 커피가 들어왔을 거라 생각은 되지만
역사적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고종황제가 최초로 마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커피에 대한 기록은 비극적인 한국 역사의 한 사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1896년 2월 21일 추운 겨울날이었죠.
폭이 2m도 안 되는 좁은 길을 통해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황급히 피신을 했는데,
이 역사적 사건은 이후 아관파천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한국의 커피 역사가 시작하게 된 겁니다.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 2층에 고종이 나와 있습니다)


 

러시아 공사인 웨베르가 고종에게 커피를 소개하고 1년간의 공사관 생활을 통해 고종은 커피 애호가가 됩니다.
혹자는 고종과 커피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고종께서는 이 쓰고도 달콤한 커피에 상당히 매료되셨던 것 같다.
이 당시에 소개된 커피는 각설탕 속에 커피가루를 넣은 것으로, 그대로 뜨거운 물에 넣고 저어 마셨다.
어쩌면 이 쓰고도 달콤한 한 잔의 커피에서 고종은 자신의 삶의 모습을 씁쓸히 즐겼을지도 모른다...”




 


러시아 공사관 생활을 마치고 고종은 명성황후가 살해된 경복궁을 버리고 덕수궁으로 돌아온 후,
커피 맛을 잊을 수가 없어, 1900년 덕수궁 내에 정관헌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관’(서양식 건물)을 짓게 합니다.


고종은 이곳에서 외국의 사신들을 접대하거나 대신들과 커피와 다과는 즐겼다고 합니다.

1898년 9월 러시아 통역관인 김홍륙에 의해 독이 넣어진 커피를 고종과 세자인 순종이 마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평소 고종은 커피를 마시기 전 커피 향을 먼저 즐기곤 했는데,
커피의 향이 그날따라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챈 고종은 반 모금만 마셨으나,
세자는 커피를 단숨에 다 마셔버려 평생 불구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기록에 따라 다른데, 혹자는 치아를 18개 잃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혹자는 자식을 낳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친러세력이 몰락하자 김홍륙은 곧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가 권력을 남용하고
의도적으로 통역을 오역했다는 죄목으로 기소 돼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이에 김홍륙은 앙심을 품어 고종을 암살하여 복수를 하려던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한편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있던 기간 중 공사관 웨베르의 친척인 손탁이라는 아가씨가
고종에게 커피를 대접하곤 했는데, 고종은 서울 정동의 건물 한 채를 손탁에게 하사합니다.

이 건물은 외교관들의 사교와 로비의 장소로 이용되었고 후에 반일 성향의 정동구락부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게 됩니다.
이후, 1902년 이 건물을 헐어내고 현대식 건물을 지었는데,
이름을 손탁 호텔이라고 지었으며 호텔의 1층에 ‘정동구락부’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이 등장했습니다.


비록 특권층만 드나들 수 있었지만 왕실의 커피가 백성에게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커피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손탁 호텔은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쇠퇴하기 시작하여 1918년 문을 닫게 됩니다.



러시아 공사관에게서 소개받은 이 커피는 국운이 다해가는 시기 열강들의 눈치 속에서,
그리고 쓰러져가는 조선에 대한 걱정 때문에 고종이 잠 못 이룰 때, 한 잔의 위로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우리의 일상을 지대하게 차지하고 있는 커피와 삼일절 그리고 고종황제의 묘한 역학관계에 대해서
알려드렸습니다.

만약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3월 1일에 장례식을 거행하지 않았다면,
커피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떠올려 봅니다. 




 
삼일절 그리고 현재

 

이번에는 현대판 삼일절에 관한 재미있는 사건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과거의 독립을 위한 운동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한국과 일본의 21세기형 충돌이라는 점에서는
감히 현대판 삼일절 사건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2010년 일어난 3월 1일 대일본 테러 사건입니다.
이를 공식적으로는 ‘2010년 한R31;일 삼일절 사이버 공격 사건’이라고 하는데요.



2010년 한R31;일 삼일절 사이버 공격 사건은 2010년 3월 1일 우리나라의 다양한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연합하여 세운 ‘정당한 테러 대응 카페(테대연)’ 회원들이 일본의 웹사이트 2채널을 공격한 사건입니다.



 
             (당시 2채널에 도배한 한국인의 글)



 

왜 갑자기 일본의 2채널을 공격했을까요?

 
 

사건은 2009년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2009년 겨울, 러시아로 유학 간 한국인 유학생이 러시아인에게 구타 당해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에 대해서 ‘개가 죽었는데 왜 뉴스에?’ ‘그 러시아인에게 훈장’ 등의 발언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의 2채널이라는 웹사이트에서 일어난 일이었죠.
또 한 차례 더 사건이 터지는데 그건 2010년 2월 23일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벌어집니다.

다시 일본의 2채널에서는 김연아를 비방하며 심판 매수설을 주장하는 게시물이 올라왔고
이런 반응이 대한민국의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게시물을 접한 누리꾼들은 삼일절에 맞춰 2채널을 공격하기로 정하고 여러 커뮤니티를 설득하여
‘정당한 테러 대응 카페(테대연)’을 조직하게 됩니다.
이 사이트는 단 하루만에 회원 수 1만 2천 명을 돌파하면서 열기가 달아올랐는데요.





 

 

결국 테대연은 3월 1일 오후 1시 일제히 공격을 가해 일본의 2채널 전 서버가 다운됩니다.
이로 인해 2채널의 관리회사와 미국의 공공기관 등 다수의 사이트도 피해를 입어
샌프란시스코 주 경찰과 FBI가 수사하는 단계로 사건은 커집니다.


이후, 2채널의 서버를 관리하는 미국의 서버관리 회사 패시픽 인터넷 익스체인지(PIE)사의 발표에 따르면
3월 1일 오전 11시 40분경 2채널의 일부 서버가 대한민국에서 봇 프로그램을 이용한 대량 엑세스에 의해
서버 및 네트워크의 부하가 상승하였으며, 이 회사가 운영하는 미국 국적 기관의 서버를 포함한
2채널 이외의 사이트에도 피해가 생겼다고 합니다.
같은 저녁 PIE사는 2채널의 서버를 전부 중지하고 공격 발원지의 IP를 모두 차단 조치합니다.
그 후 대한민국의 국경일인 삼일절이 지나가며 공격이 종료되었습니다.


21세기 사이버 전쟁을 한 차례 치룬 셈이죠.
물론 실력 전쟁으로 이어가려는 의도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피력한 기록적이며 명랑하기까지 한
이슈가 아니었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3월 1일, 많은 감정이 떠오르는 날인 것 같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애국심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 애국가를 들으며
태극기가 올라가는 올림픽 수상식이라고 했는데요.
올림픽은 아니지만 오늘, 뜨거운 가슴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의미있는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 날의 숭고한 희생과 함성을 기억하며 외칩니다. "대한민국 만세!"

    
오늘의 보배드림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